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난히도 무덥던 지난 7월의 마지막 금요일 오후 주요 경제부처 장관들과 사회부처 장관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기획재정부가 주도한 '신기술 인력양성을 위한 관계 장관 집중토론회'였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유은혜 사회부총리, 안경덕 고용노동부 장관, 문승욱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임혜숙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권덕철 보건복지부 장관, 안일환 경제수석, 류장수 직업능력연구원장 등 신기술 인력 양성 관련 문재인 정부 부처와 산하 기관 수뇌들이 모두 모인 자리였다. 행사 이름과 참석자만으로도 상당한 내용이 오갔을 것 같지만 행사가 화제가 되기는커녕 허술한 목표만 제시, 주목 받지 못했다. 기재부 역시 행사 종료 후 후속자료조차 내지 못하고 구체적인 예산사업은 8월 하순에 내년도 예산안과 함께 발표한다고만 했다.
미래 대한민국 성장을 좌우할 인재 양성에 대한 정부의 인식을 보여 주는 단적 사례다. 정부는 주요 산업 발전 전략을 발표할 때마다 해당 분야 인재를 몇 명 양성하겠다고 발표한다. 향후 몇 년 내 수백 또는 수천명으로 양성 규모를 늘리겠다는 내용이다. 2019년에는 2030년 시스템반도체 강국 도약 비전을 통해 오는 2030년까지 1만7000명 규모의 대규모 인력을 양성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지난 5일 'K-글로벌백신 허브화 비전 및 전략 보고대회'에서도 연간 200명 이상의 의과학자를 새롭게 육성하겠다고 했다. 임상시험 전문인력 1만명, 바이오 생산 전문인력 연간 2000명 등이다. 산업과 교육기관이 하나의 생태계를 형성해서 새로운 산업에 유연하게 대응하도록 하는 것이 신산업 인재 양성의 핵심이 돼야 하지만 정부의 이 같은 형식 발표는 현실과 거리가 멀다. 몇 개 전공을 뽑고 이를 계산해 숫자를 만들어 내는 식이다. 당장 학령인구 감소로 대학이 줄줄이 문을 닫아야 하는 처지임에도 해당 전공자를 몇 명 더 추가하겠다는 식의 발표는 어김없이 등장한다.
이번 관계부처 장관 회의는 더 심각하다. 예산을 다루는 기재부가 주도한 행사여서 그런지 인재 양성에 필요한 내용보다 '숫자' 전망이 내용의 전부다. 향후 5년 간 20개 분야 전체 인력 수요는 약 75만명으로 전망됐다. 기존의 직업훈련, 대학교육 등 인력 공급은 약 50만명으로 파악됐으니 5년 동안 25만명을 더하겠다는 것이다. 이러한 숫자가 어떻게 나왔는지 배경 설명이 없는 것도 의아하지만 5년 동안 25만명을 어떻게 더하겠다는 방안은 아예 없다. 마치 공장에서 재료 얼마를 투입해 얼마를 찍어 내겠다는 표현과 다르지 않다.
물론 인재 양성을 위해서는 투자가 필요한 만큼 예산사업은 필수다. 대학에서는 교육정책을 이야기하면 과거에는 기승전'돈'이었지만 지금은 '기승전'도 없이 오로지 '돈'만을 이야기한다. 신기술을 가르치려면 교육자, 시설이 필요하니 돈이 우선이긴 하다. 그렇다고 공장에서 물건 찍듯 25만명을 추가 양성하기 위해 새로운 학과 1만개를 찍어 낼 수는 없는 노릇이다.
신산업·신기술에는 다양한 분야의 기술 인력이 참여한다. 자율차를 개발하기 위해서는 센서나 카메라 인식, 공간정보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기계·첨단소재·인간공학·통신과 함께 법제도와 윤리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인력풀 및 저변이 필요하다.
인재 양성은 이러한 인식에서 접근해야 한다. 산업과 교육기관이 유연하고 민첩하게 대응할 수 있는 환경, 각 분야의 융합과 협력을 끌어낼 수 있는 문화, 각 정부 부처 간 협력이 우선돼야 한다. 정부의 현 정책 발표처럼 반도체 인재가 필요하니 반도체학과 신설이나 전자공학과 졸업자 몇 명 확대 등은 2차 산업혁명에서나 효과가 있을 법한 정책이다. 심지어 대부분 5년 후, 10년 후 숫자 전망치여서 정권이 바뀐 뒤에는 실행 여부조차 점검하지 않는다. 미래 인재 양성을 위해서는 인재 양성에 대한 시각부터 미래형으로 바꿔야 한다.
문보경기자 okmu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