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 산업혁명은 다양한 학문·기술 간 융합을 통해 기존 시스템을 무너뜨리는 파괴적 혁신으로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파괴적 혁신의 융합 사례로 아이폰이 처음 만들어졌을 때 애플 수석엔지니어이던 앤디 그리뇽은 “이미 생각할 수 있는 제품이었다면 아이폰은 절대 성공할 수 없었을 것”이라면서 “우리는 스스로 이 문제를 해결할 만한 전문성을 갖췄는지도 몰랐다”고 말했다.
그리뇽의 말은 지금도 유사한 상황이다. 아마존, 테슬라 등의 파괴적 혁신 사례를 통해 융합 연구는 필수 요소가 됐지만 연구 현장에서의 융합 활동은 부족하다고 한다. 융합의 목표는 파괴적 혁신을 이루는 것이며, 과정은 연구 현장의 구성 요소에 융합의 가치를 부여하고 지속 가능한 체계를 갖추는 것이다. 가치는 자신이 가장 잘하고 잘할 수 있는 강점을 찾고, 스스로 최상의 의미를 부여하고 노력할 때 만들어지게 된다.
그동안 정부출연연구기관(출연연)은 가치를 찾고 부여하는 노력으로 '역할과 책임'(R&R)을 수립하고 성과를 도출해 왔다. 기관별 강점을 체계화하는 수직적 R&R, 기관별 강점을 연결 및 협력하는 수평적 R&R를 구축하고 있다.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도 R&R에 따라 데이터와 슈퍼컴퓨팅 전문기관으로 인정받고 있다. R&R 다음 단계는 강점 융합을 통해 파괴적 혁신을 지속적으로 만들어 낼 수 있는 글로벌 선도기관으로 성장하는 것이다.
최근 김복철 국가과학기술연구회(NST) 이사장의 “융합연구의 생태계를 활성화해서 융합이 일상화될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하겠다”는 계획 발표는 적절한 시기에 반가운 소식이다. 연구 현장에서 일상적으로 융합이 이뤄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가치가 부여된 융합 과정을 체계화하고 자발적 참여 환경을 조성할 필요가 있겠다. 어떠한 시도를 해볼 수 있을까. 이해관계가 적지만 꼭 필요한 주체(기관)를 포함시켜서 출연연 간 융합을 선제적으로 추진해 보는 것이다. 이해관계가 적으면 쉽게 서로의 마음을 열 수 있을 것이며, 꼭 필요한 일이면 공통의 가치와 미래를 함께 논의할 수 있을 것이다. 출연연 현장에 기반을 둔 과학기술연합대학원대학교(UST) 연구와 인력 양성 기능을 연계해서 지속 가능한 융합 환경 조성을 시도해 보면 좋겠다.
UST는 32개 출연연 캠퍼스, 다양한 전문 분야의 교원 1200여명, 46개 전공으로 구성돼 있다. 석·박사 과정 1300여명의 학생들이 현장 중심의 학업과 연구를 수행하고 있어 출연연 간에 상시적 융합 연구의 기본 토대가 마련돼 있는 것이다. 이것은 필자만의 생각이 아니다. 설립 초기부터 중점을 둔 UST 핵심 정책의 하나다. 현재 다양한 융합 연구 기반이 조성돼 있다. 정례적 대표교수단 회의, 소위원회 운영, 학생회 조직 등을 통해 교원과 학생 참여 및 협력이 대폭 증가했다. 현장에 맞는 제도 개선도 이뤄지고 있다.
이러한 협력을 기반으로 인공지능(AI) 분야의 특화 융합 전공을 신설했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에 AI연구, KISTI에 응용AI,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에 로봇AI 전공을 마련했다. 내년부터 이들 3개 기관이 학생모집, 교원교류, 공동교과목을 공동 운영한다. 해외 전문기관과의 공동연구 및 워크숍도 수행할 예정이다. 융합연구 주제를 발굴하고, 논문심사에도 다양한 전문가들을 포함한다. 각 기관이 보유한 기술과 인프라를 사용해 캠퍼스 간 지속적 융합이 이뤄지도록 추진한다. UST 정책 포럼에서도 활성화 방안이 논의될 예정이다. 탄소중립, 디지털 트윈 등 다양한 분야로의 확대와 성과 도출도 가능할 것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선도하기 위해 융합은 필수 불가결한 일이다. 강점 융합 연구가 일상이 되어 파괴적 혁신을 일구는 일에 출연연이 선도적 역할을 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조금원 KISTI 책임연구원 및 UST 교수 ckw@kisti.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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