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21일(현지시간)은 우리 원자력 역사에 한 줄을 더한 날이다. 이날 정상회담을 마친 후 한·미 정상은 “양국은 원전사업 공동 참여를 포함한 해외 원전시장 내 협력을 발전시켜 나가기로 약속했다”고 발표했다. 이로써 우리나라가 원전 기술 종주국인 미국의 협력 파트너로서 손색없는 원전 기술 선진국임을 국제사회에 공표한 것이나 다름없게 됐다.
안전, 핵안보, 비확산. 양국의 원전사업 공동 참여 구상을 실현하기 위한 세 가지 전제 조건이다. 양국이 수출하는 원전은 세계 최고로 안전해야 한다. 수출 원전의 안전을 위협하는 물리적 또는 사이버 공격에 대비해야 한다. 수출 원전 기술이나 부품이 군사적 목적으로 전용될 가능성도 차단해야 한다. 이들 전제 조건의 충족을 위해 한·미 두 나라의 당국이 이른 시간 안에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있다.
원전 안전의 밑바탕인 품질보증 기반을 구축해야 한다. 첫째 양국 업체가 원전 설비 및 기자재 설계·제작·운영에 공통으로 적용할 기술 기준과 규격을 정해야 한다. 양국의 원전사업 공동 참여는 양국 업체가 원전 설비와 기자재를 분담해 자국에서 설계·제작한 후 현장으로 운반해서 설치하는 형태로 진행될 공산이 크다. 이들 설비와 기자재를 결합한 원전이 제 성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양국 업체가 공통 기술 기준과 규격을 사용해야만 한다.
둘째 양국 업체에 대한 공동 자격관리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 양국은 자국 원전에 설비 및 기자재 등을 공급하는 업체 자격을 관리하고 있다. 대부분 업체는 자국 내에서만 유효한 자격이 있다. 양국 공통 자격 요건을 만족시키는 업체를 양국 정부가 상호 인증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양국이 자국 또는 공동 참여 원전사업에 상대국 업체를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셋째 양국 공동 원전사업에 적용할 손해배상(Liability)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 공동 원전사업 수행 시 양국 업체가 원전 수입국 등에 손해를 끼친 경우 책임 소재 파악 및 그에 따른 배상 방안 등을 정해 놓아야 한다. 이와 함께 양국 업체의 면책 범위도 명확하게 해 놔야 한다.
수출 원전과 관련한 핵안보 대책도 필요하다. 첫째 원전 설비와 기자재 운반에 대한 방호체계가 필요하다. 원전 적기 건설을 위해서는 양국 업체가 제작한 설비나 기자재를 현장까지 안전하게, 제시간 안에 운반해야 한다. 핵연료도 마찬가지다. 운반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온갖 위협 요소를 차단하고, 안전사고를 예방할 수 있는 방호체계를 갖춰 놔야 한다.
둘째 핵물질과 원전에 대한 물리적 위협과 사이버 공격에 대한 보안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원전 수출 지역에 따라 원전이 다양한 위협에 노출될 수 있기 때문에 만반의 대비를 해야 한다. 사용후핵연료는 테러나 핵확산 대상이 될 수 있기 때문에 특히 신경 써야 한다. 원전 디지털 설비는 제작 단계부터 악성 소프트웨어(SW) 이식 등을 차단해야 하기 때문에 이때부터 적용할 수 있는 보안대책이 필요하다.
실효적 핵확산 방지를 위해 통상의 제도적 수단 이외에 기술적 비확산 수단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제어봉 구동장치 등 수출 원전 핵심 부품을 블랙박스 부품으로 개발하는 것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블랙박스 부품이란 원전 수입국이 복제할 수 없고, 단지 유지·관리에 필요한 지식만 전달받아 운영하는 부품을 말한다. 이를 통해 원전 수입국의 핵확산 가능성을 차단할 뿐만 아니라 양국의 원전 기술에 대한 지식재산권을 보호하는 효과도 볼 수 있다.
실천 과제 하나하나가 여러 부처의 협력이 필요한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관련 부처의 유기적 협력을 끌어낼 범부처 조직이 필요하다.
문주현 단국대 에너지공학과 교수 jhmoon86@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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