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패스는 우리나라의 대표 반도체 후공정(OSAT) 기업이다. 반도체 제조는 웨이퍼에 회로 패턴을 그려 반도체 다이를 만드는 전공정과 다이를 테스트하고 패키징해 칩으로 만드는 후공정으로 나뉜다. 전공정은 초미세 공정으로 전환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반도체 칩 성능을 끌어올리기 위한 후공정이 주목받는 배경이다. 네패스는 테스트부터 패키징까지 후공정의 거의 모든 과정을 '턴키'로 제공한다.
네패스는 우리나라 반도체 산업과 그 역사를 함께 한다. 1990년 네패스 전신인 크린크리에이티브가 설립된 후 2년 만에 반도체·디스플레이용 미세회로 형성용 현상액을 첫 국산화했다. 초기에는 화학 소재 사업에 집중했다. 2000년대 들어 창업자인 이병구 네패스 회장은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바로 시스템 반도체 패키징 사업에 나서 본격적인 반도체 산업에 뛰어든 것이다. 당시 국내에는 시스템 반도체, 그 중에서 첨단 패키징 기술은 굉장히 생소한 영역이었다. 네패스는 시스템 반도체 고성능화가 이뤄지면서 패키징 기술 중요성이 부각될 것이라고 예견하고 본격적인 사업화에 나섰다.
2000년 회사 내 반도체사업부를 신설하고 2001년 당시 150억원을 투자해 충북 오창에 부지 3000평 규모 패키징(플립침용 범프) 생산라인을 구축했다. 20년이 지난 지금 네패스의 반도체 부문은 계열사 포함 전체 매출의 83%를 차지할 정도로 핵심 사업으로 부상했다.
네패스는 끊임없는 연구개발(R&D)과 인프라 투자로 패키징 기술을 선도하는 기업이 됐다. 특히 팬아웃(FO) 분야에 압도적 우위를 자랑한다. 팬아웃은 반도체 다이 밖까지 재배선층(RDL)을 확장시켜 반도체 칩의 신호 입출력(I/O)을 늘리는 기술이다. 전력 효율성을 크게 높이고 칩의 신호 처리 능력도 개선할 수 있다. TSMC가 삼성으로부터 애플 칩 생산을 가져올 수 있었던 것도 이 팬아웃 기술 때문으로 알려졌다.
네패스의 팬아웃 패키징은 자회사인 네패스라웨와 네패스하임이 담당한다. 네패스는 팬아웃 패키징에 힘을 싣기 위해 2020년 2월 네패스라웨를 물적 분할했다.
■강점과 기회
네패스 강점은 첨단 팬아웃 패키징 기술에 있다. 팬아웃웨이퍼레벨패키징(FO-WLP)과 팬아웃패널레벨패키징(FO-PLP)이다.
전통적인 패키징은 웨이퍼에 회로를 그려 반도체 다이를 만든 후(전공정), 웨이퍼를 개별 다이로 자른다. 이를 다시 패키징 기판에 범핑해 연결하는 방식이다. 공정 과정이 여러 단계고 패키징 기판이 필요해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들었다.
이런 제약을 극복하기 위한 것이 웨이퍼레벨패키징(WLP)이다. WLP는 웨이퍼에 바로 RDL를 형성해 공정 과정을 줄인다. 또 웨이퍼에서 바로 패키징하기 때문에 패키징 기판을 사용하지 않는다. 비용 절감 효과뿐만 아니라 칩을 가볍고 얇게 만들 수 있다. 네패스에서 물적 분할한 네패스라웨가 글로벌 전장부품 업체에 FO-WLP을 제공하고 있다.
네패스는 한발 더 나아가 FO-PLP까지 상용화했다. PLP는 웨이퍼에 직접 패키징하는 WLP와 달리 반도체 다이를 사각형 패널에 배치해 패키징하는 기술이다. 원형에서 패키징하는 것보다 생산성은 높이고 비용을 줄일 수 있다. 네패스는 가로, 세로 각각 600mm 크기 사각 패널을 사용하는데 300mm(12인치) 웨이퍼 대비 장당 5~6배 많은 반도체를 생산할 수 있다. 보통 PLP는 WLP 방식보다 생산성이 96%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세계에서 FO-PLP 기술을 가진 회사는 네패스와 삼성전자, ASE, 파워텍, JCET 등이 있다. 네패스는 FO-PLP 패키징 설비 등 인프라 구축에 2019년 말부터 2000억원 이상을 투자했다. 충북 괴산군 청안에 약 6만평 규모 패키징 공장을 세웠다. 현재 양산 준비 단계로 알려졌다. 글로벌 팹리스 업체의 전력관리반도체(PMIC) 패키징에 FO-PLP를 적용하기 위한 성능 테스트를 진행 중이다. 최종 양산 승인을 받으면 PMIC에 FO-PLP를 적용한 세계 첫 사례가 될 전망이다. 이르면 하반기부터 매출이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
네패스 패키징 매출 가운데 PMIC와 디스플레이구동칩(DDI)가 절반이다. PMIC는 네패스의 주력이기도 하다. 국내 주요 고객사의 PMIC를 패키징, 테스트하고 있다. 최근 정보기술(IT) 기기가 고사양화하면서 효율적인 전력 관리를 위한 PMIC 채택이 늘고 있다. 스마트폰에서 PMIC 침투율이 높은데, 롱텀에벌루션(LTE) 스마트폰 대비 5세대(5G) 이동통신 스마트폰에서 PMIC가 2~3개 더 많이 쓰일 것으로 전망된다. 5G 스마트폰 시장이 크게 성장하고 있어 네패스 패키징 사업에는 호재다.
네패스 계열사 간 시너지 확대가 용이하다는 것도 또 다른 강점이다. 네패스라웨과 2020년 11월 상장한 네패스아크가 대표적이다. 네패스가 주력으로 하는 시스템 반도체는 메모리보다 다품종 소량 생산 방식이며 기술 난도가 높아 후공정 생태계 분업화가 필요하다. 네패스는 WLP, 네패스라웨는 팬아웃, 네패스아크가 테스트를 맡으며 고객사가 요구하는 '원스톱' 후공정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테스트 업체인 네패스아크 역시 제품별 매출 비중은 PMIC가 가장 많다. 5G 스마트폰 성장에 따른 또 다른 수혜 기업으로 떠오른다. 또 FO-PLP 양산 성공시 추가 PMIC 테스트 물량을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네패스아크는 이미지센서(CIS) 테스트 등 품목을 다각화해 안정적 수익 구조를 갖출 계획이다. 업계에서는 네패스 그룹의 후공정 생태계가 탄탄한만큼 네패스와 계열사가 동반 성장할 것으로 기대한다.
■약점과 위협
네패스는 반도체 시황에 영향을 크게 받는다. 반도체 후공정 핵심인 패키징 사업을 영위하다보니 시장 부침에 따라 실적 변화도 크다. 이번 1분기 실적이 그 예다. 반도체 공급 부족으로 시장이 활황이지만 네패스의 1분기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1.19% 증가한 951억3300만원 수준이었다. 증권업계에서는 네패스 패키징 사업이 2월부터 시작된 반도체 산업 생산 차질 문제 때문에 성장이 둔화된 것으로 평가했다. 김경민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네패스 매출 부진은 텍사스 오스틴 한파, 베트남과 인도 코로나 확산 영향을 받았다”고 평가했다. 즉 반도체 팹(제조 공장)의 생산에 따라 실적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의미다. 이러한 영향은 2분기 실적에도 일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이지만 하반기부터 주력 패키징 생산량 증가와 FO-PLP 매출 발생 가능성 등으로 실적 회복에 대한 기대감이 크다.
특정 반도체 제조사의 의존도가 높다는 것도 위험 요소다. 네패스 경우 국내 반도체 제조사 물량을 상당수 받고 있다. 해당 업체의 매출 비중이 60~70%에 달한다. 고객 다변화가 필요하다는 의미다. 네패스 관계자는 “고객 다변화를 위한 노력을 지속적으로 하고 있다”면서 “FO-PLP를 준비하는 것도 이러한 시도의 일환”이라고 밝혔다.
TSMC를 둘러싼 대만 OSAT 생태계는 네패스에 위협 요소다. OSAT 산업은 파운드리 산업과 함께 성장한다. 시장 점유율 50% 이상을 차지하는 세계 최대 파운드리인 TSMC 주변에는 그만큼 강력한 OSAT가 자리잡고 있다. ASE, 앰코 등이 대표적이다. TSMC와 거래하는 두 회사는 세계 OSAT 시장 1, 2위를 차지하고 있다. 안정적인 고객사를 확보한 대만 OSAT들은 최근 반도체 업황이 좋아지면서 설비투자(CAPEX)도 대폭 늘리고 있다. 기존 CAPEX 축소를 예고했던 ASE는 지난해 수준은 계속 유지하기로 방향을 틀었다. 앰코 역시 기존 5억5000만달러 CAPEX를 7억달러로 상향 조정했다. 경쟁사의 막대한 투자는 글로벌 OSAT 시장에서 네패스의 성장에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다.
■마켓 코멘트
◇하나금융투자
2분기 비용 증가는 자회사 네패스라웨의 양산 준비에서 비롯됐다. 3분기 연결 실적을 추정하기에는 아직 이른 상황이지만, 자회사들의 가동률 증가에 힘입어 분기 실적은 2분기에 바닥을 통과할 것으로 전망된다. 상반기에 전방 산업의 환경이 녹록하지 않았지만 여러 해외 고객사로 영업을 전개하고 있어 첨단 패키징·테스트 업종 주도주로 주목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현대차증권
상반기 실적이 기존 추정 대비 부진할 것으로 전망되어 실적 흐름은 상저하고의 흐름으로 갈 것으로 전망된다. 기존 사업 부문 주요 고객사의 생산 차질 이슈가 2분기 들어서며 회복돼 회사 실적 또한 하반기 회복될 것이란 점과 주요 모멘텀인 신규 고객사향 팬아웃(FO) 신사업에 대한 기대감은 여전히 유효하다. 그에 따른 실적 반영이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일어날 것. 목표주가는 5만5000원.
권동준기자 djkwo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