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지난날의 대한민국이 아니다.” 이달 15일 광복절 제76주년은 많은 관심 속에 치러졌다. 박근혜·이명박 전 대통령 사면 여부와 별개로 임기 마지막 광복절을 맞은 문재인 대통령이 일본에 대해 어떠한 메시지를 내놓을지가 관심이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문 대통령의 일본에 대한 태도는 변했다. 일본에 유독 강경한 자세를 보여 온 지난날의 광복절 메시지와는 다른 뉘앙스였다.
문 대통령이 가장 강조한 메시지는 '품격'이었다. 즉 경제대국·문화강국을 넘어 선진국에 들어선 대한민국의 품격이다. 문 대통령은 광복절 연설을 통해 대한민국이 식민지 치하에서 벗어나 가난한 제3세계 국가와 개발도상국을 거쳐 선진국에 들어서는 등 세계사를 찾아봐도 유례가 없을 정도의 발전을 이룩한 나라, 국민이 자랑스러워 해도 될 나라가 됐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독립운동가 민세 안재홍 선생이 조선건국준비위원회 부위원장 자격으로 '해내 해외 삼천만 동포에게 고함'이라는 제목의 방송 연설을 언급했다. 문 대통령은 “(안 선생은 당시) 패전한 일본과 해방된 한국이 동등하고 호혜적인 관계로 나아가자고 제안했다”면서 “식민지 민족의 피해의식을 뛰어넘는, 참으로 담대하고 포용적인 역사의식이 아닐 수 없다”고 말했다. 안 선생의 이 연설은 광복 이튿날인 1945년 8월 16일 이뤄졌다. 우리 조상은 광복 이튿날부터 '폐쇄적이거나 적대적인 민족주의'를 보이지 않았음을 강조한 셈이다.
문 대통령은 “식민 지배와 굴욕과 차별, 폭력과 착취를 겪고서도 우리 선조들은 해방 공간에서 일본인들에 대한 복수 대신 포용을 선택했다”고 했다. '아무도 흔들 수 없는 나라'로 대표되는 강경한 모습과는 달라진 태도다.
청와대 안팎에선 문 대통령의 이 같은 발언을 이제는 식민 지배 피해의식을 접고 '일본'과도 상생 협력할 수 있는 '품격'을 갖추자는 뜻으로 해석한다. 속된 말로 일본 정부가 거들먹거리며 치졸하게 구는 것에 대해서도 개의치 말자는 뜻이다. 문 대통령은 “우리 스스로 자부심을 지니자”고 했다. 품격 있는 선진국의 첫 출발은 존중과 배려, 포용과 관용이라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의 담대한 제안에 스가 요시히데 일본 정부가 답할 차례다.
안영국기자 a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