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둑전기(도전)를 막으면서 주차장 벽에 220볼트(V) 전기 콘센트만 있으면 어디서든 충전이 가능한 '과금형 콘센트'가 시장 초기부터 실효성 논란에 빠졌다.
정부는 2025년까지 전기차용 충전기 50만기를 보급하기로 하고, 주요 품목에 과금형 콘센트를 포함시켰다. 관련 업계는 안전성과 성능이 떨어지는 과금형 콘센트가 정부 사업 자리를 꿰차면서 산업생태계가 위협받고 있다고 호소한다. 전기차 이용자도 접근성 향상에는 공감하면서도 일반 충전기와 비교해 충전 성능이 30% 수준이라 불편함이 가중될 수밖에 없다는 반응이다. 본지가 과금형 콘센트 도입 배경과 실효성을 따져봤다.
◇충전기 vs 충전용 케이블
과금형 콘센트는 아파트나 건물 주차장 벽면에 설치된 220V 콘센트를 활용하면 쉽게 충전할 수 있어 충전인프라 확장과 접근에 유리하다. 기존 충전기는 수전설비 등 복잡한 전기공사뿐 아니라 전기차 전용 주차면이 있어야만 시설을 갖출 수 있다. 그러나 과금형 콘센트는 별도의 공사가 필요 없고 전용 주차면도 필요 없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다.
물론 충전 속도는 단점이다. 전국에 7만기가량 설치된 일반 완속충전기(7㎾급)는 1시간에 6.7~6.9㎾h 전기에너지를 충전하지만 과금형 충전기(3㎾급)는 2.2~2.6㎾h 전기를 충전한다.
현대차 '아이오닉5(롱레인지 기준)'를 충전하면 완전 충전까지 일반 충전기는 10~11시간이 걸리지만 과금형 콘센트는 28~33시간이 걸린다.
여기에 충전 준비시간에 따른 불편함과 안전성도 두 제품은 큰 차이를 보인다.
완속충전기는 전기차 전용 전기시설이다. 기기로부터 충전케이블만 꺼내어 차량에 연결하면 충전이 가능하다.
반면에 과금형 콘센트는 차량 트렁크에서 4~5m 길이 충전케이블을 꺼내 케이블 한쪽은 콘센트에, 또 다른 한쪽은 차량에 연결해야 한다. 우천 등으로 주차장 바닥에 물기가 있는 경우 안전에 취약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최근엔 콘센트와 차량 간 긴 거리 때문에 방수 기능이 없는 일반 연장선(멀티탭)을 임의로 사용하는 사례도 종종 포착된다.
주차면 확보에도 두 제품 간 차이가 크다.
일반 충전기는 전용 주차면을 보장하는 충전설비로 내연기관 차량의 접근이 쉽지 않다. 최근 '충전방해금지법'까지 생기면서 충전기를 포함한 주차면이 크게 보호받는 추세다. 반면에 과금형 콘센트는 별도 주차면 보장이 없이 콘센트만 제공한다. 이 때문에 콘센트와 가까운 자리가 아니면 충전이 어렵다. 연장선을 임의로 사용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보안성도 취약하다. 일반 충전기는 전기차만을 인식하도록 설계된 반면에 220V의 과금형 콘센트는 충전뿐 아니라 건물·아파트 시설관리에 필요한 청소기 등 다양한 용도로 사용된다.
해당 콘센트가 충전 전용으로 설치됐다면 청소기를 사용할 때는 충전요금을 내야 청소기를 사용할 수 있고, 반대로 충전 전용이 아닌 일반 콘센트와 겸용으로 사용한다면 도전 등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또 콘센트는 별도의 잠금장치 기능이 없어 콘센트에 연결된 충전케이블을 임의로 뽑더라도 이를 막을 방법이 없다.
결국 과금형 콘센트는 케이블 기반으로 제작돼 수전설비 등 공사가 필요 없고 접근성이 좋다는 장점이 있지만 기존 충전기에 비해 충전 성능, 편의성, 보안·안정성 등에 열악할 수밖에 없다.
◇정부 목표 달성엔 유리
과금형 콘센트는 실효성보다는 정부의 보급 목표 달성에 크게 유리하다. 정부는 오는 2025년까지 50만기 전기차용 충전기를 보급하겠다는 목표로 올해부터 기존 완속충전기와 함께 처음으로 과금형 콘센트를 보급 대상에 포함했다. 정부 발표 이후 서울시는 지난 8월 지방자치단체 처음으로 과금형 콘센트 보급사업을 실시했다.
아파트·연립주택·빌라 등 주거시설이나 업무시설에 콘센트형 충전기를 희망하는 이에게 과금형 콘센트 1기당 최대 50만원을 지원하는 사업이다. 서울시는 최근 7000기분 예산을 확보해 사업자를 선정했는데 사업 초기부터 논란이 일고 있다.
보통 과금형 콘센트는 220V 전기 콘센트에 과금 장치를 따로 설치한 형태로 스마트폰 등을 통해 사용자 인증·과금 등 기능만 구현한다.
그런데 서울시는 이번 사업에 '실시간 통신을 제공해야 한다'는 조건을 달았다. 실시간 통신을 적용하면 완속충전기처럼 기기 사용상태 등 실시간 정보를 받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통신료 등 높아진 운영비 탓에 과금형 콘센트의 장점이 줄어든다. 사전에 충분한 논의나 검토 없이 제품 운영 규격 등을 정하고 무리하게 사업을 진행했다는 불만이 참여 업체에서 나오는 이유다.
올해 처음 과금형 콘센트를 보급한 환경부 사업도 이 같은 논란이 일고 있다. 환경부는 지난 6월 사업 신청 당시 형식승인을 받은 과금형 콘센트가 없는 상황에 규제샌드박스로 임시허가를 받은 제품(4월 이전 생산 조건)에 한해 보조금 자격을 부여하며 사업을 강행했다.
그러나 예산 책정을 위한 사전 조사 때 4월 이전 생산물량이 1만기 이상으로 파악했던 것과 달랐다. 일부 업체가 현장실사에서 허위로 보고한 사실이 알려진 것이다. 이 결과 당초 1만기 이상 보급하겠다는 계획과 달리 실제 과금형 콘센트 보급수는 3700기 수준으로 줄었다.
이에 업계는 보급에 급급한 나머지 사전 수요 조사나 재고 물량 체크 등 철저한 준비 절차 없이 무리하게 사업을 진행했다는 비난을 쏟아낸다.
업계 관계자는 “정부 보급사업에 형식승인도 받지 않은 제품이 대부분이며 안전·검침 등 기본 기능조차 떨어지는 제품으로 무리하게 보급 실적을 올리려는 것”이라며 “정부 목표 물량에 과금형 콘센트와 일반 충전기를 같은 수로 기준을 잡은 것부터 잘못”이라고 말했다.
이에 충전 업계는 보급 기준에 과금형 콘센트와 기존 충전기를 구분해 양적인 보급보다는 질적인 보급에 우선순위를 둬야 한다는데 목소리를 높인다.
◇곧 닥칠 소비자·산업계 피해
산업통상자원부가 최근 입법 예고한 '친환경차법 시행령 일부개정안'에도 과금형 콘센트를 보급사업 대상에 포함했다.
이 개정안은 내년부터 신축 아파트는 총 주차면의 5%, 기축 아파트는 2% 이상 전기차 충전기를 의무 설치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해당 기준에서 완속충전기와 과금형 콘센트를 동일하게 인정한다.
환경부에 이어 산업부까지 보급사업에 과금형 콘센트를 추가하면서 관련 업계에 미치는 파장은 더욱 커질 전망이다.
건설 업계가 200만원 안팎의 기존 완속충전기보다 50만원 수준의 과금형 콘센트를 주로 설치할 확률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국내 충전사업자들은 벌써부터 수익성 악화를 우려하고 있다.
미국 등 대부분의 해외 국가는 7㎾급 완속충전기에 대해 의무 설치나 인센티브를 지원하지만, 과금형 콘센트를 대상에 포함한 사례는 찾아볼 수 없다.
이에 충전기 업계는 과금형 콘센트의 여러 단점을 반영해 의무수량을 완속충전기 1기당 과금형 콘센트 4기로 법정 기준을 개선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건설 업계가 기존의 완속충전기보다 비용이 크게 저렴한 과금형 콘센트를 선호할 수밖에 없는 데다 성능과 사용성 저하 등 불편한 피해는 전기차 사용자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업계 한 대표는 “전기차 보급 선진국에서는 사용하지 않고, 보급 대상에도 없는 제품을 우리나라만 쓰고 있다”며 “정부가 과금형 콘센트에 대한 정확한 실효성 조사와 함께 의무 비율 수를 완속충전기와 달리 적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기차 사용자 반응도 비슷한 상황이다. 신축 아파트에 과금형 콘센트 위주로 설치된다면 사용자 불편함이 가중될 수밖에 없어서다.
김성태 전기차사용자협회장은 “과금형 콘센트는 과거 배터리 용량이 적고 빌라나 구축 아파트에 충전기 설치가 어려운 곳에 유용하지만 지금처럼 충전기가 의무 설치되고 차량 배터리 용량이 늘어나는 상황에서 주요 충전 수단이 되는 건 적합하지 않다”고 말했다.
박태준기자 gaius@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