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계 "인재정책 혁신 시급...혁신인재본부 신설해야"... 16개 정책 과제 건의

인재확보 시스템-제도 정비 강조
민간 중심 국가기술 혁신도 필요
활력 넘치는 산업기술 환경 조성

산업계 "인재정책 혁신 시급...혁신인재본부 신설해야"... 16개 정책 과제 건의

“급변하는 산업환경에 맞춰 인재정책을 총괄할 '혁신인재본부' 신설이 필요합니다.”

“제도 난맥상을 뛰어넘어 기업 애로를 해결할 수 있는 '기업기술혁신특별법'을 제정해야 합니다”

“연대보증 및 정부 연구개발(R&D) 사업 기술료는 조속히 폐지해야 합니다.”

기업이 급변하는 글로벌 산업환경에서 우리 경제가 성장하기 위해, 교육, 법률, 제도, 금융 등 모든 분야에서 기존 제도 한계를 뛰어넘는 파격 혁신에 앞장서야 한다는 데 중지를 모았다.

한국산업기술진흥협회(회장 구자균)는 이 같은 내용을 중심으로 하는 '기업이 바라는 산업기술혁신정책 건의(안)'을 마련하고 국회와 관련 정부 부처, 정책입안자 등에 전달한다.

산기협은 지난해 12월부터 6개월간 7만5000개 기업 연구소 의견을 바탕으로 14명의 산학연 전문가로 구성된 정책자문단 및 연구진이 16개 산업기술혁신 정책과제를 도출했다.

도출된 16대 과제에 대해 지난달 22일부터 일주일간 국내 1300여명의 대표이사, 최고기술책임자(CTO), 연구소장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 분야별 중요 추진과제를 선정했다.

산기협은 건의안에서 우리나라가 '외부환경 변화, 혁신역량 약화, 시스템적 한계'로 인해 성장이 정체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민·관이 함께 뛰는 기술혁신 선도국가를 비전으로 △완전히 새로운 인재확보 시스템 △글로벌 수준으로의 제도 정비 △민간 중심 국가기술 혁신 파트너십 △활력 넘치는 산업기술 환경 조성 등 4대 정책방향을 제시했다.

◇인재 양성 구조 혁신해야

'완전히 새로운 인재확보 시스템 구축'과 관련해 기업은 저출산·고령화 현상이 인적 자원의 양적·질적 하락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에 따라 산업기술 경쟁력 근간이 흔들리고 있어 완전히 새로운 인재확보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대안으로 미래 혁신인재정책을 총괄하는 독립 전담부처인 '혁신인재본부' 신설을 제안했다. 혁신인재본부가 신산업 인재 양성 관련 전략·정책 수립 컨트롤타워 역할을 수행해 국가 역량을 결집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첨단기술 인력 부족을 해소하기 위한 수단으로는 기업이 직접 필요한 인재를 양성하는 (가칭)한국형 다이슨대학을 설립·운영할 수 있도록 법·제도 제정을 제안했다. 다이슨대학은 영국 전자제품기업 다이슨이 개발엔지니어 부족현상 해소를 위해 영국 정부 인가를 받아 2017년 설립했다. 전문 엔지니어 배출, 고용에 적지 않은 성과를 거두고 있다.

정책과제 중요성을 묻는 설문조사에 산업기술인은 혁신인재본부 신설(72.8%)이 가장 중요하다고 응답했다. 기업이 직접 인재를 양성할 수 있는 한국형 다이슨대학 설립(49.5%)이 뒤를 이었다.

생산인구 감소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현재의 6(초)-3(중)-3(고)인 초중등 교육과정을 6-5체제로 변경하거나 대학교육을 3-2(학·석사)로 하는 학제 단축을 골자로 교육시스템 재설계를 위한 사회적 논의를 시작하자고 제언했다. 글로벌 우수 인재의 국내 유입을 촉진하는 우수 핵심인력 유치를 위한 특별비자 도입도 제시됐다.

세부 제안내용으로는 기업의 여성 연구인력 채용 및 활용을 장려하기 위해 출산·육아 대체인력 채용 때 정부가 지원하는 방안과 해외 우수인력의 국내 정착을 돕기 위한 '국제학교 증설'을 비롯한 인프라 구축 등 내용이 포함됐다.

기업 규모별로는 중소기업 73.1%가 혁신인재본부 신설이 중요하다고 응답했다. 대·중견기업도 혁신인재본부 신설(68.8%)이 중요하다는 응답이 가장 높게 나타났으나 한국형 다이슨대학과 같이 기업이 직접 산업계에 필요한 인재를 양성할 수 있는 특수대학이 필요하다는 응답도 62.5%로 비등했다.

◇환경 급변에 맞춰 제도도 변화해야

기업은 새로운 기술 출현이 가속화되면서 기존 산업 및 법률 시스템과 충돌 빈도가 높아지고 있으나 낡은 규제체계가 이러한 갈등을 해결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글로벌 표준에 맞지 않는 관행과 제도 개선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았다.

이를 위해 영국이 융복합 신기술 등에 적용하는 가벼운(Lean) 규제 접근법 도입을 제안했다. 폐지해야 할 대표적인 불합리한 관행으로는 연대보증 및 정부 R&D 사업 기술료 등을 손꼽았다. 기업 규모에 따라 차등 적용하는 R&D 조세지원을 혁신성에 따라 인센티브를 차등하는 방식으로 개선해줄 것도 제안했다.

우선순위를 묻는 질문에는 불합리한 관행과 규제형 제도 폐지(78.5%)가 중요하다는 응답이 압도적으로 높았다. 이어 파격적 R&D 조세지원제도(58.8%)로 기업 R&D에 대한 투자 의지를 고취시키고 기술혁신 관련 상위법인 기업기술혁신특별법 제정(37.2%)으로 뒷받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현재 부처 간 경쟁으로 인해 소규모 과제가 난립하면서 파급효과가 큰 성과 창출을 방해하는 문제점을 꼬집으면서 'Big Success'를 지향하는 대형·성과형 R&D 프로그램 도입도 제안했다.

기업 규모별로는 대중소기업 모두 규제 폐지와 조세 지원을 1~2순위 과제로 꼽았다. 대기업의 경우 대형·성과형 R&D 프로그램이 필요하다는 응답이 46.3%로, 중소기업 24.2%보다 훨씬 높게 나타나 차이를 보였다.

◇R&D 민간 수요 빠르게 반영해야

민간 중심 국가기술혁신 파트너십과 관련해선 국가 R&D가 민간의 빠른 기술혁신 속도를 따르지 못하는 양상이 지속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원인으로 국가 R&D가 공급위주 정책과 선형적 R&D 관리 체계를 지목했다.

기업은 민간 수요를 중심으로 하는 새로운 국가기술혁신체계 설계가 시급하다고 역설했다.

기획-관리-평가의 국가 R&D 사업 전주기에 기업이 주도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상설 협의체를 활성화하고 기업 의견이 국가 R&D 사업에 반영되는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또 공공 R&D 효율성 제고를 위해 산업기술 지원 정부출연(연)에 기업 이사를 확대하고 단계적으로 정부소유-민간위탁 경영(GOCO) 방식을 시범 적용하는 방안도 제시했다.

세부 과제와 관련해선 국가 R&D 기획-관리-평가 전반에 기업 상시참여체계 구축(78.4%)이 가장 높았다. 기업이 참여하는 산업기술지원 출연(연) 경영시스템 시범 도입(44.7%)이 뒤를 이었다.

탄소중립 실현을 위한 정부-기업 협력체계 강화, 세계적 민간혁신 싱크탱크 설립 지원 필요성도 제기됐다.

기업 규모별로는 국가R&D 기획 등에 기업 상시체계 구축이 중요하다는 응답이 대기업 77.5%, 중소기업 78.4%로 모두 가장 높게 나타났다. 반면에 대기업은 탄소중립 실현을 위한 정부·기업 협력체계(57.5%)를 다음 순위로 응답한 반면 중소기업은 기업이 참여하는 산업기술지원 출연(연) 경영시스템 시범 도입(45.1%) 중요도를 높게 꼽아 인식 차이를 보였다. 이는 중소기업이 출연(연) 경영시스템을 개선해 독일 프라운호퍼 연구소와 같이 확실한 성과를 창출해야 한다는 기대감이 반영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스타트업, 뛰노는 역동성 찾아야

기업은 현재 금융권이 기술력보다 재무 건전성을 중시여기는 관행을 고수, 기술혁신기업이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기업의 벤처투자를 가로막는 제약요인으로 인해 기업 주도형 벤처캐피탈(CVC)이 여전히 국외 활동을 선호하고 있다며 개선을 촉구했다.

대안으로 머신러닝 기법 등 혁신기법을 활용한 기술가치평가 체계를 도입하는 등 기술가치평가 체계 개선을 제시했다. 또 CVC 차입 규모 관련 자기자본 허용 기준 및 외부자금 조성액 기준 등 CVC 설립 및 운영요건의 과감한 완화를 촉구했다. 지식 수요자, 공급자, 협업파트너를 실시간으로 발굴하고 기업 R&D 활동 지원서비스를 범부처에서 통합 제공하는 국가 차원 오픈이노베이션 서비스 플랫폼 도입도 언급했다.

기업은 자유로운 기술벤처 투자환경 조성(61.8%)과 국가 차원 오픈이노베이션 서비스 플랫폼 구축(53.6%)이 가장 중요하다고 인식했다. 이와 함께 직무발명보상금을 비과세 대상으로 전환하는 등 연구개발 성과나 아이디어로 부자가 되는 것은 물론 사회적으로 존경받을 수 있도록 스타 기업인·스타 이노베이터 탄생을 지원해 청년으로 하여금 한국 스티브 잡스나 일론 머스크 꿈을 갖도록 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꾸준히 R&D에 투자하는 혁신기업에 대해 상속세를 환급하는 등의 지원을 함으로써 100년 장수기술 기업을 육성해 기술 축적 길을 열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기업 규모별로는 중소기업 62.8%가 자유로운 기술벤처 투자환경 조성이 중요하다고 응답했다. 이어 국가 차원 오픈이노베이션 서비스 플랫폼(53.5%), '스타 기업인·스타 이노베이터' 탄생 지원(47.4%) 순이었다. 대기업은 국가 차원 오픈이노베이션 서비스 플랫폼 구축(55.0%)을 가장 많이 꼽았고 100년 장수기술기업 육성(51.3%)이 뒤를 이었다.

마창환 산기협 상임부회장은 “글로벌 공급망과 산업구조가 재편되는 대전환기에 대응하기 위해 파격적 산업기술정책으로 성장 모멘텀을 확보해야 한다”면서 “기업 의견을 수용해, 혁신을 발목 잡는 낡은 시스템을 과감하게 정리해야 한다”고 건의 배경에 대해 설명했다.

산기협은 1979년 기업 기술혁신을 지원하기 위해 설립된 산업기술계 대표 민간단체다. 기업부설연구소 인정관리업무 수행하고 있으며 R&D와 관련된 기업 의견을 수렴해 정부에 건의하는 기능을 하고 있다.

최호기자 snoop@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