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논단]진짜 위기의 시작은 지금부터

한국경제는 외환위기, IT버블 붕괴, 글로벌 금융위기 등 크게 세 번의 위기를 경험했다. 중소기업 폐업과 도산이 줄을 이었다. 사장님과 근로자의 삶과 생계가 무너졌다. 그러나 살아야겠기에 희망을 품고 다시 일어섰다. 덕분에 한국경제는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월요논단]진짜 위기의 시작은 지금부터

먼저 외환위기를 살펴보자. 1998년 6만5401개의 중소기업 사업체가 감소했다. 쉽게 말해 문을 닫았다. 이 중에 소상공인은 3만8247개다. 그러나 1999년 13만4559개 중소기업 사업체가 증가했다. 1998년에 감소한 사업체의 두 배 수준이다. 오히려 전체 사업체는 1997년보다 많아졌다. 먹고 살기 위한 생계형 창업과 벤처붐을 타고 창업한 정보기술(IT) 기업이 뒤섞여 증가했다.

이로써 한국경제는 위기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오래 가지 않았다. 이후 소상공인 사업체가 2년 연속 감소했다.

2000년 6만5263개, 2001년 8만93개가 사라졌다.

준비가 부족했던 생계형 창업이 민낯을 드러냈고 IT버블에 갇혔던 벤처기업이 몰락했다.

중소기업은 늘 그러하듯 다시 일어섰다. 2002년 16만9758개 소상공인 사업체가 증가했다. 월드컵 특수가 한 몫을 했다. 끊임없이 생사를 반복하는 중소기업의 생명력에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주목할 것은 1988년 서울 올림픽을 전후한 경제상황이다. 당시 위기라 부르지 않았지만 중소기업은 큰 위기를 겪었다. 1970년대 중반 중동 건설 붐을 타고 오일달러가 쏟아졌다. '3저(낮은 금리, 낮은 유가, 낮은 원화가치)'가 지속하면서 경제 여건이 더할 나위 없는 상황이었다. 덕분에 주식 시장은 연일 상한가를 갱신했고 실물경제는 호황이었다.

그러나 임금과 물가가 치솟자 그늘이 드리워졌다. 부동산 가격까지 가파르게 상승했다. 임금과 물가는 치솟더라도 기업이 감당하면 되지만 실적이 임금과 물가 상승률을 밑돌았다. 기업은 도산했고 주식과 부동산 시장이 붕괴했다.

예상하지 못한 구세주가 나타났다. 1992년 한국과 수교한 중국이다. 1992년부터 5년 동안 중국에서 법인을 신설한 중소기업 수는 2369개다.

임금 상승에 직격탄을 맞은 경공업뿐만 아니라 노동집약에 의존하는 전자부품업도 중국으로 옮겨갔다. 중국이 없었다면 괜찮은 중소기업 2000여개가 도산했을 것이다.

중국은 경영환경이 악화한 중소기업에 오아시스였고 치솟는 임금과 물가를 감당해야 하는 한국경제에 단비였다.

지금 한국경제는 근근이 버티는 중이다. 재정 부담은 크지만 재난지원금을 쏟아부어야 한다. 그런데도 현장에선 부족하다고 아우성친다. 나는 여기에 국가채무 증가, 선별적 재난지원금 지급 등 뻔한 논란을 보태고 싶지 않다. 내년 대통령 선거와 그 이후가 진정한 위기임을 알아야 한다.

시장에 돈은 걷잡을 수 없이 풀렸다. 코로나가 종식되지 않은 한 계속 풀릴 것이다. 내년 대통령 선거와 지방 선거까지 고려하면 더욱더 그러하다. 선거가 8개월여 남았지만 돈줄을 죄라는 경고음이 들린다. 자산·원자재 가격이 예사롭지 않고 소비자물가도 꿈틀거린 지 오래다. 미국 연준위와 한국은행도 금리인상 신호를 보낸다. 선거는 이를 무시하고 돈풀기 경쟁으로 갈 수밖에 없다. 여기에 복지 논쟁이 더해지면 돈풀기 경쟁은 사그라지지 않을 것이다.

문제는 이게 아니다. 20대 대통령 임기는 내년 5월에 시작한다. 큰 숙제가 앞에 있다. 치솟는 물가를 잡아야 하고 중소기업 줄도산을 막아야 한다. 물가를 잡으려면 돈줄을 죄어야 하고, 줄도산을 막으려면 돈줄을 풀어야 한다. 중소기업 정책은 두 가지 문제를 동시에 풀어본 적이 없다. 서울 올림픽 전후가 그러했을 텐데 중국 덕분에 위기를 피했다.

지금은 다르다. 비빌 언덕도 없고 버틸 여력도 적다. 20대 대통령은 산업화와 민주화 다음의 방향을 제시하는 임무를 수행해야 한다. 그러나 시작과 함께 '호황 속 줄도산'이라는 전대미문의 상황을 경험할 것이다. 부디 지금부터 그 준비를 했으면 한다.

오동윤 중소벤처기업연구원장

dyoh@kosi.te.kr

※이병헌 중소벤처기업연구원장 후임으로 오동윤 원장이 선임됨에 따라 월요논단 필진으로 오 원장이 참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