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찬 정원엔시스 대표 "중기 간 경쟁제품, 업계 실상 파악하고 유망업체 지원해야"

김정찬 정원엔시스 대표 "중기 간 경쟁제품, 업계 실상 파악하고 유망업체 지원해야"

“규정의 폭을 넓히기 전에 기존 생산업체 실태를 파악하고 유망한 업체를 선택한 뒤 어떻게 지원할지를 고민해야 합니다. 동시에 개발 로드맵을 제시하고 중소기업을 함께 데리고 가는 정책이 필요합니다.”

최근 서버·스토리지에 대한 '중소기업자간경쟁제품(이하 중기 간 경쟁제품)' 재지정 작업을 바라보는 김정찬 정원엔시스 대표는 걱정이 앞선다. 마치 몇 년 동안 국산화를 시도하다가 실패한 PC산업이 재현되는 모습을 보는 것 같아서다.

김 대표는 “국산화의 목적은 단순히 해외업체 제품의 진입을 막는 것이 아니라 국내 제품의 경쟁력 강화를 통해 부가가치를 높이고 나아가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하는 것”이라며 “하지만 과거에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었던 다수의 국내 PC 제조사의 현주소를 떠올려보면 씁쓸해진다”고 말했다. PC가 실패한 근본적 이유는 결국 OS, CPU 등 핵심기술을 외국에 의존하는 생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단순히 부품을 조립하는 데 머물렀기 때문이다. 이를 반면교사 삼아 서버·스토리지 분야는 정부에서 업체들이 핵심기술 경쟁력을 갖출 수 있도록 도와주면 좋겠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서버·스토리지는 지난 2016년 처음으로 중기 간 경쟁제품으로 지정됐다. 올해 재지정을 앞둔 상황에서 스펙을 지금보다 끌어올린 안이 제출되면서 업체 간 갈등이 빚어지고 있다. 구체적으로 한국컴퓨팅산업협회는 10여개 업체를 대표해 서버는 2소켓 CPU 전체, 스토리지는 실용량 200TB 또는 물리적용량 400TB까지 포함하도록 스펙을 상향 조정한 안을 해당 기관에 제출했다. 협회 안이 받아들여 질 경우 해외 업체 제품의 공공 시장 입지가 대폭 축소되며 이들 업체 제품을 유통하는 국내 업체들도 타격을 받게 될 전망이다.

김 대표는 “서버는 최신 기술이 가장 먼저 반영되는 분야로 공공기관에선 대국민 서비스 등에 가장 적합한 제품을 쓰는 것이 중요하다”며 “공공기관이 제공하는 중요한 업무에서 장애가 생기면 국가적 손실”이라고 말했다. 국산이냐 외산이냐가 구매의 첫 기준이 돼서는 곤란하다는 지적이다.

그는 “지금부터라도 폭넓게 국산업체 실상을 파악하고 육성할 회사를 선별해서 돈도 투자하고 기술력도 전수하는 롱텀 지원이 시급하다”며 “인텔 CPU나 엔비디아 GPU에 해외에서 수입한 마더보드를 조립한 서버를 국산 서버로 보고 지원·보호한다는 것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김 대표에게 서버·스토리지 분야 제도에 대한 문제점과 개선방안을 들어봤다.

김정찬 정원엔시스 대표 "중기 간 경쟁제품, 업계 실상 파악하고 유망업체 지원해야"

-지정을 둘러싼 논란이 커지는 이유는.

▲서버·스토리지는 IT 인프라에서 핵심 요소며 특히 서버 군에서 2소켓 이하의 제품은 전체 공공시장의 x86 서버에서 97%를 차지한다. 한국컴퓨팅산업협회의 대상 확대 요청은 기존 기득권을 가진 소수 특정 업체만이 이익을 대변한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공공기관을 상대로 영업을 진행하는 대다수 중소기업에는 큰 불이익이 될 수 있다.

-서버·스토리지가 논란의 중심에 서는 이유는.

▲글로벌 서버 제품을 다루는 국내 중소 유통·유지보수 업체들이 직접적인 타격을 받기 때문이다. 그 업체 수는 무려 수천에 달한다. 이들 업체는 글로벌 기업의 서버 운영과 유지보수와 관련해 세계적인 수준의 기술을 이전 받고 있다. 글로벌 브랜드를 취급하는 수많은 국내 유통업체가 생존권을 위협받게 된다. 중소기업을 보호하겠다는 정부는 이 같은 중소기업의 입장을 이해해야 한다.

-공공에서 검증된 제품을 사용해야 하는 이유는.

▲데이터센터에서 서버와 스토리지는 인프라의 핵심이자 주춧돌이다. 데이터센터 중단은 실질적인 손실과 손해로 이어진다. 국가 기간산업의 핵심 정보망, 대국민서비스가 만약 마비된다면 그 피해는 상상하기 힘들다. 그만큼 제조사 그리고 그 연계 파트너사의 유지보수 및 기술지원 서비스는 중요한 요소다. 또 글로벌 제조사의 투명하고 체계적인 유지보수 정책은 국내 업체들에 비즈니스 기회인 동시에 고객에게 충분한 기술 지원이 가능하도록 하고 있다.

-업계가 제시하는 대안은.

▲국산 기술을 개발·육성하려면 기존에 기술력을 가진 업체들과 협력해 핵심부품이나 소프트웨어 등을 개발해야 한다. 단순히 시장 보호만으로 국산기술이 발전할 수 있다는 선입관은 배제돼야 한다. 4차 산업혁명을 위한 안정적인 인프라 도입을 위해 글로벌 부품 제조업체 및 글로벌 소프트웨어 업체와 협력하는 체계도 마련해야 한다. 민간의 기술교류 등에 맡겨야 할 사항을 정부가 나서서 규제하는 것은 시장 흐름에도 맞지 않다.

-서버·스토리지 분야 확대 지정에 대해.

▲근본적으로 반대한다. 일부 기술력이 없는 국산조립서버 업체 이익을 대변, 대다수 중소기업의 피해가 커질 것이기 때문이다. 서버의 경우 3년 전에 지정된 범위를 유지하더라도 CPU제조사에서 출시되는 제품라인들을 고려한다면 자연스럽게 59%에서 75% 이상으로 외산 서버가 진입할 수 없는 시장이 확대된다. 이 상황에서 굳이 범위를 확대한다는 것은 시장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으로 밖에 생각할 수 없다.

윤대원기자 yun1972@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