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카드 대표 후방산업인 밴(VAN)업계 매출이 사상 최초 1조원대 이하로 떨어졌다. 1조원 매출 고지 이하로 떨어진 건 처음이다.
카드사 매출액이 매년 사상 최대치를 경신하는 것과 비교하면 대조적이다. 정부 카드 가맹점 수수료 인하 압박으로 매출 하락이 우려된 카드사들이 하위 협력사 밴사에 하락분을 고스란히 전가하고 있다는 게 업계 중론이다. 실제 승인중계, 매입, 수거 등 전체 밴수수료가 줄고 있어 중소형 밴사가 시장 매물로 나오는 등 지불결제 후방산업이 무너지고 있다는 평가다.
20일 전자신문이 12개 밴사 최근 5년치 총매출과 승인 건수 실적 등을 단독 입수해 분석했다.
그 결과 지난해 말 밴사 총매출은 9794억2706만3704원으로 전년 말 대비 10.32% 감소했다. 1년 새 밴사 매출은 두 자릿수 이상 급감했다.
밴사 매출액은 2012년 카드 가맹점 수수료 인하를 시작해 밴수수료 정률제 이후 지속 감소했다. △2016년 말 1조1807억8644만3990원 △2017년 말 1조1660억827만6930원 △2018년 말 1조1613억986만4762원 △2019년 말 1조921억3812만8254원로 점차 낮아지다가 지난해 1조원 밑으로 하락했다.
밴사 주 수입원인 승인중계 부문 매출은 6431억3302만3819원으로 집계돼 7000억원 밑으로 추락했다. 전년 밴사 승인중계 부문 매출은 7108억3233만9216원이었다.
소액결제 증가로 대행 업무는 많아졌지만 되레 대행비는 줄어드는 모순된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카드사가 건당 대행료를 주는 방식에서 '수수료 정률제'를 적용하면서 매출 급감으로 이어졌다.
여기에 5만원 이하 무서명거래와 함께 대형가맹점에 대한 직승인시스템을 카드사가 확대하면서 대행건수와 업무 또한 축소되고 있다.
카드사 대부분은 2018년 7월 결제 건마다 같은 수수료가 부과되는 정액제에서 결제 금액에 비례해 수수료가 부과되는 정률제로 전환했다.
문제는 소액다건화로 밴사가 처리하는 업무는 증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해 밴사가 처리한 승인 건수는 181억1171만5345건으로 전년 대비 0.4% 감소했다. 하지만 이는 코로나19에 따른 일시적 이유로 전체 비중은 늘고 있다. 밴사 전체 승인 건수는 △2016년 142억747만1859건 △2017년 156억6703만2598건 △2018년 167억4982만8168건 △2019년 181억9194만2887건으로 증가추세다.
반면에 카드사 매출은 매년 사상 최대치를 경신하고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말 8개 전업 카드사의 신용·체크카드 이용액은 877조3000억원으로 코로나19 여파로 전년 대비 0.3% 줄었지만, 전년과 유사한 수준을 기록했다. 카드사 매출액은 △2016년 746조원 △2017년 788조1000억원 △2018년 832조6000억원 △2019년 874조7000억원으로 늘어나고 있다.
전체 매출이 늘면서 카드사가 가맹점으로부터 받은 수수료 이익도 상당하다.
카드사가 가맹점으로부터 받은 가맹점수수료 수익은 △2016년 말 11조450억9200만원 △2017년 말 11조6783억5800만원 △2018년 말 7조9112억1600만원 △2019년 말 7조2183억7800만원 △2020년 말 7조848억2100만원으로 각각 집계됐다. 수치만 보면 크게 줄어든 것처럼 보이지만 이는 착시효과다. 2018년 12월 회계기준 변경으로 일부 비용을 공지하지 않아도 된다. 숨어있는 비용을 합치면 가맹점 수수료 수익이 여전하다는 것이다.
윤종문 여신금융연구소 연구위원은 “2018년 12월 회계기준이 변경되면서 전체 디테일한 변화를 감지하긴 어렵지만, 전체 카드사가 가져가는 수수료 수익은 급격한 변화가 발생하지는 않은 것으로 판단한다”면서 “지난해 가맹점수수료 수익이 줄어든 것은 전체 건수가 줄고 매출액이 감소한 것을 반영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상황이 이러자 밴업계는 정률제에 대한 대대적 손질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현재 소액다건화로 소액결제가 압도적으로 증가하면서 네트워크 유지보수비용이 급증하고 있지만, 현재 수익으로는 이를 충당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밴사 관계자는 “최근 압도적으로 소액결제가 증가하면서 네트워크 유지보수비용 등 밴사 부담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면서 “과거 정액제는 소액 10건 처리가 고액 1건 처리보다 수익이 많아 상쇄가 가능했지만 현재는 처리 비용이 같아 밴업계가 어려움을 겪는 만큼 정률제를 변하는 결제 상황에 따라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박윤호기자 yuno@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