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초 대만에서 터널로 진입하던 고속열차 선로에 트럭이 떨어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대만 북부 신베이시 수린에서 타이둥으로 향하던 여객 열차는 트럭으로 인해 객차 4량이 탈선했다. 사망 51명, 부상 188명의 사상자를 낸 엄청난 사고였다. 그로부터 약 2주 후 이집트에서도 객차 4량이 탈선하는 사고가 일어나 11명이 죽고 98명이 다쳤다. 미국에서는 위험물질을 싣고 달리던 화물열차가 탈선하면서 폭발하는 사고도 일어났다.
자동차에 비해 안전하다고 하지만 철도에서 한 번 사고가 발생하면 그 규모는 상상을 초월한다. 다른 교통수단보다 대규모 인명 및 재산피해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무게가 많이 나가는데다 고속철도 운행 속도가 시속 300㎞에 이를 만큼 빠르기 때문이다.
정해진 신호에 따라 레일 위를 달려야 하는 열차는 운전자가 원하는 대로 움직이는 자동차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구동한다. 열차 기관사 마음대로 정해진 속도를 벗어나거나 구간을 변경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초 단위로 미리 정해진 운전 시각을 지켜야 한다. 따라서 철도 안전을 지키기 위해서는 운전자인 기관사가 규정된 속도와 방법을 지키는 것은 물론 차량과 시설물 상태를 수시로 점검하고 안전하게 유지해야 한다. 철도는 차량을 비롯해 선로와 전차선 등 시설물, 주행을 지시하는 신호시스템과 관제운전, 그리고 이를 뒷받침하는 운영지원체계가 유기적으로 구성된 복합 운송체계라고 할 수 있다. 철도는 기계와 전기, 전자, 토목을 망라하는 최첨단 기술의 집약체다. 철도안전관리가 종합적이고 체계적이며 과학적이여야 하는 이유다.
◇ 철도 사고와 장애 발생↓ 안전투자는 ↑
철도는 설계와 건설 과정의 안전뿐 아니라 지속적인 관리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다행히 안전 관리 강화로 철도 사고와 장애 발생 빈도는 매년 줄어들고 있다. 안전 투자도 늘어나는 추세다.
철도안전정보종합관리시스템에 따르면 2016년 철도 사고 건수는 고속철도 6건, 일반철도 57건 , 도시철도 61건으로 집계됐다. 2020년에는 고속철도 0건, 일반철도 26건, 고속철도 31건으로 줄었다.
철도안전 바로미터라고 할 수 있는 열차 운행 1억km 기준으로, 지난해 주요 사고는 4.7건으로 집계됐다. 목표치 12건보다 훨씬 낮다. 전년 대비 9건이 줄었다. 1억km 당 사망자수도 4.7명으로 전년 대비 1명이 늘었지만 목표보다는 낮다.
철도 사고를 줄이기 위한 안전 투자는 지속적으로 확대되는 추세다. 한국철도공사·에스알·서울교통공사 등 철도 운영기관의 투자 실적은 2018년 1조4000억원에서 2020년 2조5691억원으로 껑충 뛰었다. 증가율이 82.7%에 이른다.
올해부터 2023년까지 3년 동안 안전투자 계획은 총 8조8036억원이다. 2018년부터 2020년까지 최근 3년 동안 실적인 5조4849억원보다 61%가 늘어난 수치다. 항목별로는 시설개량(4조1628억), 차량교체(2조7423억)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3년 전 실적 대비 차량교체는 9888억(56%), 시설개량 1조4413억(53%) 증가가 예상된다.
이러한 활동에 힘입어 우리나라의 철도 안전에 대한 국제적 위상도 해마다 높아지고 있다. 국제철도연맹(UIC)과 유럽철도국(ERA) 연차보고서는 한국철도를 세계에서 가장 단시간 내에 안전성을 개선한 국가이자 철도 안전성이 매우 우수한 국가로 평가했다. 유럽연합(EU) 산하 집행기구인 유럽철도국(ERA)은 철도사상자수, 시설피해정도, 장시간 열차운행 지연 등의 철도사고 지표를 관리한다. 이 가운데 2019년 기준으로 운행거리가 1억km이상인 유럽연합(EU) 철도선진국과 비교해보면 한국철도의 안전관리는 유럽연합의 최상위 수준이다. 영국에 이어 2위다.
코로나19 상황에서 우리나라 철도 운영기관들의 방역 사례는 귀감이 되기도 했다. 국제철도연맹(UIC)과 세계은행 등 국제 기구를 통해 우리나라 철도 기관들의 코로나 대응 사례가 우수 사례로 소개됐다.
◇ 노후 열차 문제 해결 숙제
투자가 늘었다고 하지만 장애건수는 줄지 않았다. 장애와 고장은 줄었다 늘었다를 반복하는 제자리 걸음이다. 장애건수는 2016년 245건을 시작으로 2017년 253, 2018년 231, 2019년 348, 2020년 222건에 이른다. 차량고장, 신호장애 등 원인은 다양하다.
운행장애를 일으킨 가장 큰 원인은 차량 노후화 문제다. 지난해 국토교통부 국정감사에서 김회재 더불어민주당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5년 간 철도차량 운행장애 건수 중 부품 불량·노후 원인이 66%인 것으로 나타났다.
광역전동차 총 2580칸 중 20년 이상된 칸은 1080칸으로 전체의 41.9%를 차지한다. 이 중 차량 수명 25년이 넘은 칸은 393칸(15.3%)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4월 신길역에서 노후 차랑 차축이 끊어지면서 탈선하는 사고가 발생했는데, 해당 차량은 1996년 제작돼 24년째 운행된 노후열차였다.
노후 차량 교체가 시급하지만, 철도 운영기관이 나서기는 쉽지 않다. 철도를 주문해서 도입하는 데까지 몇년 걸리는데, 이를 책임지는 운영기관의 CEO는 임기가 3년에 불과하다. 업계 관계자는 “임기 기간 노후 차량 교체를 시도하면 경영 수치는 악화되는데, 안전을 높이는 효과는 그 다음 임기에야 실현된다”고 지적했다.
이 때문에 노후차량 교체 등 경영진이 적극적으로 안전을 위한 투자를 집행하도록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도시철도법은 그나마 개정안이 통과되면서 정부 지원도 받을 수 있게 됐다. 올해 철도 예산 중에는 당초 정부안에 없었던 도시철도 노후차량 교체지원 사업이 도시철도법 개정으로 들어가게 됐다.
◇ 철도안전 연구개발 과제 추진…미래 철도 안전 고도화를 위한 투자
철도 수요가 높아짐에 따라 정부는 지역 균형발전을 위한 가장 중요한 수단으로 광역철도 등 지역의 철도 인프라를 확대한다. 지난 달 국토교통부는 4차 철도망 구축계획을 확정하고 광주와 대구를 잇는 달빛내륙철도를 비롯해 지역 거점도시를 잇는 광역 철도를 집중적으로 구축하겠다고 밝혔다. 제4차 국가철도망 구축계획에 들어가는 돈은 총 119조8000만원에 이른다. 지난 3차 구축 계획대비 29조원 이상 늘어난 금액이다. 10년후 우리나라 철도의 비중은 더욱 높아진다는 뜻이다. 그만큼 철도 운영과 관리 역할이 더욱 커지게 된다.
새로운 철도의 등장과 함께 신기술도 떠오르고 있다. 중대형 철도 SOC는 20년 이상 경과된 시설이 증가하는 등 노후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으며, 열차운행이 잦아 충분한 유지보수를 적기에 시행하기 어려운 현실도 장애물이다.
이런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신기술이 개발되고 있다.
운행하고 있는 철도차량의 실시간 상태 데이터를 수집해 차량 부품별 고장 발생 시기를 예측하는 시스템이 대표적이다. 열차 운행 중에 발생하는 차량 고장의 현상과 원인을 실시간 분석한다. 차량이 고장 나기 전에 예방하는 스마트 유지보수를 할 수 있게 된다.
광섬유 센서에 기반한 철도선로 모니터링 시스템은 선로의 이상상태는 물론이고 낙석, 선로변 작업, 레일 절손 등 다양한 장애를 사전에 예방할 것으로 기대된다. 한국철도는 현재는 1차 시스템 설계와 데이터분석 알고리즘 개발을 마치고, 교량, 터널 등 테스트베드에서 선로 유형별 빅데이터를 추출하고 이를 검증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외에도 동절기 강설, 결빙으로 인한 장애를 예방하는 시스템이나 선로 상태 유지보수 장비인 멀티플 타이탬퍼 전용 점검시스템 개발 등 다양한 기술에 대한 연구개발이 진행되고 있다.
SRT 운영사 에스알은 인적 오류에 의한 열차안전사고를 예방하는 '신호연동 열차제어 시스템'을 SRT수서역에 설치하고 올해부터 운영을 시작했다. '신호연동 열차제어 시스템'은 운전자가 정지신호에 신호오인으로 운행을 시도할 경우 열차를 강제 정차시키는 제어시스템이다. 지난해에는 동탄역에 '열차정지위치 점멸시스템'을 설치해 승강장 정지위치 어김사고를 예방하는 등 열차운행 안전성 강화를 위한 시설개선을 추진하고 있다.
문보경기자 okmu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