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 세계 최대 자산 운용사 블랙록의 래리 핑크 회장이 기업 최고경영자(CEO)들에게 보낸 연례 서한이 국내 대기업의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경영, 정부의 탄소중립 정책에 태풍을 몰고 왔다.
산업단지 중소기업 경영자들은 전쟁과도 같은 탄소중립 관련 규제에 불안한 눈빛을 보내며 두려워하고 있다. 중소기업은 주52시간제, 최저임금 급속 인상, '화학물질의 등록 및 평가 등에 관한 법률'(화평법), 화학물질관리법(화관법) 등 국내법 대응도 버거운데 여기에 '탄소중립 세계 대전'도 기다리고 있어 미래가 불안한 것이다.
한국산업단지공단은 지난 15년여 동안 미니클러스터 지원사업을 해 왔다. 산단별 주력 업종 중심으로 기술 교류, 해외시장 개척 등 다양한 지원으로 기업들로부터 호평을 받아 왔다. 그러나 이제 지원 방법도 변화해야 할 때가 됐다. 중소기업들이 가장 고민하는 탄소중립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게 미니클러스터 제도를 활용해야 한다.
반월·시화 산업단지에는 미니클러스터 네트워크를 활용해 스마트에너지플랫폼 협동조합이 이러한 변화를 선도하고 있다. 산단 중소기업 탄소중립의 핵심은 대·중소기업 상생이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하청 관계가 아니라 탄소중립 동반자 관계로 새롭게 정립돼야 한다.
대기업에서 탄소중립을 완성하려면 스코프 1, 스코프 2, 스코프 3를 모두 고려해야 한다. 스코프 1은 기업 내부 탄소 직접 배출, 스코프 2는 기업 내부 활용 에너지로 인한 탄소 간접 배출, 스코프 3은 제품의 공급망 탄소 배출이다. 대기업은 공급망에 구성된 중소기업의 탄소 배출 정보가 없으면 스코프 3를 완성할 수 없다. 이에 따라 대기업과 중소기업은 탄소중립 동반자 관계에 있다.
유럽 기업들은 탄소중립 관련 스코프 3 대응을 위해 유럽에 공급하는 제품의 전과정평가(LCA) 보고서를 요구하고 있다. 이러한 현안이 지금은 장애물로 보이지만 결코 걸림돌이 아니다. 디딤돌이다. 즉 위기는 기회이다. 그러나 산단 중소기업엔 전문가도 없고 인력 충원도 여의치 않다. 참고할 만한 사례도 없어 협동조합에 도움을 요청, 함께 장애물을 넘고 있다.
협동조합은 산단 입주 기업을 위해 스코프 3 지원을 준비하고 있다. 첫 번째 단계는 중소기업 경영자들과 직간접 탄소중립 초기 사업을 함께해 보는 것이다. 대표 사례가 롯데칠성음료와 탄소중립 관련 대·중소기업 상생 사업이다. 롯데칠성음료의 탄소를 줄이는 사업에 산단 중소기업들이 제품·소프트웨어(SW)를 공급, 상생하는 사업이다. 대기업인 롯데칠성음료의 용기가 필요한 사업으로, 앞으로 많은 산단 중소기업이 참여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다음은 중소기업 경영자 대상의 탄소중립 공유 리더스 교육과정 운영이다. 탄소중립 대기업 사례, 정부·지자체 탄소중립 정책 등을 통해 경영자들이 탄소중립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대처할 수 있게 한다는 게 목표다.
두 번째 단계는 산단 기업 가운데 대기업 공급망 기업 중심으로 탄소중립 행동을 지원한다. 중소기업의 탄소중립 전략 및 이행 지원, 탄소중립 수준 등급 지정 등이다. 이 부분에서는 산단에 행정적·자금적 지원이 필요하다. 이때 지방정부가 지원하는 등 협력하면 효과가 배가될 것이다. 미니클러스터 지원사업에 탄소중립 지원사업의 추가가 필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세 번째 단계는 산단 탄소중립 대·중소기업 상생 모델을 사업화해서 세계 시장을 선도하는 것이다. 향후 비즈니스 모델을 염두에 두고 실행해야 한다. 정부가 지속적으로 지원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각 미니클러스터가 독자 운영할 수 있도록 경영적 마인드를 쌓아야 한다.
탄소중립 정책을 검토하고 예산을 잡고 지원하려면 최소 1년이 소요되기 때문에 현재 가능한 것부터 선실행 후지원이 필요하다. 탄소중립은 기업이 더 적극 나서고 정부는 뒤에서 돕는 구조로 가야 한다. 오는 2050년 탄소중립은 수출 산업 구조를 갖춘 우리에게 위기가 아니라 기회이다. 중소기업 경영인들이 적극 나서야 할 때가 왔다.
현동훈 산업기술대 교수 hdh@kp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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