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성동은 겸재 정선의 그림터다
겸재 정선의 ‘인왕제색도’가 세간의 관심을 받고 있다. 과연 국보급 그림이 어디로 갈 것인가? 겸재 정선의 인생작으로 76세에 50년 지기 이병연에게 마지막 선물로 그린 그림이 갈 곳을 찾고 있다. 겸재 정선은 인왕산과 백악산 사이에서 태어나 성장하며 1000여 점의 그림을 이곳에서 완성했다. 진경산수화의 화가 중 으뜸이다. ‘인왕제색도’는 어디에서 그렸을까? 인왕산 아래 첫 번째 계곡이 있는 수성동계곡을 찾아 겸재 정선의 마음속으로 들어가 본다.
수성동(水聲洞)계곡은 옥인동과 누상동의 경계에 있다. 한양도성 안 명승지로 동네 이름은 모두 인왕산에 얽힌 스토리다. 인왕산 계곡 물소리가 옥구슬처럼 맑고 깨끗하여 옥류동천이라 불리었다. 비가 내리면 인왕산 바위들은 비를 머금고 물을 토해낸다. 토해낸 물은 소나무 사이로 흘러 계곡을 돌아 너럭바위 옆으로 세차게 돌아간다. 인왕산 물길은 수성동천과 옥류동천이 통 돌다리 2개인 기린교에서 합류하여 수성동계곡에 모였다. 190m에 이르는 계곡물은 청계천으로 흘러간다. 청계천의 발원지가 바로 수성동계곡이다.
비 오는 날이면 수성동계곡으로 발걸음을 옮겨보자. 경복궁에서 서쪽에 보이는 세 개의 봉우리를 따라 걸으면 인왕산 기슭에 이른다. 비 그친 후 폭포를 볼 수 있고, 자연과 벗이 되는 시간여행도 할 수 있다. 비가 오면 하얀 물줄기가 쏟아지는 폭포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곳이 서울 도심 속에 있다. 비 그치면 새소리와 바람 속에 구름이 흘러가는 소리도 만날 수 있다. 도롱뇽과 가재, 버들치가 사는 1급수가 인왕산 아래 첫 계곡인 수성동계곡이다. 빌딩과 빌딩 숲속에서 나무와 나무 숲속으로, 도로와 도로 속 찻길에서 숲과 계곡이 만나는 숲길로 들어가는 이곳이 겸재 정선의 ‘그림터’다.
경복궁에서 걸어서 10여 분 거리에 산이 있다. 이곳엔 계곡이 있고, 너럭바위 속에 정자도 있다. 옥구슬처럼 흐르는 계곡은 마음속 고향 같다. 마치 어머니 뱃속 같은 공간이다. 도성 안 해가 지면 낮과 밤의 경계를 눈으로 볼 수 있는 그림 같은 곳이다.
산 아래 낮게 깔린 구름이 그림 속 풍경처럼 우리 곁에 있다. 안개와 능선이 엷게 보이는 풍경 속 그림이 인왕제색도다. 겸재 정선의 ‘인왕제색도’ 그림 터를 보고 싶다면 그 길을 찾아 천천히 걸으면서 삶을 반추해보자. <약보(藥補)보다 식보(食補)가 낫고, 식보보다 행보(行補)가 낫다> 라는 말이 있다. 당신의 두 발로 청계천 발원지 ‘수성동’을 걸어보자. 길 위에서 답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길 위에 있다!
필자소개/최철호
-성곽길역사문화연구소 소장
-‘한양도성 성곽길 시간여행’ 저자
-‘한양도성에 얽힌 인문학’ 강연 전문가
-한국생산성본부 지도교수
-(사)서울아리랑보존회 이사
-남서울예술실용학교 초빙교수
-‘한양도성 옛길’ 칼럼니스트
-‘최철호의 길 위에서 걷다’칼럼니스트
-‘우리동네 유래를 찾아서..’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