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중순 대학가에서는 흉흉한 소문이 나돌았다. 어느 대학이 교육부 '살생부'에 들어갔다더라, 제외됐다더라는 소문이다. 여기에서 살생부는 교육부가 3년마다 실시하는 대학 기본역량 진단 평가를 의미한다. 17일 임시결과(가결과)가 발표됐을 때 일부 대학의 우려는 현실화했고, 일부 대학은 한숨을 돌렸다.
임시결과 발표 이후 일반재정지원사업 대상에서 탈락한 대학들은 거세게 반발했다. 평가가 과연 공정하게 진행됐는가부터 획일적 기준으로 평가하는 것이 적절했는가, 최근까지 특성화를 강조해 왔는데 특성화 요소가 획일성에 가려진 것은 아닌가 하는 의문들이었다.
교육부의 대학 진단평가를 보고 있으면 자기 침대보다 키가 큰 사람은 다리를 잘라 죽이고, 침대보다 작은 사람은 키를 억지로 늘려 죽였다고 하는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 이야기가 저절로 떠오른다. 자신의 기준을 정해 놓고 그 기준에 맞지 않다고 부실대학 딱지를 붙이는 게 딱 프로크루스테스 행위와 닮았기 때문이다.
지금과 같은 획일화한 기준으로 하는 대학 평가에 대해 수도권 대학이나 지방 대학이나 불만을 품기는 매한가지다. 수도권 대학은 이번에 처음 적용된 '지역할당제'로 역차별이 불만이고, 지방 대학은 지방 소멸 등 지역균형발전 요소를 충분히 반영하지 않았다고 불만이다.
이런 불만을 잠재우려면 프로크루스테스와 다른 접근을 해야 한다. 수도권 대학은 우리나라 인구의 절반이 주거하는 지역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대학에 입학하려는 학생도 상대적으로 충분하다. 이런 배경을 두고 있는 대학에 억지로 획일화한 평가 기준을 적용해서 부실대학 낙인을 찍으니 불만이 없을 수가 없다. 학생이 상대적으로 충분하기 때문에 수도권 대학은 시장의 선택을 받도록 하는 방식으로 가는 것이 적절하다. 학생이 충분한데도 선택을 받지 못했다면 경쟁력이 없다고 보는 것이 맞기 때문이다.
그 대신 지방 대학은 제조업이 쇠퇴하고 청년층 인구를 수도권에 빼앗기는 등 소멸을 걱정해야 하는 곳에 입지하고 있다. 수도권 대학과 같은 기준으로 평가하면 설령 이번처럼 지역할당제를 적용한다 하더라도 상대적으로 경쟁력이 떨어지는 것으로 나오는 결과는 피할 수 없다. 수도권 대학들의 이의 제기도 감당해야 할 일이다. 대학에 입학할 학생이 감소하는 상황에서 지금과 같은 정원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도 말이 안 되는 일이다. 지방 대학에는 수도권 대학과 다른 접근이 필요하다.
지방에 있는 대학들을 '지방 대학'이라는 하나의 범주에 모두 넣기에는 무리일 정도로 매우 다양하다. 국립대와 사립대가 있으며, 4년제 대학과 2~3년제 전문대가 있다. 국립대도 규모가 큰 대학과 작은 대학이 있다. 다양성을 고려해서 접근해야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다. 이렇게 다양한 대학을 획일화한 기준 위에 올려놓는다는 것 자체가 또 다른 프로크루스테스 침대다.
현재 지방 대학들과 관련해 가장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일은 가장 먼저 위기를 맞고 있는 사립대에 출구를 여는 일이다. 지금처럼 출구가 꽉 막혀 있는 상태에서는 아무리 평가하고 재정 지원을 중단해도 교육부가 원하는 효과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또 자구 노력을 통해 일정한 수준을 유지하는 대학에는 지방소멸 방지 차원이나 지역균형발전 차원에서 적극 지원하는 방안도 필요하다.
획일화한 기준으로 대학을 평가하고 지원 대상에서 제외하는 지금의 대학 기본역량 진단 평가는 살생부 작성을 위한 평가가 아니라 대학에 맞게 침대 크기를 조절해서 대학을 살리는 평가로 재편될 필요가 있다.
김윤식 경상국립대 교수 yunshik@gn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