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홈 기기 통신 표준 '매터' 등장은 업계 적용의지에 따라 산업지형을 송두리째 뒤바꿀 수 있다. 스마트홈 시장 리더가 모두 참여한 만큼 기기-플랫폼 간 종속을 해소, 무한경쟁 시대를 몰고 올 수 있다. 반면 그동안 표준 논의는 지속됐지만 자기주도 생태계 조성을 포기하지 않아 흐지부지 됐던 것을 감안할 때 '찻잔 속 태풍'이 될 수도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매터를 주목하는 이유는 표준 자체가 아니라 참여기업이다. 구글, 아마존, 애플, 삼성전자 등 스마트홈 플랫폼 선도업체가 모두 참여한다. 이들은 글로벌 스마트홈 플랫폼 시장 과반이 넘는 점유율을 보유한다. 매터가 사실상 국제표준에 준하는 의미를 가질 수 있다는 의미다.
주요 업체들은 내년 초 상용화를 목표로 설정했다. 당장 모든 제품에 적용하지는 않지만 스마트전구, 스마트 스위치, 온도조절기, 도어락, 방범 센서, TV 등에 우선 적용할 것으로 보인다.
표준을 적용한 제품이 출시되면 기존과는 전혀 다른 홈IoT 무한경쟁 시대로 접어들 가능성이 높다. IoT기기는 특정 플랫폼에서만 연동·제어되기 때문에 사용자는 물론 기기 제조사도 플랫폼에 종속됐다. 하지만 표준을 적용할 경우 플랫폼 종속성이 해소되기에 사용자·제조사 선택 폭은 훨씬 넓어진다.
특히 사용자가 이용할 수 있는 플랫폼이 늘어나면서 이들의 입맛을 맞출 서비스 경쟁이 치열해질 전망이다. 단순히 기기 연동을 통한 온·오프 기능에 국한했던 기존 스마트홈 플랫폼이 사용자 데이터를 기반으로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는 채널로 진화할 수 있다.
업계 간 고객 쟁탈전도 본격화될 수 있다. 업계 1위인 구글홈은 10만개에 달하는 IoT기기 연동 환경을 구축했다. 삼성 스마트싱스는 3000개가량 기기와 연동되는데, 산술적으로 구글홈의 10만개에 달하는 기기 사용자를 끌어들일 수 있다. 반대로 구글홈은 압도적 시장지배력을 바탕으로 추격기업 고객을 확보할 무기가 된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구글, 아마존 등은 수 만개에 달하는 기기와 연동하면서 시장 지배력을 보유했는데, 매터 적용이 확산되면 연동기기는 물론 고객까지 우리가 품을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된다”면서 “글로벌 시장 공략을 강화하려는 상황에서 표준 개발은 우리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라고 기대했다.
이 같은 상황을 우려해 표준 적용이 더딜 것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스마트홈 표준 논의는 2010년 중반부터 꾸준히 진행됐다. 구글, 아마존, 애플은 2019년 'CHIP'라는 단체를 조직해 IoT 표준 프로토콜 개발을 선언한 바 있다. 또 삼성전자, LG전자 등 한국기업이 주도한 오픈커넥티비티포럼(OCF)도 2017년부터 표준을 내놓고 있지만 적용은 더디다. 대부분 자사 주도 스마트홈 생태계 조성을 추진하면서 표준은 단순 합의나 선언에 그치고 있는 상황이다.
스마트홈 생태계는 사용자, 제조사를 아우를 수 있는 강력한 비즈니스 무기다. 최근 집안의 스마트 기기가 대폭 늘어난 데다 IoT와 인공지능(AI) 기술까지 발전해 스마트홈 저변은 어느때 보다 넓어졌다. 하지만 제조사, 사용자, 플랫폼 기업 모두 이해관계가 달라 애초부터 통합이 이뤄지기 어렵다는 주장도 나온다.
정구민 국민대 교수는 “큰 틀에서는 모두가 동일한 홈IoT 환경을 구현해 사용자 편의성과 선택권을 넓힌다는 데 의미가 있다”면서 “자사 중심의 생태계 전략을 포기하기는 쉽지 않은 상황에서 표준을 적용한 제품을 얼마나 출시할지는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정용철기자 jungyc@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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