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핀테크 기업 레볼루트가 탄생하는 데 6개월이 걸렸다. 레볼루트는 모바일 기반의 외화 환전 및 결제를 제공하는, 기업가치 37조원의 세계 최대 핀테크 스타트업이다. 레볼루트가 빠르게 서비스를 출시할 수 있게 된 배경에는 영국의 우호적 금융규제 환경도 있지만 뛰어난 핀테크 생태계의 영향이 컸다. 전문 솔루션 업체가 많다 보니 자체 개발 없이 외환거래 및 결제 인프라를 쉽고 빠르게 구축할 수 있었다.
한국에서 레볼루트와 유사한 서비스인 트래블월렛은 기획에서 서비스 출시까지 무려 4년이 소요됐다. 규제 해결에도 시간이 걸렸지만 한국에 관련 솔루션 업체가 없다 보니 모든 시스템을 직접 구축하고 개발하는 데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현재 한국에서는 은행 외에 관련 솔루션 제공업체가 탄생할 법적 근거가 전무한 상황이다.
한국은 금융 인프라 및 솔루션 대부분을 은행에 의존하고 있어 신생 핀테크 기업의 탄생이 쉽지 않다. 은행들이 자사 금융 인프라를 검증되지 않은 소규모 핀테크 기업에 제공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이렇다 보니 참신한 아이디어가 있는 핀테크 스타트업이 은행의 계좌 관련 인프라를 제공받지 못해 서비스 출시에 실패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문제는 현재 국회에 계류된 전자금융거래법 개정안에 담긴 종합지급결제사업자 제도가 해법일 수 있다.
종합지급결제사업자는 핀테크 스타트업이 은행 등 기존 금융시스템에서 제공받지 못한 계좌 발급과 관리, 지불 결제 및 이체 업무 등 전자금융 거래와 관련된 제반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영국처럼 다양한 핀테크 솔루션이 신생 스타트업에 공급될 수 있는 인프라가 구축되는 것이다.
현재 한국에는 전자지급결제대행(PG), 부가가치통신망(VAN)사를 비롯해 상당한 규모를 갖춘 전자금융업자가 많이 있다. 자본금과 업무 범위를 고려했을 때 종합지급결제업자에 진출할 가능성이 짙은 기업들이다. 대부분이 직접적인 고객 베이스를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핀테크 기업에 솔루션을 공급하는 비즈니스를 진행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종합지급결제사업자들은 핀테크 솔루션을 공급하는 동시에 신생 핀테크 회사로부터 발생할 수 있는 소비자 피해에 대한 구제 및 정보기술(IT) 보안 문제 등에 대한 관리 및 사후 해결 책임을 맡아 리스크가 확산되지 않도록 차단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 이번 머지포인트 사태만 해도 종합지급결제사업자가 그들에게 전자금융 관련 인프라를 제공하고 관리했다면 충분히 관리 가능한 사안이었다.
종합지급결제사업자가 핀테크 솔루션 공급업체가 된다면 금융당국-전자금융업자-은행 모두 승자가 될 수 있다. 금융당국은 소비자 피해 리스크를 줄이면서 다양한 핀테크 서비스 탄생을 지원할 수 있고, 전자금융업자들은 새로운 수익원을 찾아 비즈니스를 성장시킬 수 있다. 또한 종합지급결제사업자가 거래의 완결을 위해 은행과 최종 거래를 해야 하는 구조여서 은행도 새로운 수익원을 창출할 수 있다.
20세기 글로벌 금융시스템이 구축될 때 빠르게 움직인 미국과 영국계 금융회사들이 전 세계 금융시스템을 장악했고, 이에 따라 막대한 수익을 지속적으로 창출하고 있다. 현재 기술의 발전으로 새로운 금융질서가 확립되려 하는 시점이다. 변화 속도를 맞추지 못하면 또다시 다른 나라가 구축해 놓은 질서에 높은 비용을 치르며 따라가기만 해야 한다.
빠르게 변화하는 글로벌 핀테크 트렌드를 선도하기 위해 전자금융거래법 개정이 더 이상 늦춰지면 안 된다. 골든타임이 얼마 남지 않았다.
김형우 트래블월렛 대표 hwkim@travel-wallet.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