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2050 탄소중립' 실현에 힘을 실으면서 친환경 녹색산업이 향후 빠르게 성장할 전망이다. 친환경 녹색산업으로 최근 조명을 받는 분야가 바로 폐배터리 자원순환이다. 전기자동차·수소차 등 친환경 차량 보급이 속도를 내면서 폐배터리가 본격 양산될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다. 2010년 전기차 보급이 시작된 후 2018년부터 배터리 반납물량이 발생하기 시작했고 2025년이면 8만4000여개가 쏟아진다. 폐배터리는 매립이나 소각이 안되고 물에 닿는 경우 화재 위험성이 높아 폐기가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반면에 이를 자원으로 재사용할 경우 리튬·코발트 등 유가금속 추출이 가능하고 재사용도 가능해 시장 성장 가능성이 높다.
정부는 폐배터리 산업화를 위해 지난달 26일 권역별로 미래 폐자원 거점수거센터를 준공해 시운전을 시작했다. 이어 올해 폐배터리 클러스터를 녹색융합클러스터 6곳 중 한 곳으로 지정할 예정이다. 4개 권역별 미래 폐자원 거점 수거센터가 전기차 배터리를 수집하는 역할을 한다면 폐배터리 자원순환 클러스터는 폐배터리를 재사용, 재활용할 수 있게 연구하고 관련 시설을 갖추는 거점이 된다.
◇정부, 폐배터리 자원화 힘 싣는다
미래 폐자원 거점수거센터는 수도권 경기도 시흥시, 충청권 충청남도 홍성군, 호남권 전라북도 정읍시, 영남권 대구 달서구에 설치됐다.
이렇게 설치된 폐배터리 거점수거센터는 전기차 소유주가 정부나 민간에 반납한 자동차 배터리를 잔존용량과 잔존수명 등을 측정해 재사용 가능성을 판정하고 매각하는 유통센터 역할을 한다.
지난달 26일 한정애 환경부 장관이 찾은 시흥시 수도권 거점수거센터에는 폐배터리 반입검사실, 성능평가실, 보관시설 등으로 구성됐다. 건물 총면적은 1480㎡로 폐배터리 1097개를 동시에 보관할 수 있다. 반입검사실에서 폐배터리에 개별 관리코드를 부착하고 파손이나 물질 누출 여부 등 외관 상태를 검사한 후 성능평가실에서 충·방전기로 잔존용량, 잔존수명 등을 측정해 재사용 가능성을 판정한다.
보관시설에는 물류자동화 설비를 갖춰 만일의 화재사고에도 상시 가능한 화재대응시스템을 갖췄다.
보관된 폐배터리는 제주, 나주 등 지자체가 추진 중인 산업화센터로 옮겨져 산업화 연구 단계를 거치거나 민간에 매각된다. 매각된 폐배터리는 구리, 니켈, 알루미늄, 리튬 등을 추출해 재활용하거나 배터리 팩이나 모듈 단위로 재사용하게 된다.
연말 녹색융합클러스터로 지정을 앞둔 배터리 자원순환 클러스터는 재활용 기술개발과 산업 지원 역할을 하게 된다. 종합정보지원센터와 자원순환연구센터가 세워져 유가금속 추출 실증시설, 안전성 시험장을 갖추고 배터리 자원순환 산업 거점으로 성장할 계획이다.
정부와 지자체는 올해 설계용역을 발주해 2024년 본격적으로 산업기반을 갖추도록 488억원을 지원할 계획이다.
◇시장 성장 전망은
글로벌 시장조사 업체 마켓앤마켓에 따르면 리튬이온 배터리 자원순환 시장은 2019년 기준 15억달러(1조7300억원)에 불과하지만 2030년에는 181억달러(21조원) 시장으로 연평균 8.2% 성장할 전망이다.
배터리 자원순환 시장은 크게 유가금속을 추출하는 물질 재활용과 배터리를 모듈이나 팩 단위로 재사용하는 재사용시장으로 구분된다.
물질 재활용은 이차전지를 구성하는 요소 중에 리튬·니켈·코발트·구리 등을 추출해 재사용하는 사업이다. 전기차 배터리의 주원료로 사용하는 리튬이차전지는 스마트폰 등 소형 IT기기에 사용하는 전지와 동일하게 양극활물질, 음극활물질, 분리막, 전해질 등으로 구성됐다.
주로 전지 가격의 40% 비중을 차지하는 양극활물질에 있는 코발트, 니켈, 리튬 등을 습식제련, 황산 용해 등을 거쳐 각각 원소를 녹여 뽑아내는 방식이다.
배터리 물질 재활용업체 성일하이텍 관계자는 “전지에 사용된 코발트의 경우 90~95%, 리튬은 70~80% 회수가 가능하다”면서 “잔존가치가 없는 전기차 폐배터리에서 활용할 수 있는 물질 재활용으로 환경오염을 줄이면서도 국내에서 생산되지 않는 리튬 등 희토류 재사용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배터리 재사용도 향후 성장이 기대되는 분야다. 전기차에 사용된 배터리는 가정용 에너지저장장치(ESS)나 전동킥보드, 캠핑용 전지 등으로 재사용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전기차 50만대 이상을 보급한 일본 닛산은 2016년부터 전력기업 영국 이튼에너지와 협력해 가정용 ESS를 제작하고 있다.
BMW는 보쉬 및 스웨덴 기업과 공동으로 ESS 생산라인을 구축하고 자국내 전력망과 연계하는 시범사업을 진행 중이다.
국내에서도 현대차그룹이 한국수력원자력·OCI 등과 협력해 폐전지를 활용한 ESS를 태양광 발전시스템에 접목해 실증사업을 진행 중이다. 또 SK이노베이션은 전기자동차용 폐전지를 렌털방식으로 사업화하는 것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밖에 모듈단위나 팩단위로 분리해 다시 제조할 경우 납축전지로 사용되는 캠핑용 전지를 대신하거나 전동킥보드용 전지 등으로 재활용 가능하다.
◇환경 측면도 고려해야
환경 측면에서도 재사용을 활성화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에너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전기차 사용후 배터리 재사용·재활용은 개당 온실가스 48.8㎏을 줄일 수 있다. 이는 리튬이온 전지 생산공정에서 개당 64㎏ 온실가스가 발생한 것을 감안한 것이다.
김재경 에너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온실가스 저감차원에서도 전기차 사용후 배터리를 재사용하거나 물질 재활용하는 것은 환경에도 유익하다”면서 “재사용 시장도 전기차 보급 활성화로 인해 가파르게 성장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이경민기자 kmle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