“고객을 그저 예금, 펀드 판매 대상으로 보는 기존 금융사의 일하는 방식을 전면 부정해도 아무런 불평불만 않겠다는 약속받는 게 딜의 시작점이었다.”
국내 금융지주사로부터 투자를 유치한 인공지능(AI)이라는 무기를 가진 한 핀테크 업체 수장은 최근 기자와 만나 이 같이 말했다.
설립 100년 안팎 금융지주사로서는 굴욕적인 요구였음에도 불구하고 10년도 채 안 된 이 기업에 손을 내밀었다고 한다. '어떻게 하면 디지털을 배워볼까' 하는 금융지주사의 절박함이 엿보였다.
이런 절박함은 속된말로 '머리에 피도 안 마른' 국내외 인터넷전문은행의 막대한 시총 규모에서 나오는듯하다.
AI, 빅데이터를 무기로 삼은 설립 10년이 안 된 카카오뱅크 시가총액은 20조원을 넘어서고 있다. 국내 최대 금융지주사 시총에 맞먹는 숫자다. 더 나아가서는 중국 최대 핀테크 업체 알리바바 시총은 250조원에 달한다.
반면에 이렇다 할 디지털 자산이 없는 금융지주사의 오름폭은 크지 않다. 은행과 은행지주사를 대변하는 김광수 은행연합회장도 “우리 금융지주사들의 실력에 비해 시장 가치가 낮다. 인터넷전문은행 설립을 통한 혁신과 노력이 필요한 때”라고 말한다.
정부에서도 고심이 많아 보인다. 설립 허가를 내주자니 핀테크 업체에 비해 자산 규모 등 여전히 몸집이 크다. 여러모로 기득권이다. 더 큰 문제는 허가를 내줘도 카카오뱅크처럼 사용자 인터페이스(UI)를 잘 만들고, 40주 적금 같은 아이디어 상품을 내놓고, 이용자 소통 등 잘 할 수 있을지 불투명하다. 핀테크 업체의 반발도 만만찮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금융지주사에 인터넷전문은행 허가를 내줘야 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이용자 편의다. 인터넷전문은행 설립 후 편의성은 높아진 게 사실이다. 이제 어느 은행에서도 신용대출은 5분이면 뚝딱 받는다. 인터넷전문은행의 메기 역할에 기반한 경쟁 활성화 덕분이다. 세상에 이렇게 금융이 쉬운 나라가 몇이나 되나.
인터넷전문은행 설립 허가를 해준다면 금융지주사는 회장, 행장 라인을 앉힐 생각 말고 과감히 외부 전문가를 모셔와야 한다. 정보기술(IT) 인재와 외부인력 채용으로 DNA부터 완전 다른 회사를 만들어야 한다. 핀테크 업체도 경쟁을 즐겨야 한다. 국내 금융 어장에 또 다른 메기가 출현하기를 기대해 본다.
김지혜기자 jihy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