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9·19 평양공동선언 3주년을 앞두고 북한을 향해 이례적으로 강한 메시지를 냈다. '북한을 압도' '북한의 도발 억제' 등 기존과는 다른 어휘를 선택했다. '게임체인저'라 불리는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등 우리 군의 전략무기 시연을 직접 참관하면서 강조한 메시지다.
남과 북이 일체의 군사적 적대행위를 전면 중지하기로 한 9·19 남북군사합의가 무색하게 북한이 최근 며칠사이 수차례 미사일을 발사하며 도발해온 상황에서 이뤄진 조치다.
특히 문 대통령은 북한과 혈맹인 중국의 왕이 외교부장을 청와대에서 접견한 지 3시간도 지나지 않아 우리 군의 전략무기 시연을 참관했다. 그러면서 지난 5월 한미정상회담 결과물인 '미사일 지침' 완전 종료에 따른 국방·우주 전력 강화에도 의미를 부여했다.
정부 출범 후 북한을 국제사회 대화의 장으로 이끌기 위해 유화적 제스처에 집중하고, 경제 의존도가 높은 중국과의 관계를 고려했던 것과는 사뭇 달라진 모습이다.
이 때문에 청와대 내 대북정책 기류가 변화한 것 아니냐는 분석도 있다. 자주국방 강화 등 원론적 수준에서 국방·과학 관계자들을 격려할 수 있음에도 이례적으로 북한에 강한 메시지를 냈다는 이유다.
정대진 아주대 통일연구소 교수는 “문재인 정부 출범 후 지속하던 대북정책 기조와 달리 강한 워딩을 준 이유가 의아스럽다”면서 “굳이 대통령이 '도발' 등을 언급하고, 정부의 대북정책 일관성을 무너뜨리면서 북한 비난은 물론 대북정책에 대한 내부 혼란을 자초할 필요가 있었는지 의문스럽다”고 말했다.
대선을 앞둔 행보라는 평가도 있다. 보수진영에서 문재인 정부의 외교안보정책을 비판할 때마다 북한과 중국에 대해 현 정부가 지나차게 '저자세'로 대응한다고 지적해 왔다.
신율 명지대 교수는 “중도층 일부를 흡수하기 위한 방편 중 하나로 읽힌다”고 분석했다. 북한의 계속되는 도발에 부정적인 중도, 보수층을 겨냥한 언급이라는 것이다. 신 교수는 “유엔총회에서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등 기존 유화적 대북정책을 강조하면서 지지층 결집도 도모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문 대통령은 내주 미국 뉴욕에서 개최되는 유엔총회에 참석해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에 대한 국제사회 지지를 요청할 것으로 알려졌다.
김기현 국민의힘 원내대표도 본지 통화에서 “대통령 워딩의 결이 달라지긴 했지만, 북한에 대단히 강한 어조로 경고했다는 느낌은 받지 않는다”면서 “오히려 유엔총회에서 또다시 대북 유화 정책을 강조할까 우려된다. 이제는 헛된 희망, 꿈을 조금 버리셨으면 한다”고 지적했다.
태영호 의원도 “(북한에 대한) 채찍이 아니다.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가 유엔결의 위반이니 도발이라는 표현 쓴 것이고 국내 여론도 신경 쓸수 밖에 없기 때문으로 보인다. 임기 말까지 대북 유화 정책은 계속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청와대는 대선을 앞둔 행보도, 투트랙 전략으로의 대북정책 변화도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청와대 관계자는 “북한이 유엔안보리 결의를 위반하고 탄도미사일을 발사했기 때문에 (문 대통령이)강한 어조로 말씀하신 것”이라며 “대선에 영향력을 끼치려 한다는 일부 주장도 사실이 아니다”고 말했다.
한편 북한은 문 대통령을 직접 거론하며 비난 수위를 높였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동생인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은 담화에서 문 대통령을 거명해 “매사 언동에 심사숙고해야 한다”며 '남북관계 완전 파괴'까지 경고했다. 또다시 문 대통령을 지목해 비난 수위를 끌어올렸다. 청와대는 “특별히 언급하지 않겠다”고 했다.
안영국기자 a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