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사생활 뚫은 '웹캠 해킹'

우리나라의 한 수육국밥집. 카메라는 식당 홀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위치에 설치돼 있었다. 사장으로 보이는 중년 남성이 카운터와 홀을 오가고, 손님이 식사하는 모습 등이 카메라에 잡혔다. 기사를 마감하는 그 순간까지 실시간으로 현장을 엿볼 수 있었다.

취재는 제보에서 시작됐다. 익명의 제보자는 기자에게 이메일로 우리나라 아파트 내부로 추정되는 사진이 해외 해킹 웹사이트에서 대량 유통되고 있다고 알려 왔다. 제보자가 공유한 링크로 접속하니 실제로 국내 가정집 내부로 보이는 사진들이 올라와 있었다. 아파트 출입 현관에 설치된 월패드에는 익살스러운 표정으로 장난하는 사람들의 얼굴 모습이 그대로 촬영됐다.

해외 해킹 웹사이트 R에 앞서 등록된 한국 아파트 내외부 사진. 주차장과 거실 전경을 비롯해 출입자 얼굴 전면까지 고스란히 촬영돼 송출됐다. R 웹사이트 캡처
해외 해킹 웹사이트 R에 앞서 등록된 한국 아파트 내외부 사진. 주차장과 거실 전경을 비롯해 출입자 얼굴 전면까지 고스란히 촬영돼 송출됐다. R 웹사이트 캡처

추가 취재 과정에서 더욱 충격스러운 장면도 보게 됐다. 보안 인텔리전스 업체 에스투더블유가 찾은 웹캠 공유 사이트는 보안에 취약한 전 세계 웹캠을 집약한 곳으로, 클릭만 하면 각 카메라로 실시간 상황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들 사이트는 가상사설망(VPN) 등 별다른 2차 조치 없이도 쉽게 접근할 수 있었다. 범죄자들은 취약 웹캠을 나라별로 분류, 이용자 편의성(?)을 높이기도 했다.

너무나도 적나라해서 기사에 담지 못한 장면이 많다. '연결될수록 보안에 취약해진다'는 사실을 체감할 수 있는 사건이었다. 스마트홈, 스마트팩토리, 스마트팜 등 편리함을 내세운 사업이 우후죽순 늘고 있다. 폐쇄회로(CC)TV 설치도 산업 유형을 막론하고 급증했다. 편리성을 누리는 것도 이용자지만 보안 위협을 감수해야 하는 것도 이용자다. 남우기 한국정보통신기술사회 회장은 보안 조치를 제대로 하지 않는 사업자에 대해 “(보안 조치를)하기 어렵다고 국민 안전을 팽개쳐도 되냐”고 비판했다.

세대 간 망 분리 규정을 지능형 홈네트워크 설치 및 기술 기준에 포함하는 등 법 개정과 별개로 일반 보안 인식도 끌어올려야 한다. 개인이 사생활 보호 및 안전 권리를 각 사업자와 정부에 주장하고, 보안 공감대를 형성해야 한다. 보안의 문제점을 발견하고 신고하는 사람은 처벌하는 것이 아니라 포상하는 문화도 만들어야 한다. 현재는 신고자를 외려 처벌하기 쉬운 구조다. 월패드, 웹캠, IP카메라를 통한 사생활 침해는 갈수록 심각해질 것이다. 어렵고 복잡한 문제지만 지금부터라도 하나씩 풀어 가야 한다.

오다인기자 ohdain@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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