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사가 손해사정 업무를 지원하기 위해 구축한 시스템이 조작된 사진의 진위확인 여부를 판별하지 못해 직원 자체 판단으로 보험금을 지급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보험사가 진위확인을 위한 시스템을 갖춰야 하지만 비용 등을 이유로 구축을 꺼리고 있기 때문이다.
보험사의 안일한 대처가 불필요한 사회적 비용을 유발해 보험 계약자 부담을 가중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실상 보험업계 손해사정 체계가 무방비로 노출됐다.
11일 SI(시스템통합)업계와 보험업계 등에 따르면 현재 보험사 손해사정 시스템에서 인공지능(AI) 또는 포토숍으로 정교하게 조작된 사진은 진위확인이 어려운 것으로 나타났다.
SI업계 관계자는 “현재 보험사가 사용하는 손해사정 시스템은 현장에서 제공하는 이미지나 영상을 확인하는 구조로 조작된 사진 등 진위확인 판별은 어렵다”면서 “이렇다 보니 현장에선 공업사 등이 전달한 이미지나 견적을 보고 직원 판단에 따라 선택적으로 보험금을 지급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손해사정이란 발생한 손해가 보험 목적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판단한 후 손해액을 평가해 결정하고 보상금을 지급하는 것을 말한다. 쉽게 말하면 자동차 사고가 발생해 계약자가 보험사에 전화하면 보험사 직원이 현장에 출동해 접수·평가·합의 등을 거쳐 보험금을 지급하는 형태다.
보험사는 계약자가 현장 출동을 신청하지 않을 경우 고객 접수건을 기반으로 공업사를 통해 손실액을 평가하고 보험금을 지급한다. 이때 고액 손실이 발생한 경우 직원이 직접 공업사 등을 방문하지만 소액은 대부분 비대면으로 처리한다.
이는 현실적인 어려움 때문이라고 보험업계는 설명한다. 매일 전국에서 발생하는 수천 건의 사고를 직원이 일일이 직접 찾아가서 확인하기가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정보기술(IT) 발달로 사진 조작 등이 날로 정교해져 이에 대응하기도 쉽지 않다는 게 중론이다.
도로교통공단 교통사고분석시스템(TAAS)에 따르면 지난해 승용·승합·화물차 관련 접수된 사고 건수만 32만7375건에 달한다. 접수되지 않은 건까지 포함하면 매일 최소 수천 건 사고가 발생하는 것이다.
보험사 관계자는 “공업사와 계약자가 악의적으로 사진을 조작하면 대응이 힘든 것은 사실”이라면서 “고액 손실은 현장에 나가 잔존물(사고 처리한 부품) 등을 직접 확인해 보험사기 등을 확인한다”고 답했다.
보험개발원이 구축한 AI 기반 'AOS알파'도 대응이 쉽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AOS알파는 사고로 파손된 자동차 손상 부위를 AI가 사진을 보고 판독부터 수리비 견적 산출까지 자동 처리하는 시스템을 말한다.
보험개발원 관계자는 “자체 알고리즘으로 사진 조작 등을 차단하고 있지만 어려움이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이런 조작된 사진을 거르지 못하면서 불필요한 사회적 비용이 발생한다는 점이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보험사기 중 자동차 관련 적발액은 3829억9200만원으로 전체 42.6%를 차지한다. 업체 등과 짜고 보험사기를 하는 행태도 늘어나고 있다.
전문가들은 진위확인을 위해 딥페이크 등을 가려낼 수 있는 시스템 구축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딥페이크는 AI가 사진뿐만 아니라 동영상도 원본과 거의 구분하기 어려운 가짜를 만드는 것을 말한다.
익명을 요구한 SW업계 관계자는 “보험사들이 조작된 사진을 판별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비대면 처리하는 건이 소액이다 보니 구축을 꺼리는 것이 사실”이라면서 “점차 보험사기가 고도화하고 신종 사기도 늘고 있어 딥페이크를 차단하는 시스템 구축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박윤호기자 yuno@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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