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쯤 그런 상상을 해보지 않는가? 포만감을 느끼지 못해서 먹고 또 먹다가 결국엔 배가 터져버리는 그런 상상 말이다. 하지만 자연계 어디를 둘러봐도 자기 배가 터질 때까지 음식을 섭취하는 동물은 없는 것 같다. 지극히 단순해 보이는 질문이지만 그전까지는 동물이 배가 터질 때까지 음식을 먹지 않는 생리학적 이유를 알지 못했다. 그런데 바로 그 이유를 한국의 과학자들이 찾아 냈다.
◇과식을 억제하는 신호
KAIST 생명과학과 서성배 교수 연구팀은 초파리 연구를 통해 과식을 방지하는 신경세포의 활성 조절을 발견했다. 간단히 말하자면 이렇다. 동물의 뇌 속에는 미각 신경이 생기기 아주 오래전부터 영양분 감지 신경세포들이 존재해왔다. 이를 '디에이치44' 신경세포라고 하는데, 이 신경세포가 활성화되면 초파리의 식사량이 증가한다. 이때 배가 부르면, 다시 말해 몸 안에 당도가 높아지면 디에이치44 활성화를 억제하는 신호가 발생하고 이것이 음식물을 더 섭취하는 것을 막는다.
이번에 연구팀은 신경세포를 활성화하거나 억제하는 이 신호가 어디서 발생하는지 알아보기 위해 여러 말단 장기들을 하나씩 제거해 나갔다. 그 결과 초파리의 위에 해당하는 내장 부위와 척수에 해당하는 복부 신경중추에서 디에이치44 억제 신호가 발생하는 것을 찾아냈다.
◇두 가지 신호가 과식을 억제한다
신호 발생 과정을 자세히 분석했더니 이 신호는 물리적 신호와 화학적 신호, 두 가지로 발생한다는 사실도 아울러 밝혔다. 디에이치44 신경세포는 내장 기관에 신경 가지를 뻗어 기관에 음식물이 차서 팽창하는 것을 물리적으로 인지했다. 이 인지 현상은 '피에조 채널'을 통해 일어난다. 피에조 채널은 특정 세포나 조직에서 일어나는 물리적인 팽창을 감지할 수 있는 일종의 센서다.
연구팀은 피에조 채널을 통해 음식물을 섭취한 초파리 위의 물리적 팽창을 감지하고, DH44 신경세포의 기능을 억제함으로써 추가 섭취를 막는다. 이는 물론 내장 기관을 보호하기 위해서다. 실제로 모기를 대상으로 피에조 채널을 교란시키자 모기가 인간의 피를 끝없이 빨아먹다 배가 터져버리기도 했다.
다른 신호는 화학적 신호로서 또 초파리의 복부 신경중추에서 발생한다. 이 신경중추에 있는 '후긴(Hugin)'이라는 신경세포는 몸 속 영양분의 농도가 높으면 DH44 신경세포들의 활성을 억제하는 기능을 한다. 이 역시 소화기관 같은 내장에 부담을 줄 수 있는 과식 행동을 방지하는 역할을 한다.
이번 연구는 동물의 뇌 속에 존재하는 영양분 감지 신경세포가 다양한 신호전달 체계에 의해 작동된다는 것을 입증한 사례다. 물론 초파리를 대상으로 한 연구이기에 사람의 식이 와는 다르지만 식이장애 치료나 비만예방에 도움을 주는 연구의 단초가 될지도 모른다.
글: 정원호 과학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