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가 선진국인지 개발도상국인지 종종 헷갈릴 때가 있다. 선진국의 사전적 의미는 다른 나라에 비해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이 앞선 나라이다. 우리가 흔히 '개도국'으로 줄여 부르는 개발도상국은 여러 측면에서 선진국에 비해 뒤떨어진 나라에 해당한다.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출범 이래 원조 수혜국에서 원조 공여국으로 지위가 바뀐 최초의 사례다. 한국은 1996년 12월 OECD에 가입했으며, 2010년 1월에는 개발원조위원회(DAC) 회원국이 됐다. 한국은 2019년 3월 인구가 5000만명 이상이면서 1인당 국민소득이 3만달러 이상인 '3050클럽'에 7번째로 진입했다. 2021년 7월에는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가 한국의 지위를 개도국 그룹에서 선진국 그룹으로 변경했다. 이러한 점을 감안한다면 우리나라는 이제 선진국인 것 같다.
그러나 국제 비교가 되는 다른 항목을 보면 한국은 선진국과 상당한 거리가 있어 보인다. 한국은 노동시간이 길고 산업재해가 많은 국가로 자주 거론된다. 또 학생들의 학습시간은 매우 길지만 만족도가 지극히 낮은 국가로 분류된다. 남성과 여성의 불평등 정도가 심하고, 사법제도 신뢰도도 떨어진다. 심지어 한국은 자살률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정치 행태에 대한 국제 비교는 찾기 어렵지만 우리 국민이 정치인을 불신하는 것은 삼척동자도 아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한국의 전반적 위치는 어떨까. 이를 판단할 수 있는 자료로는 국제경영개발원(IMD)과 세계경제포럼(WEF)이 발간하는 국가경쟁력에 관한 보고서를 들 수 있다. 물론 국가경쟁력을 평가하는 주체나 기준에 대해서도 의견은 분분하다. 두 기관은 상당히 오랜 기간 꾸준히 보고서를 발간해 왔으며, 많은 국가를 대상으로 다양한 지표를 적용하고 있다. 참고로 IMD는 상반기, WEF는 하반기 국가경쟁력 순위를 각각 발표하고 있다.
올해 6월에 있었던 IMD 발표에 따르면 한국의 국가경쟁력은 조사 대상 국가 64개국 가운데 23위다. 평균보다 높은 지표로는 과학 인프라(2위), 1인당 국내총생산(GDP) 성장률(6위), 실질 GDP 성장률(7위), 기술 인프라(17위) 등이 있다. 평균보다 낮은 지표에는 교육(30위), 남녀 실업률 격차(30위), 노동시장(37위), 사회응집력(40위) 등이 포함된다. 해마다 순위가 조금씩 바뀌기는 하지만 한국의 국가경쟁력은 대체로 21~30위에 랭크되고 있다. 이처럼 한국은 거시경제와 과학기술에서는 양호한 편이지만 노동, 교육, 문화 등에서는 취약한 경향을 보이고 있다.
최근에 겪은 코로나 사태도 한국이 선진국과 개도국 둘 가운데 어느 쪽인지 시험대가 되고 있다. 한국 정부는 한때 'K-방역모델'을 자랑스럽게 여겼다. 그 요체는 검사(Test), 추적(Treat), 치료(Track)의 앞 글자를 따 '3T'로 불리기도 했다. 몇 차례 코로나19 대유행이 진행되면서 백신수급 문제가 도마 위에 올랐다. 한국은 한동안 백신접종률이 매우 낮은 국가였다가 최근에서야 조금씩 나아지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재난지원금을 지급하는 기준이 건강보험료로 정해진 것도 문제로 될 수 있다. 과표 현실화는 오래전부터 거론됐지만 아직도 국민의 실질소득을 제대로 파악하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이처럼 한국은 선진국과 개도국 사이에서 갈팡질팡하고 있다.
누구나 우리나라가 선진국이 되기를 바랄 것이다. 원리는 간단하다. 강점은 살리되 약점을 보완하면서 펀더멘털을 튼튼하게 하는 조치가 꾸준히 이뤄져야 한다. 강점만 홍보하고 약점을 덮으려는 것은 어린아이에게나 어울리는 일이다. 우리나라가 취약한 부분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해당 사안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성실하게 도출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일단 합의에 도달했다면 비록 충분하지 않더라도 이를 수용해서 한 단계씩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정도(正道)다. 이러한 노력과 관행이 축적될 때 한국은 자연스럽게 자타가 인정하는 선진국이 돼 있을 것이다.
송성수 부산대 교양교육원 교수 triple@pusan.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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