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유통명가, 추격자 아닌 선점자 돼야

박준호 벤처유통부 기자
박준호 벤처유통부 기자

유통업계가 즐거운 상상에 빠졌다. '백신 드림'이다. 일상 회복의 기대감으로 소비가 폭증할 것이라는 장밋빛 전망도 나오고 있다. 지난달 한 자릿수에 머무르고 있던 백신 접종률이 어느새 20%를 넘어서며 아득하게만 느껴지던 코로나19의 종식도 멀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낙관하기엔 다가올 변화의 무게가 만만치 않다. 백신이 가져올 '포스트 코로나' 시대는 기존 산업의 재편을 초래할 것이다. 온라인 소비 변화를 제때 예측하지 못한 유통 대기업에 코로나19 변수는 '기회' 아닌 '위기'로 읽혔다. 뒤늦은 선택지의 결과는 승자의 저주마저 감수해야 할 수조원짜리 거래다. 롯데와 신세계 모두 한순간의 실기(失期)로 완전히 뒤처질 수 있는 값비싼 수업료를 치렀다.

두 번의 실수는 아웃을 의미한다. 유통업체 고위 관계자는 “기업에서 변화의 반대말은 정체가 아니라 죽음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뼈저리게 느꼈다”고 토로했다. 유통 대기업에 '빅딜'보다 중요한 것은 이후 무엇을 하는가다. 새롭게 짜이는 판은 한번 실기한 유통 공룡에는 다시 없을 기회다.

변곡점에서 유통 대기업에 필요한 자세는 추격 아닌 선점이다. 이미 e커머스뿐만 아니라 라이브커머스 시장에서도 유통 기업은 포털 플랫폼에 주도권을 내줬다. 과오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차세대 경쟁에선 승기를 잡겠다는 각오와 행동이 절실하다.

메타버스(확장가상세계)는 얼마 남지 않은 기회의 땅이다. 일본 미쓰코시이세탄 백화점은 이미 온라인 판매 상품을 가상세계에서 경험한 후 구매할 수 있는 서비스를 시행하고 있다. 주 이용층이 미래 소비 잠재력이 있는 Z세대인 만큼 소비 축이 한순간 온라인으로 넘어간 것처럼 메타버스가 새로운 전장으로 떠오를 가능성도 충분하다. 총수들도 의지를 불태우고 있다. 신동빈 롯데 회장은 최근 임원들에게 “메타버스 플랫폼 싸움에선 지지 말라”고 당부한 것으로 전해진다.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은 개인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공간을 할애해 자신과 닮은 '제이릴라' 띄우기에 여념이 없다. 신세계는 메타버스 시대에 제이릴라 아바타를 활용하는 밑그림을 그리고 있다. '뉴노멀' 시대에도 추격자로 남을 것인가, 아니면 선점자가 될 것인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박준호기자 junho@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