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를 위한 법인지, 소비자 권리가 퇴보하는데도 밀어붙이려나 봅니다.”
화장품법 개정안에 반대하는 한 소비자단체 관계자의 말이다. 화장품 제조원 표기 삭제를 주 내용으로 하는 화장품법 일부 개정안을 취재하면서 가장 많이 들은 말이기도 하다. 개정안에 대한 소비자단체와 화장품 업계 주장이 갈리고 있지만 법안 통과에 무게가 실리고 있기 때문이다.
현행 화장품법은 제품 용기에 책임판매업자(화장품 브랜드)와 화장품을 위탁생산하는 제조업자를 의무로 표기해야 한다. 개정안은 제조업자 의무 표기 삭제를 주 내용으로 한다.
고등어 한 마리를 사더라도 원산지부터 유통 단계별 정보를 알 수 있는 시대다. 화장품만 유독 규제를 풀어 제조원을 표기하지 말아야 한다는 게 언뜻 이해되지 않는다.
법안 제안 이유에서도 명확한 답을 찾긴 어려웠다. 해당 법안의 제안 이유에선 '화장품 분야의 주요 수탁 제조사 독점이 발생하거나 해외 업자들이 유사품 제조를 의뢰해 국내 수출기업에 타격이 발생할 수 있다는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또 '유통 제품의 품질·안전 책임이 화장품책임판매업자에 있고, 외국과 규제 조화를 위해서도 의무 표시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국내 수출기업이 타격을 받는다거나 외국과의 규제 조화를 위해서라는 게 법안 발의 배경이란 의미다. 결국 법안 제안에서도 소비자 권리나 안전에 대한 염려는 찾아볼 수 없다.
지난 2019년 한국에프디씨법제학회가 소비자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연구 결과에서도 '제조업자와 책임판매업자를 모두 표시해야 한다'는 소비자가 925명(92.5%)으로 압도적으로 높게 나타났다.
국내 화장품 제조업자로 등록된 업체 수는 약 4300개에 이른다. 그러나 이들 업체 가운데 최첨단 설비와 환경을 갖춘 곳은 극히 드물다. 단속과 감시는 권한 있는 기관에서 살필 일이다. 소비자는 제품 구매 전 최소한 이에 대한 정보를 알고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무엇보다 피부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화장품은 더욱 엄격히 관리해야 한다. 과거 전국 규모로 피해가 커진 '헤나염색약 부작용' '가습기 살균제 사건'과 같은 전철은 밟지 않길 바란다.
박효주기자 phj20@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