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 팬데믹, 기술혁명의 거대한 물결을 한꺼번에 마주하며 그 솔루션으로서 원자력발전 가치가 떠오르고 있다. 탄소중립에 목청 높인 유럽, 경제성장에 방점을 둔 미국 모두 현재와 미래를 관통하는 동력으로서 원자력발전의 다양한 활용 의지를 밝혔다. 원전이 좋아서도 위험하지 않아서도 아니다. 인류가 낯선 위기를 넘어서면서 바람직한 삶의 수준을 이어 가기 위해 어쩔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원전을 다시 제대로 이용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충족해야 할 전제조건이 있다.
올여름 국민 1011명과 원전을 보유하고 있는 기장군·울주군·영광군·울진군·경주시 주민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 50.3%의 국민과 58.7%의 원전지역 주민이 대한민국에서 원전을 계속 이용해도 괜찮다고 응답했다. 이에 반대하는 국민과 지역주민은 각각 15.8%와 18.2%다. 새로운 원전 건설에 대해 국민은 수용과 거부가 각각 42.0% 및 30.9%, 지역주민은 수용과 거부가 각각 56.2% 및 21.2%였다.
내가 사는 지역에 원전이 건설되는 것에 대해 국민과 지역주민 간 입장 차이는 확연하다. 국민의 경우는 동의(34.8%)보다 반대(37.0%)가 많은 데 비해 지역주민의 경우는 동의(52.1%)가 반대(24.7%)보다 두 배 이상 많았다.
국민과 지역주민 모두 에너지정책 결정의 최우선 순위로 안전성을 꼽았다. 에너지 공급의 안정성과 경제성은 그 뒤를 이었다. 국민의 54.9%와 지역주민의 73.7%는 원전이 위험하다고 느끼고 있었다. 여기에는 답도 있다. 원전과 20년 이상 생활하고 있는 지역주민 대부분이 원전을 위험하다고 느끼지만 원전을 지역에 더 짓는 것에 50% 이상이 수용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즉 위험하지만 그 위험이 실제 세상 밖으로 나와 사람 및 자연을 해코지하지 않도록 하고 신뢰하게끔 정부와 원자력계가 행동한다면 원전은 가치 발휘의 기회를 얻을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세 가지가 절대 필요하다. 첫째 원전 사고 대응과 방사능 방재에 대한 전면 혁신이다. 기후위기는 과거와 차원이 다른 자연재해를 일으킨다. 지금까지 별일 없었으니 안전성이 검증됐다는 말은 통하지 않는다. 물론 원자력시설 등의 방호 및 방사능 방재 대책법도 있고 원자력안전위원회와 행안부를 불편한 투톱으로 하는 탁상 재난대응체계도 갖추고 있다. 그러나 정작 원전사고가 발생할 경우 최전선에서 주민을 보호할 지방자치단체와 소방관은 현행 공조체제에 답답함을 토로한다. 사고가 난다는 전제 아래 실제 작동할 수 있는 공조시스템과 매뉴얼로 재편하고, 단순 시뮬레이션이 아니라 메타버스 등을 활용한 실제 훈련도 강화해야 한다. 그래야 국민도 지역주민도 원전 활용에 편견 없이 판단할 수 있다.
둘째 고준위방사성폐기물 관리기본계획의 즉각 부활이다. 정부가 원전 가동 37년째인 2016년 7월, 12년 3개월의 불연속적 공론화를 거쳐 법에 따라 수립한 고준위방사성폐기물 관리 기본계획을 현재 정부는 전면 부정하고 2년 동안 재검토한 후 2021년 4월 권고안으로 후퇴시켰다. 사용후핵연료 문제는 부정할 수 없는 원전 활용의 아킬레스건이다. 기본계획은 완벽할 수 없다. 그러나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처음부터 다시'가 아니라 여기서부터 달라진 현실에 맞게 보완해서 실행에 들어가야 한다.
셋째 원자력계 탈피다. 연구를 위한 연구가 아니라 치명적 문제 해결을 위한 연구, 독점이 아니라 연결과 협업을 통한 성과 창출에 집중해야 한다. 또 의지를 공표하고 실천해야 한다.
최근 주요 선진국이 에너지정책 원칙으로 에너지 안보와 회복 탄력성을 선택한 이유를 원자력에 대해 다시 생각하는 까닭을 냉정하게 곱씹어서 대한민국 에너지정책을 결정해야 한다. 지금 사회적 대화를 시작해야 한다.
조성경 명지대 교수 supercharmsae@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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