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누리호 발사 실패 리스크를 정면 돌파했다. 청와대 참모진 우려에도 “과장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성취를 최대한 축하하겠다”고 연설문도 직접 수정했다.
누리호가 발사 성공 여부와 관계없이 대한민국 우주산업의 기틀을 마련하는 기폭제가 될 것으로 기대했기 때문이다. 누리호는 목표인 700㎞ 고도에 안착했으나 궤도 진입에 실패했다.
박수현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24일 페이스북에 '브리핑에 없는 대통령 이야기'라는 제목의 글을 올리고 문 대통령 메시지에 얽힌 뒷이야기를 상세히 전했다.
문 대통령은 지난 21일 전남 고흥 나로우주센터에서 국내 최초 우리 기술로 완성한 한국형 발사체 '누리호' 첫 발사 현장을 참관한 뒤, 성공 여부 브리핑을 직접했다. 당시 현장에선 담당 부처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이나 1차관이 브리핑을 하기로 돼 있었다.
그러나 생방송 현장 브리핑룸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문 대통령이었다. 문 대통령은 “대한민국 우주시대가 눈앞으로 다가왔다. 대단한 성과를 냈다”면서도 “아쉽게도 목표에 완벽하게 이르지는 못했다. 더미 위성을 궤도에 안착시키는 것이 미완의 과제로 남았다”는 대국민 메시지를 밝혔었다. 누리호 발사 후 궤도 안착에 실패했음에도 직접 마이크를 잡은 것이다.
문 대통령은 박수경 청와대 과학기술보좌관에게 '궤도 안착 실패 예상' 소식을 보고받은 뒤 연설문을 직접 수정했다. 참모진은 누리호 발사 '성공' '부분성공' '비정상 비행' 등 다양한 버전으로 연설문을 준비했었다.
박 수석은 “과기보좌관은 '졌잘싸(졌지만 잘 싸웠다)' 컨셉의 톤 다운된 버전으로 연설문 수정을 제안드렸으나 문 대통령은 '비록 더미 위성을 궤도에 안착 시키지는 못했으나 1, 2단 연소와 분리, 페어링까지 다 성공했으니 과장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성취를 최대한 축하하는 연설문으로 작성하겠다'며 직접 연설문을 수정했다”고 전했다. 문 대통령은 연설문을 수정하며 “위성 속도가 충분하지 못했지만 위성의 목표 고도를 성취한 것은 국민께 알려야 한다”고 강조했다고 한다.
박 수석은 “(문 대통령은) 이후 별도로 연구원들에게 일일이 격려 메시지를 발신하시고,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도 '우리가 이룬 성취를 국민들께 잘 전달하고 연구진들의 사기를 북돋워 드리라'고 재차 당부했다”고 전했다.
특히 문 대통령은 청와대 참모진 일부가 누리호 발사 실패에 대한 우려에도, 실패해도 대통령이 직접 대국민 연설을 해야 한다고 했다고 한다.
박 수석은 “누리호 발사는 1-2-3단 완전체가 조립돼 우주로 발사되는 첫 발사체 비행시험으로 세계적으로도 성공률이 30%가 채 안 되기 때문에, 대통령의 현장 참관일정 추진은 고민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며 “사실, 현장 일정으로 결정하고 나서도 큰 걱정거리가 또 하나 있었다. 혹여라도 실패시에 대국민 연설을 어떻게 하느냐는 것이었다”고 당시 청와대 내부 분위기를 전했다. 참모회의에선 누리호 발사 실패 시 문 대통령이 생방송 연설없이 연구원 격려만 하고 돌아오는 것으로 논의됐었다.
박 수석은 “그러나 문 대통령은 '실패시에도 직접 생방송 연설을 할 것이고, 내용도 현재까지 우리가 확보한 기술의 축적과 우리나라 우주개발의 도전과 의미를 담겠다'라는 지시를 내려보냈다”고 했다.
문 대통령은 지난 15일 청와대 참모진과의 티타임에서도 “설사 누리호 발사가 실패를 한다고 하여도 우주개발은 실패를 통해 소중한 경험을 축적하는 것이고 성공은 결국 시간의 문제다. 세계적으로도 첫 발사의 성공 확률이 낮은 것은 사실이지만 실패하더라도 지속적인 우주개발의 도전을 격려하기 위해 누리호 발사 현장의 참관을 결정했다”고 언급했다고 한다.
박 수석은 “오늘 '대통령 이야기'는 스스로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그저 있었던 일화를 소개만 하려 한다. 왜냐하면 이날의 성취는 오롯하게 '항우연 연구자들'을 비롯한 우주산업 관계자들의 공로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안영국기자 a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