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표준특허 '세계 1위' 검증이 필요하다

[기고]표준특허 '세계 1위' 검증이 필요하다

우리나라는 지난 2020년 하반기 기준 3대 국제표준화기구인 국제표준화기구(ISO)·국제전기기술위원회(IEC)·국제전기통신연합(ITU)에 통신·동영상 관련 표준특허를 가장 많이 '선언'(Declaration)한 나라다.

표준특허는 3대 기구가 규정한 표준규격을 기술적으로 구현할 때 필수로 실시해야 하는 특허다. 2016~2019년 5위이던 것을 생각하면 격세지감이다.

자긍심을 가질 만한 성과지만 세계 1위를 차지한 선언 숫자의 의미도 살펴봐야 한다.

선언이란 국제표준화기구가 특허권자로 하여금 권한을 남용하지 못하도록 권리 행사를 제한하는 것을 말한다. 특허권자는 '합리적이고 비차별적 조건으로 특허권을 행사한다'는 데 동의하고 특허 매복을 막기 위해 공개 의무를 지켜야 한다.

문제는 기업이 선언을 과도하게 하고 있다는 점이다. 선언은 특허권자의 신고로 성립된다. 별도의 심사 과정이 없다. 표준화 기구는 기업에 표준화 활동 초기부터 선언을 요구하고, 기업은 의무를 준수하기 위해 선언하면서 이런 경향이 뚜렷하다.

IPLytics 보고서에 따르면 이동통신 표준 기술(2G, 3G, 4G, 5G)과 관련해 선언된 특허 건수는 2016년에는 6000건 이상이었지만 2019년에는 1만6000건 이상으로 3년 만에 2.6배 이상 급증했다.

이런 양적 성장이 질적 측면에서 우수성을 담보하진 않는다. 표준특허로 선언된 특허 가운데 실제 표준특허로 인정받는 비율은 30% 미만이라는 결과도 있다.

선진 기업의 특허 전략이 '양적 성장'에서 질적 성장으로 전환되는 반면에 후발 기업은 여전히 양적 성장에 치중하는 상황과 궤를 함께한다.

국제 표준 활동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는 해외 선진 기업은 충분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노하우를 쌓아 가며 표준특허 품질을 높이는 질적 성장을 추구하고 있지만 국내 기업은 아직 양적 성장에만 치중하면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특허 경쟁에서 퇴보하고 있다.

퀄컴의 5세대(5G) 이동통신 표준 특허 점유율(7.84%)은 4G 표준 특허 점유율(6.00%) 대비 1.84%포인트(P) 감소한 반면 퀄컴에 로열티를 지불하고 있는 기업과 비중이 늘고 있다는 사실도 이에 대한 방증이다.

인공지능(AI)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딥 페이크가 증가하면서 판별기술도 발전하고 있다. 양적 성장에 치중한 숫자 지표도 일종의 딥 페이크로 볼 수 있다.

보완책은 무엇일까. 표준 필수성 검증이다. 표준 필수성 검증이란 기술표준 문서를 기술적으로 구현하는 데 필수로 실시해야 하는 특허 검증이다. 기업이 표준특허(SEP)으로 선언한 특허가 실제로 기술표준 문서에 부합하는지 확인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특허의 보호 범위는 특허법 제97조에 의거해 청구 범위에 적혀 있는 사항에 의해 정해지도록 규정된다. 그러나 청구 범위는 특허청의 심사 과정에서 발견되는 선행기술 문헌의 특허권자에 의해 여러 차례 조정된다. 이에 따라 표준특허로 선언됐다 해도 특허청 심사 과정에서 청구 범위가 조정돼 표준기술 문서와 부합되지 않을 가능성이 충분하다.

국내 기업의 특허가 표준 필수성 검증을 통해 기술표준 문서에 부합되지 않는다고 판별되면 그 원인을 찾을 수 있고, 기업은 이를 통해 더 촘촘한 특허를 확보할 수 있다.

일본은 2009년부터 사이버 창의 기관이 표준 필수성 검증을 수행하고 있다. 2020년 1월 보고서를 발표하면서 표준 필수성 검증 결과 세계 통신사 가운데 NTT 도코모가 실질적으로 세계 특허 1위라고 발표한 바 있다.

대만은 국가실험연구원 주도 아래 표준 필수성 검증을 수행하고 있고, 2013년께 표준 필수성 검증 결과 자국 기업이 세계 7위에 올라섰다고 발표했다.

이제 우리나라도 표준 필수성 검증을 서둘러야 한다. 이를 위한 지원책 등도 마련해야 한다. 국내 기업의 특허 경쟁력을 질적으로 보완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대책이다.

유상근 인벤스톤특허사무소 변리사 sgyu@invenstonepat.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