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임·옵티머스 자산운용 사태'로 촉발된 금융당국의 사모펀드 개편 방안이 벤처투자업계로 불똥이 튀고 있다. 비상장기업의 사모펀드(PEF) 출자자 참여를 제한하고, 운용인력 요건을 대폭 강화하면서 벤처캐피털(VC)의 PEF를 통한 후속 연계 투자가 막힐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진다. 상반기 3조원이 넘는 신규 투자를 기록하며 열기를 이어가는 제2벤처붐에 찬물을 끼얹는 조치라는 지적까지 나온다.
1일 업계에 따르면 금융위원회는 현행 사모펀드 분류 체계를 일반 사모펀드와 기관 전용 사모펀드로 나누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사모펀드의 투자자 보호를 위해 비상장기업과 개인은 기관 전용 사모펀드 출자자가 될 수 없도록 제한하고, 운용 전문인력의 요건을 강화하는 것이 핵심이다.
벤처투자업계는 금융위의 이번 개편방안이 VC의 유망 기업에 대한 후속 투자를 크게 제한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VC가 운용하는 PEF의 주요 출자자는 대부분 모회사나 대주주 등으로 구성돼 있다. 비상장 중견·중소기업의 경우 대기업에 비해 현금 동원력이 부족해 대형 PEF 운용사에 목소리를 내기 쉽지 않다. 대형 PEF보다는 산하 VC가 운용하는 PEF를 통해 전략적 투자자(SI)를 수행하는 것이 보다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PEF 시장에서 VC가 차지하는 비중은 결코 적지 않다. 초기 성장 단계에서 발굴한 기업을 유니콘으로 성장시키기 위한 방안으로 벤처펀드 대비 규제가 적고 자금 조달이 용이한 PEF를 활용하는 사례가 점차 늘고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PEF 업무집행사원(GP)으로 등록한 사업자 가운데 창업투자회사, 신기술사업금융사 등 VC는 16.6%를 차지한다. 투자금액 기준으로도 약 10% 안팎을 VC업권에서 투자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비상장기업의 PEF 출자 제한은 중소형 전업 PEF에도 악재로 작용할 전망이다. 국내 PEF 시장의 약 77%는 1000억원 미만 소형 PEF가 차지하고 있다. 중소형 PEF 절대 다수는 연기금보다는 비상장 법인을 통해 자금을 수혈하는 처지다.
업계 관계자는 “정부 차원의 정책 목적 펀드가 크게 증가하면서 연기금과 금융기관은 모두 정책성 펀드로 쏠리고 있다”면서 “신생 PEF 입장에서는 자금 조달길 자체가 막혀버리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운용인력 요건도 문제가 되고 있다. 금융위에서는 창업투자회사 경력을 기관전용 PEF 운용인력 경력으로 인정하지 않는 방향으로 제도 개선을 추진하고 있다. 반면 창투사와 유사 업무를 수행하는 신기술금융사의 경우 근무 경력을 인정하는 것으로 방침을 정했다.
한 중견기업 산하 VC 관계자는 “중소형 규모 PEF는 모회사나 대주주를 통해 전략 목적으로 출자하는 비중이 상당히 높은 편”이라면서 “벤처투자 대형화 방침에 따라 투자 규모를 늘리기 위해 PEF 본부를 신설했는데 갑작스런 제도 변경으로 인력 충원부터 법인 분리까지 원점에서 다시 의사결정을 해야 할 판”이라고 말했다.
벤처캐피탈협회에서는 오는 2일 안팎으로 투자 위험을 감수할 수 있는 운용사의 대주주나 계열사와 일정 규모 이상의 중소·중견기업에게는 PEF 출자를 허용하도록 하는 의견을 금융위에 전달할 계획이다. 입법예고 기간은 오는 2일까지다.
타 부처에서도 움직임에 나섰다. 상반기 신규 벤처투자 실적이 3조원을 돌파하며 역대 최고치를 경신한데다 100억원 이상 규모의 대형 투자도 늘고 있는 만큼 이번 개편 방안이 전체 시장을 위축시킬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중기부 관계자는 “입법예고 기간인 만큼 업계 의견을 수렴해 전달할 것”이라고 밝혔다.
유근일기자 ryuryu@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