퀄컴·브로드컴 등 글로벌 팹리스 물량을 주로 소화하던 삼성전자 5나노미터(㎚) 파운드리 공정을 국내 팹리스 업체도 이용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삼성전자 '디자인솔루션파트너'(DSP)들이 5나노 초미세 반도체 공정 설계 지원을 시작했다. DSP는 팹리스 업체들의 설계를 지원, 삼성 파운드리 공정을 활용하도록 '가교' 역할을 하는 반도체 디자인하우스다. 삼성의 5나노 초미세 공정 설계 지원으로 국내 시스템 반도체 및 파운드리 생태계가 고도화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된 것으로 평가된다.
5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 DSP의 일부 디자인하우스가 5나노 공정 과제를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삼성전자 DSP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올해 초부터 국내 DSP가 삼성전자와 초미세 공정인 5나노 과제를 시작했다”면서 “그동안 국내 DSP의 10나노 이하 반도체 설계 지원과 삼성전자의 파운드리 공정 간 최적화가 어렵다는 평가가 있었지만 최근 역량이 강화돼 5나노 과제까지 수주할 수 있게 됐다”고 밝혔다.
DSP에서 추진하고 있는 5나노 과제는 인공지능(AI) 관련 첨단 반도체 설계 지원 및 최적화로 추정된다.
삼성전자는 지난 2019년 4월 극자외선(EUV) 기술을 기반으로 5나노 공정 개발을 공식화했다. 퀄컴과 브로드컴 등 글로벌 상위 팹리스나 삼성전자 자체 물량을 주로 맡고 있다. 해외 팹리스들은 삼성전자 디자인하우스 협력사인 DSP를 이용하지 않고 대부분 직접 협력한다. 워낙 강력한 설계 자산을 확보하고 있어 중간에 디자인하우스가 끼어들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반면에 설계와 파운드리 공정 최적화 역량이 부족한 국내 중소·스타트업 팹리스들은 DSP를 통해 반도체를 위탁 생산해야 한다. 그러나 지금까지 DSP 규모가 크지 않아 10나노 이하 초미세공정 설계가 어려웠다. 5나노 공정 디자인 설계비용은 28나노 대비 10배 이상이지만 인건비 등을 고려하면 이를 감당할 DSP의 '체력'이 부족했다는 게 중론이다.
업계 관계자는 “5나노 공정 디자인을 하려면 과제당 100명 안팎의 인력이 필요해 규모가 작은 국내 DSP가 과제를 맡는데 한계가 있었다”고 지적했다.
이에 삼성전자는 인력 확대 등 DSP 역량 강화를 지속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DSP 업체들은 최근 1~2년 동안 공격적인 '몸집 불리기'에 나섰다.
지난해 DSP에 합류한 에이디테크놀로지는 삼성전자 파운드리 협력사 SNST와 아르고를 인수합병(M&A)했다. 에이디테크놀로지는 현재 자회사 포함 400여명의 인력을 확보했다.
또 다른 DSP인 하나텍도 일찌감치 실리콘하모니를 합병, 사세를 키웠다. 하나텍은 올해 초 DSP인 코아시아와 사업 협력을 공식화했다. 양사 보유 기술과 인력을 공유해서 시스템 반도체 대형 사업을 수주하겠다는 전략이다. 코아시아·하나텍 연합군의 인력도 약 400명이다.
세미파이브도 세솔반도체를 인수했다.
한 DSP 업체 대표는 “과거 삼성 DSP 생태계가 TSMC 등 경쟁 디자인하우스보다 부족하다는 평가가 실제 있었다”면서도 “이제는 국내외 중소·스타트업 팹리스 업체가 5나노 공정 설계 지원을 요청해도 충분히 수행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됐다”고 밝혔다.
DSP의 5나노 설계 지원은 국내 팹리스의 첨단운전자보조시스템(ADAS), 서버 등 첨단 미세 공정 반도체 제조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이는 삼성전자의 DSP 생태계 지원도 한몫했다. 삼성전자는 반도체 설계자산(IP)을 공유하고 시제품 생산을 12인치 웨이퍼 등 첨단 공정까지 활용하도록 지원 범위를 확대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최근 국내 중소 팹리스 업체의 시제품 개발을 지원하는 '멀티프로젝트 웨이퍼'(MPW) 서비스를 통해 5나노 공정 문호를 연 것으로 파악됐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개별 DSP와 협력하고 있는 과제에 대해서는 확인해 줄 수 없다”면서도 “삼성전자 파운드리 생태계 강화를 위해 DSP 기술 지원을 강화하고 있다”고 밝혔다.
권동준기자 djkwo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