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정책의 성공은 취지·대상·예산이 조화를 이룰 때 가능하다. 셋 가운데 하나라도 어긋나면 국민은 변화를 체감하지 못하거나 오히려 불만이 커질 수 있다.
대표 사례가 '한전 고효율 가전제품 구매비용 지원사업'이다. 이 사업은 지난 2016년 으뜸효율가전 구매비용 환급 사업(으뜸효율가전사업)이라는 명칭으로 시작됐다. 에너지소비효율이 높은 가전을 구매할 경우 최대 30만원까지 정부가 비용을 지원하겠다는 것이다. 지난해에는 고효율 가전 구매 유도라는 원래 목적에다 코로나19로 침체된 소비를 진작하기 위한 목표가 더해졌다. 3000억원까지 예산을 늘려 어느 해보다 집중적으로 실시했다.
효과는 컸다. 사업 실시 3개월 만에 예산이 조기 소진될 정도로 뜨거운 반응을 보였다. 고효율 가전 보급은 늘었고, 코로나19 유행으로 시들해 있던 소비심리까지 살아났다. 실제 지난해 삼성전자, LG전자 등 국내 주요 대형 가전사는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했다. 중견·중소 가전 기업까지 후방효과 수혜로 매출이 크게 늘었다.
지원 대상을 전 국민으로 확대하고 예산도 전년 대비 10배 이상 늘리면서 소비 활성화, 가전 시장 경쟁력 강화, 고효율 가전 보급 확대 등 1석 3조의 성과를 냈다.
그러나 올해는 2019년 이전의 으뜸효율가전 사업으로 되돌아갔다. 예산도 700억원으로 줄었고, 지원도 한국전력공사의 전기요금 복지할인 대상으로 한정했다. 제한된 수요로 제도 자체의 실효성이 크게 떨어진다는 지적이 다시 제기되는 이유다.
사업 취지도 모호해졌다. 정부가 밝힌 사업 목적은 '에너지복지 확대'다. 에너지 취약계층 대상으로 불평등을 해소하겠다는 의미다. 이들에게 고효율 가전 구매를 지원, 전기요금 부담을 줄여 주겠다는 취지는 이해한다. 그렇다면 지원금을 획기적으로 높여 사실상 일반 가전 구매 때와의 차이가 크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러나 지원금은 지난해와 같다. 10% 지원금으로는 상대적으로 수십만원에서 100만원 이상 비싼 고효율제품 구매로 얻는 실익이 거의 없다.
실제 올해 고효율 가전제품 구매비용 지원 사업이 시작된 지 거의 2개월이 지나고 있지만 예산 집행률은 10%가 되지 않는다. 정책 성공의 길이 무엇인지 고민할 필요가 있다.
정용철기자 jungyc@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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