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리고 빠른 대화라는 의미는 바다의 밀물과 썰물처럼 식물이 생성하고 소멸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식물 우점종과 열성종의 생육 속도가 서로 다른 자연 순환과정을 담았습니다.”
정원 디자이너이자 환경 미술가인 황지해 작가 정원예술이 국립현대미술관(MMCA)에서 펼쳐진다. '원형정원 프로젝트:달뿌리-느리고 빠른 대화'라는 이름으로 2023년 12월 17일까지 개최되는 MMCA의 과천 특화 프로그램이다.
'원형정원 프로젝트'는 자연 속 미술관인 국립현대미술관 과천의 지리적·환경적 특성을 반영해 미술관 건물 원형옥상 공간에 설치한 정원예술이다. 원형옥상은 과천관 2층과 3층 사이 야외공간에 위치해 둥글게 트인 하늘을 마주할 수 있는 장소다.
황지해 작가는 과천관을 둘러싸고 있는 주변 산야 식생을 원형정원 안으로 데려와 가장 주된 재료로 사용했다. 정원 밖으로는 원형정원을 둘러싼 관악산과 청계산 능선이 정원과 하늘을 구분하는 경계선이 된다.
그는 “미술관 옥상정원이 가운데가 가라앉은 선큰가든 형태”라며 “달이 이곳에서 태어났을 거라는 상상력으로 정중앙에 있는 엘리베이터 원기둥이 달의 뿌리라고 표현했다”고 말했다.
옥상정원의 뷰포인트는 실내 명상공간, 외부 정원, 옥상 3곳이다. 실내 명상공간은 12월 초에 오픈한다. 12개 창에서 중정을 바라보는 산비탈과 중정에서 보는 산기슭은 산의 단면을 입체적으로 보여준다. 여기에 옥상에서 바라보는 360도 뷰와 합쳐져 관악산과 청계산 경치와 어우러진다.
'달뿌리-느리고 빠른 대화'는 한국 전역 하천가에서 자생하는 '달뿌리풀'에서 따왔다. 원형정원이 자리한 건물 원통 형태가 식물 줄기와 유사하다는 데 착안, 정원이 하늘의 달을 지탱하는 뿌리가 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프로젝트를 통해 작가는 관람객이 더디게 흘러가며 끝없이 반복되는 자연의 무한함과 매 순간 변하는 자연의 찰나를 체감하며 식물들이 건네는 느리고 빠른 대화에 귀 기울일 수 있기를 기대한다. '원형정원 프로젝트'는 약 2년간 운영돼 과천의 사계절을 담아내며 시간에 흐름에 따라 생동하는 자연의 순환 과정을 보여줄 예정이다.
그는 “과천관 주변 생태를 옮겨옴으로써 주변 자연환경과 공존과 공생으로 종의 보존과 유전자원 가치를 이야기하고자 했다”면서 “정원을 전시할 수 있게 도움을 주신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과 태성문화재단 우현희 이사장께 감사하다”고 전했다.
황지해 작가는 정원을 원예와 조경의 한계를 넘어선 더 다양한 가치를 지닌 예술로서 확장하고자 한다. 자연의 무한한 생명력에서 창작 의지를 찾으며 우리 땅에서 자생하는 고유한 종의 보전과 지속 가능한 정원을 이야기한다. 섬세하고 자연스러운 식재 연출과 한국의 문화적 가치를 담은 프로젝트로 국내외에서 주목을 받았다.
김정희기자 jhakim@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