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른 속도로 변화하는 시대적 흐름에 걸맞는 21세기형 미래 대학 모델을 구축하겠습니다.”
심종혁 서강대 총장의 올 초 취임 일성이었다. 그는 대학이 상아탑으로만 존재해선 안된다고 역설했다. 학문은 시대에 따라 변화하고 사회와 접점이 있어야 한다는 판단이다. 지식을 가르치고 배우는 방식도 빠르게 바뀌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대학 변화에 앞장서는 역할을 자처했다.
심 총장은 6월 '서강 비전 2030'을 선포했다. '제2의 건학'에 버금가는 개혁을 추진하겠다고 선언했다. 10년 내 글로벌 100대 대학에 진입하기 위해 범학제간 융복합 연구 국내대학 1위, 인문사회 2위, 자연공학 3위 및 산학협력 기술이전 1위 달성을 구체적 목표로 제시했다.
심 총장은 “신입생이 입학했을 때 제시했던 목표를 졸업생이 됐을 때 달라지는 학교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고 강조했다.
서강대는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서강대는 LG전자·스마일게이트와 산학협력을 바탕으로 일반대학원에 인공지능(AI) 학과를 개설했다. 커리큘럼 설계부터 학생 선발까지 학교와 기업이 공동 진행한다. 또 국내 대학 최초로 메타버스 전문대학원을 설립했다. 메타버스 전문대학원 2022학년도 전기 첫 신입생 모집은 무려 6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심 총장은 내년 교수(교원) 겸직제도를 신설한다. 교수가 자신의 원소속 이외 다른 전공에서 교육과 연구 수행을 겸직할 수 있는 제도다. 여러 학문 분야에 걸친 융합 교육과 연구를 장려하기 위한 목적이다. 석학교수 제도도 신설한다.
심 총장은 서강대가 인문·과학기술간 융합을 통한 미래 인재의 산실이 될 것으로 자신했다.
대담=김원배 ICT융합부장
-21세기형 미래 대학 모델 방향성은.
▲학문이 시간이 흐르면서 사변으로 흐르거나 상아탑 같은 울타리가 됐다. 인간 생활에 대한 응용성이 없어진 것이다. 지금은 여러 학문이 융합하고 교류해야 하는 시대다. 좀 더 현실, 인간 삶과 직접적 상호작용, 실용성이 필요하다. 대학이 변해야 한다. 교육도 하고, 연구도 하고, 사회에 기여하고 연대하는 부분도 필요하다.
대학의 고유성을 끊임없이 성찰을 통해 바꾸고, 사회와의 만남을 통해 대학의 역할을 드러낼 수 있다. 자기안에 갇혀있으면 우월함에 빠질 수 있다. 지금이 새로운 기회다.
-사회와 교류, 협력을 강조하고 있다.
▲대학과 사회 사이에서 이상과 현실은 갭이 있을 수 있다. 예수회에서 설립하고 운영했던 대학은 학문이 지닌 실용성과 사회의 기여를 강조했다. 그런데 점점 학문에만 집중하다 보니 실용성을 잊고 추상화된 지식만을 추구하는 상황이 됐다. 지금은 우리만 잘사는 것이 아니라 이웃과 같이 잘 살아야 하는 것을 깨닫는 시대다. 다른 존재들과 협력, 연대를 인식하게 된 것이다.
서강대에 '아트앤테크놀로지'라는 전공이 있다. 10년이 됐는데, 융합 학문으로 국내에서 처음 시도했다. 돌이켜보니 가장 잘한 학문이고, 자랑할만한 전공이라고 생각한다. 예술적 재능, 기술적 재능에 잠재력 있는 학생, 이른바 '끼 있는 학생'이 오고, 교수도 학과와 전공간 다양하게 연결할 수 있었다.
이처럼 학문간 융합이 중요하다. 학생도 부전공으로 하던 것을 확장해 연계전공, 제2 전공, 복수전공으로 하고 있다. 내년부터 교수에게 제2 전공 소속제라고, 교내 겸직제로 확대한다. 자기 전공 이외에 다른 전공도 겸임하도록 했다. 창의적 연구활동, 실용적 연구활동을 같이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경영학 교수가 인공지능(AI)에 관심을 두고 연구하고, 컴퓨터공학과 교수와 교류를 하다 보면 양쪽에 소속을 둘 수 있다. 업적은 경영학과 컴퓨터공학 양쪽에서 모두 인정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물리적 결합만이 아니라 화학적 결합이 가능하게 했다. 학생도 다전공을 하는데, 교수도 일종의 복수전공을 하게 된 것이다.
-지식을 배우는 방법도 바뀌는 건가.
▲우리 세대는 이것 다음에 저것을 차례대로 배우는 선수과목이란 개념이 있었다. 기존 학문 세대가 가진 생각이다. 주입식 교육 방식이다. 지금은 온라인에서 얼마든지 자유롭게 배울 수 있다. 유튜브가 대표적이다. 학생은 실제로 뭐든 해보면서 스스로 익히고 있다. 교과과정도 재구조화가 필요하다.
코로나19 때문에 당면한 어려움을 해결하려고 온라인 비대면 교육을 했다. 처음에는 학교가 우왕좌왕했다. 4학기째가 되니 온라인 동영상으로 배우는 것이 자리를 잡았다. 연세가 많은 교수도 빠른 속도로 온라인 실시간 강의에 적응하고, 교육의 질도 염려했던 것보다 나쁘지 않았다. 학생도 시간을 절약해 효과적으로 공부할 수 있는 장점도 있다.
-뉴 노멀이 만들어졌다.
▲코로나19가 끝나도 온라인 강의를 확대할 생각이다. 기초, 대형 주요 과목은 양질의 온라인 콘텐츠를 제작한다. 거기서 비축된 교수의 강의 재원을 보다 전문적이고 사회에 필요한 교과목 개발에 투입할 것이다. 코로나19가 아니었으면 이런 방식에 거부반응이 있었을 텐데, 교수와 학생의 수용성이 생겼다.
어떤 수업은 비대면 방식이 더 좋다. 온라인 코딩 수업에선 학생이 코딩하는 화면을 교수가 개별적으로 확인하고 지도할 수 있다. 예전에는 교수가 일일이 자리를 옮겨다니며 확인하고 시간이 많이 소요됐다. 교수도 진화했다. 학생에게도 학습효과를 높일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 수업 기록이 남아 반복 학습을 할 수 있다고 좋아한다.
교육부에서도 비대면 수업에 학점 인정을 해주는 방향으로 가고 있고, 서강대는 좀 더 빨리 방향을 이동하려고 한다. 대면 수업과 비대면 수업에 맞는 강의를 내부적으로 정리하고 있다.
대학이 현실에 응답하면서 나아가야 할 방향이라고 생각한다. 빨리 결정해 능동적이고 창의적으로 대응하는 방식으로 가야 한다. 학생이 공부할 수 있는 환경에 자유롭게 생각하고 연구하고 모색하는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
-언제부터 이런 생각을 했나.
▲강의할 때 항상 학생에게 프로젝트를 하고 그룹 보고서를 제출하도록 했다. 서강대가 산학협력선도대학육성(링크·LIINC)사업을 하면서 캡스톤 디자인을 했다. 일종의 기업가적·사업가적 문제를 스스로 시도하고 응용해 결과물을 제출하는 것이다. 링크사업 1단계부터 가장 잘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공계뿐만 아니라 인문·사회까지 확장했다. 학생이 주입식 교육을 받을 때보다 실제 생활에 적용해보려는 노하우가 생기고 창의적 생각을 많이 하게 됐다. 스스로 문제를 찾고 해결하는 과정에서 학생이 배움에 대한 방법이 바뀌는 것을 보았다.
-연구에도 변화가 있을지 궁금하다.
▲이른바 교육 중심 대학이냐, 연구 중심 대학이냐 이런 프레임은 잘못됐다고 생각한다. 대학 본연의 역할은 학문적 연구를 통해 교육이 이뤄지는 것이다. 연구를 배제한 대학 교육이 얼마나 힘이 있겠는가. 대학은 인간 사회 발전에 이바지하는 연구를 잘 지원해야 하고, 이는 교육과도 연결된다. 그동안 교육 중심 대학이라고 강조하며 학교가 세속적 랭킹에서 떨어지는 결과가 나왔다. 비전 2030은 구성원에게 공감하고 같이 추진하자고 성과에 대한 구체적 목표를 제시한 것이다. 이미 대형 연구센터를 잇달아 유치하고, 산학협력을 통해 학생에게 장학금을 지급하는 사례도 있다.
순위는 성과의 결과일 뿐이다. 목표로 두고 가는 교수는 지원하고 교육환경을 만들겠다는 의미다. 그런 노력을 지원하면 학교에서 나오는 성과를 사회에 자연스럽게 확산할 수 있다. 대학의 ESG(환경, 사회적책임, 지배구조)도 마찬가지다. 환경을 생각하고 사회를 생각하는 노력이 자연스럽게 성과로 공유할 수 있다. 학문과 사회는 수직적 관계가 아니라 수평적 관계다.
-서강대가 메타버스 전문대학원을 만들었다.
▲학교 캠퍼스도 물리적 공간보다 디지털 공간이 중요해졌다. 온·오프라인에서 원활한 교육과 실용적 연구를 하기 위해서는 미래 특화산업에 대한 연구와 교육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앞으로 산업구조를 보면 메타버스를 떠나 존재할 수 없다. 가장 중요한 인력과 기획력 부족이 예상돼 전문대학원을 만들었다. AI, 블록체인, 메타버스 등 학교에 미래를 내다보는 교수가 여러 명 있다. 또, 학교가 이런 일을 장려하니까 교수도 적극적으로 움직였다. 로드맵을 만들고, 메타버스 기업이 손을 내밀고 추진위원회가 구성됐다.
메타버스 전문대학원 교육과정을 만드는 데 기존에 2년 걸리던 것을 한 달 만에 만들었다. 메타버스 전문대학원 신입생 경쟁률이 6대1을 기록했다. 상위 대학 출신이 대거 지원했다. 회사에서 직원을 보내겠다는 연락도 왔다. 지원자 규모도 중요하지만, 학생 퀄리티도 중요하다. 학생의 수용성이 대단히 높다. 기성세대나 기성산업이 보는 것과 달리 세상과 사회가 빨리 변화한다고 보고 있다.
-메타버스 대학은 이벤트성이 되는 것은 아닌가.
▲단순 이벤트를 하거나 강의만 하는 수준을 준비하는 게 아니다. 대학을 메타버스화 하기 위한 플랫폼을 개발하고 준비하고 있다. 메타버스를 사이버공간의 확장된 개념이라고 이해하면, 그게 뭐가 급한 일이냐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사이버공간과 현실 세계는 연계성이 약하지만, 메타버스는 현실 세계와 연계성이 매우 강력하다. 5G 통신 환경이 구축돼야 하고, 엔터테인먼트적인 것과 교육적인 것 모두 필요하다.
교육도 리디자인이 필요하다. 학사만 연결하거나 사이버공간에 올려놓는 수준으로는 안 된다. 제대로 돌아가고 학제도 새로 만들어져야 한다. 메타버스 대학 청사진을 4~5년으로 보고, 단계적으로 만들어가고 있다.
메타버스 플랫폼을 만들어 서강대만 활용하려는 게 아니다. 세계 예수회 대학이 2년제, 4년제 모두 합쳐 400여개가 된다. 서강대가 잘 만들면 여러 대학이 참여하고, 채널을 열어주는 방식도 가능하다. 대학의 사회 참여 뿐만 아니라 글로벌화에도 일조할 가능성이 충분하다. 대학 자체만의 힘으로는 힘들고 기업과 협력이 필요하다.
-변화, 혁신에 의지가 강해 보인다. 창업은 어떻게 지원하고 있나.
▲스마일게이트 창업자인 권혁빈 스마일게이트 희망스튜디오 이사장이 서강대 발전위원장을 맡아 조언과 지원을 해주고 있다. 권 이사장이 창업 초기에 학교에 도움을 받았다고 기억하고, 아트앤테크놀로지 전공을 만들 때 많은 지원을 해주기도 했다. 남궁훈 카카오게임즈 대표도 학생 동아리 활동 지원을 해줬다. 학교 발전을 위해서는 실제 현장에서 기업을 운영하고 성공한 분들이 학생들의 도전을 격려하고 지원해주는 것이 필요하다.
실패를 하더라도 도전해보는 것이 학과 교육만으로 이뤄지는 게 아니다. 서강대는 실사구시를 중요시하고, 예수회에도 실용·응용학문에 대한 교육을 역사적으로 중요하게 여겼다. 앞으로 교수, 학생, 졸업생 창업을 체계적으로 지원해주는 시스템을 강화하려고 한다.
서강대와 스마일게이트에서 지원하는 오렌지플래닛 창업재단이 손잡은 것도 그 연장선이다. 창업 프로그램을 만들어 지방대와 전문대에도 공유할 수 있는 확산형으로 만들 계획이다.
'샌드박스'가 필요하다. 놀이터에서는 넘어져도 모래바닥 덕분에 크게 다치지 않는다. 도전하고 실패해도 많이 다치지 않는 환경이 필요하다. 학교는 학생에게 그런 도움을 줘야하고, 오렌지플래닛과 같이 해볼 계획이다.
○…심종혁 서강대 총장은
심종혁 서강대 총장은 1974년 서강대 수학과에 입학, 물리학을 복수전공했다. 서강대 대학원에서 물리학 석사를 마치고 미국 웨스톤 신학대학원에서 신학·사목학 석사, 이탈리아 그레고리오대학교에서 교의신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1992년부터 서강대 교수로 부임해 총무처장, 기획처장, 대외협력처장, 도서관장, 교학부총장, 대학원장 등을 두루 역임하며, 2021년 2월 1일 서강대 제16대 총장으로 취임했다. 심 총장은 수학, 물리학, 종교학, 신학 등을 두루 연구하고 인문·자연계열을 넘나드는 융합적 사고의 지식인이다.
정리=김명희기자 noprint@etnews.com, 사진=이동근기자 foto@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