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22일 평택항에서는 스물세살의 청년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일용직 아르바이트로 일하다 300㎏ 무게 개방형 컨테이너 날개에 깔린 이선호씨 사고다. 물류기업 동방은 이씨를 한 인력사무소에서 소개받았다. 당일 이씨는 안전관리자가 없던 동방의 컨테이너 작업 현장에서 예정에 없던 컨테이너 청소 작업을 지시받고 이를 수행하다 사고를 당했다. 허술한 안전관리와 매뉴얼조차 지키지 않은 작업이 사고를 불러온 것이다. 이처럼 산업현장에서는 매년 안전관리 소홀로 사망 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다. 지난해 산재사망사고로 목숨을 잃고 집으로 돌아가지 못한 사람은 882명에 이른다. 하지만 산재사망사고는 올해도 끊이지 않고 있다.
제조·건설·서비스 등 산업현장 안전사고는 한두 가지 원인에 의해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원인이 서로 복잡하게 얽혀있다.
학계에서는 이러한 위험의 특성을 '사고의 원인망'으로 정의하고 있다. 즉 산업현장 안전사고에는 노후설비 증가를 비롯해 취약한 안전시스템, 위험의 외주화 등 다양한 원인 요소가 존재한다. 복잡한 원인이 존재하지만 산업현장 사고발생 근본적 이유를 들자면 기본과 원칙이 지켜지지 않아서다.
안전하지 않은 기계나 설비를 그대로 사용하고, 안전하지 않은 방법으로 작업을 한다. 또는 부족한 인력으로 일을 시킨다. 산업현장에는 아직도 안전장치 없는 기계나 설비가 많고, 있는 안전장치도 떼어버리거나 스위치를 꺼놓고 사용하는 곳이 존재한다. 그동안 우리사회가 짧은 기간 압축 성장을 하면서 안전을 뒷전으로 미루다보니 경영자들과 산업 현장에서 관행처럼 굳어진 단면이 있다. 경영적인 측면에서는 안전사고에 대한 예방 비용보다 재해로 인한 손실비용이 적다는 그릇된 판단이 원인으로 작용한다.
◇건설·제조분야 추락·끼임사고 가장 많아
2019년 기준 우리나라 1만명당 산재사망을 나타내는 만인율은 0.46명으로 같은 미국(0.37), 일본(0.14), 독일(0.14), 영국(0.03)에 비해 크게 높다. 지난해에도 사고사망자는 882명으로 2019년에 비해 오히려 27명 증가했다.
2019년 역대 최초로 800명대에 진입했으나 지난해 이천 화재사고로 38명이 목숨을 잃는 등 대형 산재사고가 잇따르며 산재사망이 늘어났다.
업종별로는 건설업 사고사망자가 458명에 달해 전체의 51.9%를 차지했다. 제조업도 201명으로 전체의 22.8%에 달했다. 이밖에 서비스업 122명, 운수·창고통신업(67명) 등 곳곳에서 산재사망사고가 발생했다.
규모별로는 5인 이상 49인 미만 사업장에서 402명(45.6%), 5인 미만에서 312명(35.4%) 사고 사망자가 발생할만큼 사업장 규모가 적은 곳에서 주로 발생한다. 전체 사망사고의 80%가 50인미만 사업장에서 이뤄진 셈이다.
재해유형별로는 '떨어짐'(328명), '끼임'(98명), '부딪힘'(72명), '물체에 맞음'(71명), '깔림·뒤집힘'(64명) 순으로 사고사망자가 다수 발생했다.
◇안전비용 투자·시스템 도입이 사고 감축
전문가들은 건설 분야 산재사망사고가 많은 원인으로 안전관리비용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부족을 꼽았다.
김태구 인제대 보건안전공학과 교수는 “최근 일어난 광주 철거공사 사고에서도 드러나듯 안전관리비용을 제대로 투입하지 않은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원청에서 하청으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대폭 공사비를 줄이면 사고가 발생하지 않으면 티 안 나는 안전관리비를 제일 먼저 뺀다”고 지적했다. 안전에 대한 투자가 이뤄지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추락사고 역시 안전장비나 시스템 비계, 달줄 등 안전투자가 제대로 이뤄지면 상당부분 줄일 수 있다고 했다. 김 교수는 “조선 현장이나 밀폐된 공간작업을 하는 곳에서 보호장비나 통기마스크 등도 개인이 구입해야하는 사례도 있다”면서 “이는 당연히 기업이 준비해야할 몫”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안전에 투자하면 상당부분 사고를 막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 영국에서는 '퍼를린 트롤리'라는 추락 예방 장치로 철골구조물의 지붕 패널 설치시 이중난간을 플랫폼 데크에 설치하고 레일이 깔린 이동통로로 자재 및 작업자를 이동시킨다. 또 낙하를 막아주는 폴 어레스트 매트' 시스템을 도입해 추락방호망이나 부착설비를 설치하기 어려운 다양한 시공과정에는 에어매트 등을 사용한다.
일본은 공공공사 설계와 계약에서 재래식 강관 비계 사용을 금지하고 있고 안전한 일체형 작업발판인 시스템 비계 사용을 의무화했다.
김 교수는 사고를 막기 위해 정부는 투트랙으로 정책을 펴야 한다고 했다. 대기업은 법을 통해 자율적으로 안전에 투자하게 하는 한편 영세기업을 위해서는 시스템 비계, 안전장비 등을 무상 또는 저렴하게 공급해야 한다고 했다. 이를 위해 산업재해예방기금을 활용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고용노동부, 산재사망사고 감축에 총력
고용노동부는 올해 사고사망 20% 감축을 위해 전 부처 역량을 집중할 계획이다.
먼저 사망사고 발생 위험 사업장 안전관리 강화를 위해 대규모 현장에선 본사 중심 책임관리를 실시한다. 안전보건리더회의 등을 활용하고 2년연속 사망사고 발생 건설회사 등에 대해서는 본사 및 모든 소속현장 감독 등 특별관리를 실시한다.
공사규모 50억원 미만 현장에 대해선 안전보건공단과 함께 추락방지를 위한 지원 품목을 확대한다.
현재 시스템비계만 지원한 데서 사다리형 작업발판, 채광창 안전덮개 등을 추가하고 초소규모 현장에선 기술과 재정지원도 대폭 늘리기로 했다. 안전시설 구입·임차 비용 지원을 최대 80%까지 늘린다는 방침이다.
제조업 등에서 발생하는 '끼임' 사고 예방을 위해선 위험기계·기구의 수리·점검을 도급주는 경우 원청에게 혼재작업 확인 및 조정의무를 부과한다. 또 소규모 50인 미만 제조 기업에는 기술 재정지원을 강화하고 300인 미만 사업장은 위험기계 및 작업공정 환경개선 융자금을 최대 3년간 5000억원까지 지원할 방침이다.
이경민기자 kmle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