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 효율 1~2등급의 고효율 가전이 전성기를 맞고 있다. 지난해 전 국민을 대상으로 실시한 으뜸효율 가전 구매지원 사업을 계기로 시장이 급속도로 커지고 있다. 정부 지원금으로 가격 부담을 줄인 소비자는 고효율 가전 구매를 늘렸고, 업계는 늘어난 수요에 대응해 관련 제품을 대거 출시했다. 올해 역시 지난해부터 이어진 고효율 가전 출시 바람이 지속되는 가운데 업계 연구개발(R&D)과 마케팅 경쟁도 뜨거워지고 있다.
◇고효율 가전 출시 봇물…최대 3배 이상 늘어
지난해를 기점으로 국내 고효율 가전은 새로운 전기를 맞았다. 정부 고효율 가전 구매 환급사업이 전 국민 대상으로 확대되면서 이 수요를 노린 고효율 가전 신제품 출시가 폭발적으로 늘었기 때문이다.
한국에너지공단에 따르면 냉장고, TV, 건조기 등 환급사업 대상 품목의 고효율 제품 출시가 두드러졌다. 에너지효율 1등급 기준 전기냉장고는 2019년 238개 제품이 인증을 받았는데, 지난해는 전년 대비 89.9%나 늘어난 452개 제품으로 큰 폭으로 뛰었다. 올해 상반기에는 총 352개 제품이 인증을 받아 지난해 77% 수준에 이르렀다.
TV의 경우 2019년 에너지효율 1등급 제품은 226개에 불과했지만 지난해 3배에 가까운 658개까지 늘었다. 특히 올해 상반기 기준으로 총 736개가 1등급을 받아 이미 지난해 전체 수치를 넘어선 상황이다. 연초 삼성전자, LG전자 등 주요 기업의 프리미엄 신제품이 대거 출시되면서 덩달아 1등급 획득 건수도 늘어난 것으로 풀이된다.
드럼 세탁기는 2019년 32개에서 지난해 131개로 4배 이상 늘었으며, 에어컨도 14개에서 21개로 1등급 효율 제품이 증가했다. 에어컨의 경우 여름 성수기를 맞아 2분기에 신제품 출시가 이어지면서 올해 6월까지 84개 제품이 1등급을 받아 지난해 전체 수보다 4배나 늘었다. 또 김치냉장고는 2019년 352개에서 지난해 497개로 41.2%나 늘었다. 올해 상반기 현재 총 64개 제품이 1등급 효율을 받았다. 지난해 88개 제품이 1등급 효율을 받았던 의류건조기는 올해 6월 기준 76개 제품이 인증을 받아 조만간 지난해 전체 수치를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반면에 전기밥솥이나 냉온수기, 공기청정기 등은 2019년 대비 2020년 1등급 효율 제품이 줄었다. 상대적으로 에너지 효율 관심이 적은 소형 가전이거나 주로 직접 구매가 아닌 렌털 품목이라는 점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판매도 '쑥쑥'…가전업계 성장 동력 자리매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다양한 고효율 가전이 출시되면서 소비자 구매도 늘고 있다. 과거에는 제품 수가 제한적인데다 가격도 비교적 고가라 소비자 관심을 끌지 못했다. 하지만 지난해부터 업계가 경쟁적으로 고효율 가전을 출시하면서 소비자 선택폭이 넓어졌다.
삼성전자만 하더라도 냉장고, 세탁기 등 다양한 가전 품목에서 고효율 가전 판매 비중은 빠른 속도로 늘고 있다. 2019년 기준 전체 냉장고 매출에서 고효율 가전 매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30% 수준이었지만, 지난해 두 배인 60%까지 증가했다. 또 세탁기도 2019년 고효율 가전은 50%가량 차지했지만 지난해는 매출 대부분인 90%에 이르렀다.
가전 유통업계도 고효율 가전은 새로운 성장 동력이 된다. 한 가전 유통 업체의 경우 지난해 기준 에너지효율 1~2등급 의류관리기 판매 금액은 2019년 대비 50%나 증가했다. TV와 김치냉장고도 각각 15%, 12% 성장해 효자 노릇을 톡톡히 했다.
고효율 가전 시장 확대는 가전 시장 전반의 성장을 견인한다. 대부분 프리미엄 제품에 해당돼 판매 대수 대비 매출과 이익이 높기 때문이다. 실제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GfK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가전 시장은 21조1000억원을 기록해 전년 대비 14% 성장했다. 코로나19 유행으로 집콕족이 늘어 가전 수요가 확대됐고 여행 등을 대신에 가전제품에 투자하는 '대체 소비'가 늘어난 게 영향을 미쳤다.
무엇보다 2016년부터 진행했던 으뜸효율 가전 구매지원 사업이 지난해 소비 활성화 등을 목적으로 총 3000억원을 투입해 전 국민 대상으로 확대한 게 컸다. 유례없는 판매 지원으로 가전 수요가 고효율 가전으로 쏠리면서 매출은 물론 제품 R&D, 출시 등도 뜨거웠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으뜸효율 환급제도 기간 동안 냉장고, 세탁기 등 주요 가전 매출 중 고효율 가전 비중이 증가했다”면서 “이를 통해 해당 품목 전체 매출 성장에도 큰 기여를 한 것으로 나타난다”고 말했다.
◇고효율 바람 거세진다
올해도 가전 업계의 친환경, 고효율 바람은 지속될 전망이다. 올해 상반기만 하더라도 TV, 에어컨, 제습기 등 품목은 에너지 효율 1등급 획득 제품 수가 지난해 전체 규모를 넘어섰다. 의류건조기, 공기청정기, 냉장고 등도 이르면 3분기 안에 지난해 전체 수치를 뛰어넘을 것으로 보인다.
제품 라인업 확대와 함께 고효율 가전 띄우기도 뜨겁다. 특히 지난해 실시한 으뜸효율 가전 구매 지원사업을 잇는 700억원 규모 '한국전력 고효율 가전제품 구매비용 지원사업'이 4월 23일부터 실시되면서 삼성전자, LG전자, 쿠첸, 위닉스, 위니아딤채 등 주요 가전업체 대부분은 추가 할인하는 프로모션을 진행했거나 실시 중이다.
소비 트렌드와 기업 경영 환경 변화도 고효율 가전 확대를 견인한다. 최근 TV나 세탁기, 냉장고 소비 트렌드는 프리미엄 제품이 대세다. 수익성 극대화를 위해 기업이 프리미엄 제품 판매에 열을 올리는 이유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대체 소비 등으로 소비자의 값비싼 가전 구매력이 높아진 영향도 크다. 프리미엄 가전 상당수가 에너지 효율 1등급을 포함하는 데다 업계도 성능과 환경을 동시에 만족시키는 제품으로 적극적 마케팅을 펼치면서 구매는 늘어날 수밖에 없다.
여기에 최근 최고 경영 화두로 떠오른 환경·사회·지배구조(ESG)가 강조되면서 고효율 가전 요구도 높아지는 추세다. 단순히 플라스틱 사용 줄이기나 생산시설 탄소 배출 감소 등을 포함해 에너지 효율을 높이는 제품 개발·생산을 늘리는 것 역시 중요한 ESG 경영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업계 관계자는 “단순히 정부 지침을 따르는 것을 넘어 기업도 ESG 경영 일환으로 고효율 가전 확대를 고민하기 시작했다”면서 “기업의 탄소중립 선언이 이어지는 가운데 사회 전체의 탄소중립을 위해서는 고효율 가전 확대를 위해 R&D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정용철기자 jungyc@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