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터리 산업이 반도체를 이을 미래 주력 산업으로 떠올랐다. 세계 1·2위를 다투는 글로벌 배터리 판매 순위도 중요하지만 배터리 강국이 되려면 소재에서 완제품에 이르는 글로벌 공급사슬의 핵심 거점이 돼야 한다. 성장 산업의 경제적 파급효과를 자국에서 내재화할 수 있는 생태계 조성이 필요하다.
새로운 산업이나 기업이 발생할 때 경제적 효과는 자국 내 투자에서부터 시작된다. 설비 투자와 이를 토대로 발생하는 매출은 전후방 연관산업을 거쳐 수많은 일자리와 부가가치를 창출한다.
한국 기업이 해외에 투자하면 긍정적 효과 대부분이 물건너간다. 애국심 높은 국민은 일자리 대신 K-브랜드의 글로벌 진출에 대한 자부심을 보상으로 받는다. K-배터리도 수요시장 공략을 위한 해외 진출을 활발히 진행하고 있다. 그러나 공급망의 핵심 영역은 한국에서 이뤄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지금의 한국 배터리 산업은 완제품 분야에서 급성장했지만 소재 분야는 중국·일본에 의존하는 취약한 구조로 성장해 왔다.
배터리 1차 원재료는 리튬, 니켈, 코발트 등 광물 산업에서 나오기 때문에 이 분야에 경쟁력이 없었던 한국 기업들은 배터리 제품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보니 양극재·음극재 등 핵심 소재를 만들기는 하지만 리튬, 전구체, 흑연 등 주요 재료 대부분은 중국에서 수입하는 상황이다.
K-배터리 제품이 중국 CATL, 비야디(BYD) 등 글로벌 시장에서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지만 소재 분야의 후방산업은 중국 수입의존도가 80~90%에 이른다.
배터리 생산 원가의 40%를 차지하는 양극재 사례를 살펴보자. 양극재 생산을 위해서는 중간 소재인 전구체가 필요하지만 국내 자급률은 20%로 추산된다. 지난 2020년 전구체 수입량은 총 11만톤에 이른다. 이 가운데 10만톤(91%)이 중국에서 수입됐다.
물론 국내 기업의 증설과 신규 진출로 향후 2~3년 내 국내 생산 능력은 2배 이상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전방산업 및 양극재 수요 증가율에는 미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중국은 자국에 일부 희귀 금속 광산을 보유하고 해외광산 개발을 선점했다. 중국 내 정련 산업이 발달해 배터리 소재 분야에서 압도적인 지배력을 갖추고 있다. 한국 내 생산 비용 등을 고려하는 사업성 측면에선 인접 중국에서 생산된 저렴한 소재를 수입 조달하는 것이 훨씬 경제적이다. 더욱이 중국은 설비 과잉으로 범용 제품은 생산 여력이 남아도는 상황이다.
지금이야말로 배터리 소재 산업을 육성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될 수 있다. 미-중 무역 분쟁과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면서 과거 저비용·효율성 위주의 글로벌가치사슬(GVC) 전략은 자국으로 회귀하거나 공급망을 다변화하는 방향으로 조정기를 맞고 있다.
특히 우리는 일본의 반도체 소재 수출 규제를 겪으면서 경쟁국이 수급 구조의 취약성을 어떻게 공격하는지, 자급체제 구축이 왜 중요한지를 뼈저리게 겪은 바 있다.
장기적 관점에서 보면 배터리 산업은 아직 도입기에 불과하다. 가까이는 오는 2025년을 기점으로 산업 지형에 큰 변화가 있을 수 있다. 차세대 전고체 배터리가 상용화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토요타, 폭스바겐 같은 완성차 업체들과 미국·유럽의 스타트업들도 배터리 경쟁의 전면전에 나설 것이다.
차세대 배터리의 향방에 따라 소재 공급망도 재편될 것이다. 배터리 경쟁력은 소재에서부터 시작된다. 한국 내 배터리 소재 산업의 혁신 생태계가 조성될 때 배터리 강국으로 탄탄한 내실을 다지게 될 것이다.
윤성빈 QY리서치 코리아 대표, yoon@qyresearch.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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