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20년부터 전 세계를 휩쓴 코로나19는 1918년에 발생해 5000만명의 목숨을 앗아 간 스페인독감을 떠올린다. 지금과 달리 교류가 활발하지 않은 시기였지만 우리나라에서도 인구 절반에 이르는 740만명이 감염됐다는 기록이 남았을 정도다. 코로나19의 높은 전염성에도 스페인독감이나 페스트와 같이 '인류 최대의 재앙'으로 간주하지 않는 것은 기적적으로 빠르게 개발된 백신 덕분이 아닌가 싶다.
스페인독감의 원인은 바이러스를 분리하고 보존하는 기술이 없어서 미스터리로 남아 있었다. 그 후 알래스카에서 발견된 한 시신으로부터 스페인독감 바이러스를 분리해서 재생에 성공한 이후 한 세기가 지난 2005년에야 처음으로 원인 가설이 제기됐고, 2014년에 유래와 함께 높은 치사율에 관한 연구 결과가 나왔다.
코로나19 백신이 빠르게 개발된 것은 바이러스 단백질 구조를 신속하게 규명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2017년 리처드 헨더슨, 요아힘 프랑크, 자크 뒤보셰에게 노벨화학상을 안긴 극저온 전자현미경이 큰 역할을 했다. 수분이 들어 있는 세포와 물에 녹아 있는 생체 고분자를 극저온 상태로 유지한 채 전자현미경으로 관찰하는 것으로, 이를 이용하면 단백질의 3차원 이미지를 얻을 수 있다.
코로나19 백신 개발에 단백질 구조를 규명하는 이유는 자물쇠를 열기 위해 구조를 파악하는 이유와 같다고 생각하면 된다. 잠긴 자물쇠를 열기 위해서는 구멍에 딱 들어맞는 열쇠가 필요하다. 열쇠를 찍어 내기 위해서는 자물쇠 구멍 속 구조를 알아내야만 하는 것이다. 코로나19를 포함해 질병 바이러스는 단백질로 구성돼 있다. 세포막을 구성하는 세포막 단백질은 세포 상호작용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60%에 가까운 질병의 원인이 바로 세포막 단백질에서 비롯된다.
코로나바이러스도 인체에 쉽게 침투할 수 있도록 하는 세포막 단백질이다. 자연스럽게 단백질 구조를 이해하는 것에서 질병에 관한 연구가 시작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단백질이야말로 우리가 병을 앓는 이유, 그 병을 낫게 할 치료법을 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인류가 태생부터 안고 있는 병(病)이라는 만성적인 고민을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임이 틀림없다.
단백질이라는 존재의 상세한 구조와 역할은 비교적 최근에야 알려지기 시작했다. 너무 작아서 살아있는 상태의 단백질이 어떤 구조로 생겼는지, 어떤 메커니즘으로 작동하는지를 알기엔 어려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찰나의 빛' 또는 현존하는 최고의 빛으로 불리는 4세대 방사광가속기의 빛인, 앞에서 언급한 극저온 전자현미경이 필요하다. 세상에서 가장 밝은 빛과 세상에서 가장 낮은 온도(영하 170도 이하)가 만나야 단백질 구조를 알아낼 수 있다니 그야말로 흥미롭지 않을 수 없다. 오는 29일 경북 포항시에 세포막단백질 연구소가 문을 연다. 세포막을 구성하는 단백질 구조를 분석해서 질병의 원인 규명 연구를 수행하는 곳으로, 암이나 대사성 질환과 같은 난치병을 연구한다. 연구소는 지금까지 우리나라에 단 한 대에 불과하던 극저온 전자현미경을 2대나 보유하면서 세포막 단백질 연구에 더욱 박차를 가하게 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세포막 단백질만 연구하는 국가급 연구소로는 세계에서 유일하다. 더욱더 중요한 의미는 이미 구축된 3·4세대 방사광가속기, 혁신적인 바이오 벤처가 모여 있는 바이오 오픈이노베이션 센터와 더불어 신약 개발을 위한 바이오 클러스터의 퍼즐이 거의 맞춰졌다는 것이다.
스페인독감 이후 100여년 만에 코로나19 팬데믹이 일어났듯 가까운 미래에 또 다른 바이러스가 올지 모른다. 세포막 단백질연구소와 바이오 클러스터가 난치병은 물론 언젠가 불쑥 찾아올지 모를 낯선 전염병으로부터 건강한 삶을 영위하기 위한 핵심적인 역할을 하길 기대한다.
김무환 포스텍 총장 mhkim8@postech.ac.kr
-
정재훈 기자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