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직접구매(직구)가 국내 e커머스 시장의 핵심 전장으로 떠올랐다. 코로나19 장기화와 명품소비 증가로 급속도로 커진 직구 시장을 잡기 위한 공격적 투자와 합종연횡도 본격화됐다. 세계 최대 전자상거래 업체 아마존이 11번가를 통해 국내에 상륙하면서 국내 해외직구 시장 판도에도 변화가 불가피해졌다.
통계청에 따르면 올 상반기 해외직구 거래액은 2조5336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1조8938억원과 비교해 33.7% 증가했다. 연간 해외 직구액도 사상 처음 5조원을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성장세도 꾸준하다. 2016년 1조9079억원에서 지난해 4조원을 넘어섰다. 최근 3년간 연평균 성장률이 22%에 이른다.
해외직구의 빠른 성장세는 국내 e커머스의 직구 플랫폼이 활성화되면서 진입장벽이 낮아졌기 때문이다. 가장 큰 장벽이던 언어문제가 해결되고, 해외 발송부터 통관 절차까지 직관적 쇼핑 경험이 가능해지자 국내 소비자들도 국경을 뛰어넘는 쇼핑에 적극 가담하고 있다. 작년부터 해외여행이나 면세점 이용이 어려워지면서 잠재적 소비 수요가 해외 직구로 더 쏠렸다.
해외직구를 단순히 부가 서비스가 아닌 킬러 콘텐츠로 삼아 시장 판도를 바꿔보려는 움직임도 눈에 띈다. 11번가는 31일 오픈하는 아마존 글로벌스토어를 앞세워 e커머스 시장서 재도약을 노린다. 11번가에서 국내 쇼핑과 동일하게 아마존 상품을 구매할 수 있고 멤버십과 연계한 무료배송 서비스도 장착했다.
11번가 아마존 글로벌스토어의 경쟁력은 압도적 상품수다. 미국 아마존닷컴 직매입 상품 4000만여개를 판매한다. 쿠팡의 로켓직구 상품수 700만개의 5배에 달한다. 내년에는 유럽 아마존 상품까지 점진적으로 확대해 나갈 것으로 보인다. 배송 경쟁력도 갖췄다. 11번가와 아마존은 국내 직구족이 선호하는 상품 16만개는 선별해 4~6일내 배송한다. 아마존은 선호 상품 데이터 확보를 위해 작년 말부터 한국 고객을 대상으로 무료 배송 프로모션을 진행한 바 있다.
11번가는 아마존과 협력으로 돌파구를 마련한다는 구상이다. 지난해 거래액 기준 e커머스 시장점유율은 네이버가 27조원으로 17.4%를 차지하고 있고, 쿠팡이 21조원(13.6%), 이베이코리아 18조원(12.5%)로 뒤를 잇는다. 국내 e커머스 시장이 빠르게 과점 단계로 진입하고 있는 상황에서 점유율 6.9%로 4위 사업자인 11번가가 상위 업체와 격차를 좁히기 위한 승부수로 택한 것이 아마존 협업이다.
11번가는 아마존 글로벌스토어를 앞세워 글로벌 유통 플랫폼으로 도약한다는 계획이다. 해외직구는 물론 새로 유입된 고객의 락인 효과도 기대하고 있다. 다만 아마존 스토어가 국내 e커머스 시장의 게임체인저가 될 수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다. 국내 e커머스 기업들도 직구 상설관과 원스톱 결제 등으로 해외직구 서비스 경쟁력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쿠팡은 로켓직구 사업 권역을 기존 미국에 이어 중국까지 확대했다. 중국 상품 직소싱을 위한 현지 법인을 설립하고 물류 거점도 확보해 중국 상품을 국내 소비자가 원스톱으로 구매할 수 있도록 했다. 쿠팡에서 판매하는 직구 품목은 12개 카테고리 700만개 상품이다. 11번가 아마존 스토어보다는 적지만 배송에 걸리는 시간이 평균 3~4일로 국내 사업자 중 가장 빠르다. 직매입 방식을 통해 2주 가까이 걸리던 해외직구 배송 기간을 대폭 줄였다.
아마존 진출에 대응해 로켓직구 첫 구매 고객을 대상으로 8월 한 달간 '웰컴 쿠폰'도 지급하고 있다. 2만원 이상 구매시 사용 가능한 15% 할인 쿠폰으로 고객 이탈을 막기 위한 마케팅 투자에 적극 나섰다.
이베이코리아도 G마켓과 옥션에 '해외직구 상설관'을 마련했다. TV 등 대형가전은 무료 설치까지 제공하며 한국동산감정원과 협업해 명품 정품 감정 서비스도 지원한다. 이탈리아 무역공사와 함께 공식 해외직구 전문관 '이탈리안 파빌리온'을 오픈한 데 이어 아이허브, 몰테일, 오플닷컴 등 전문몰을 입점시켜 상품 구색을 강화했다. 또 G9를 해외직구 특화 쇼핑몰로 삼아 한 달에 한 번 해외 인기상품을 특가 판매하는 '월간 지구직구' 프로모션을 전개한다. G9는 해외 쇼핑몰에서 활동하는 현지 셀러를 직접 영입해 경쟁력 있는 프리미엄 제품을 늘리는 데 주력하고 있다.
롯데온도 해외직구 카테고리를 신설하고 관련 셀러 확보에 힘쓰고 있다. 지난해엔 명품과 유아용품 라인업 확대를 위해 '엘부티크 해외직구 서비스'를 열었다. 현지 직소싱 상품을 넘어 셀러들이 판매하는 오픈마켓으로 영역을 확장했다. 특히 수입 분유 브랜드를 대거 입점시켜 차별화를 꾀했다. 지난달 롯데온의 해외직구 상품군 매출은 작년 동월대비 65.3% 늘었는데 그 중에서도 출산·유아동 용품 매출이 127.4%로 큰 폭으로 증가했다.
해외직구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e커머스 업계간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관련 산업도 더욱 가파르게 성장할 전망이다. 정부에서도 해외직구 제도 개선으로 적극적인 지원에 나서고 있다. 기획재정부는 최근 관세법 개정을 통해 소액 해외직구 물품 반품시 관세 환급 절차를 간소화했다. 지금까지는 200만원 이하 해외직구 물품은 수출신고를 생략할 수 있는데도 반품 전 보세구역에 반입하거나, 세관장의 사전 확인을 받아야 관세를 돌려받을 수 있었지만 앞으로는 사후 확인받은 경우에도 관세를 돌려받을 수 있도록 했다.
또 관세청은 개인통관고유부호 발급을 위한 본인인증 수단으로 카카오, 패스, 한국정보인증, NHN페이코, KB국민은행 간편인증을 추가했다. 기존에는 공인인증서를 통해서만 가능했지만 앞으로는 민간 인증수단으로도 개인 통관부호를 발급 받을 수 있어 소비자의 해외 구매 편의가 크게 개선됐다.
박준호기자 junho@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