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리사 특허소송대리 허용 개정] "법률 소비자 관점에서...세계 추세도 변리사 참여 허용"

기술패권 시대, 지식재산(IP)이 국가 경쟁력을 좌우한다. 우리나라는 세계 특허 출원 4위 IP 강국이지만, 양적 성장에서 탈피해 질적 제고로 전환해야 한다는 주문도 적지 않다. 기업은 물론 정부도 IP 질적 제고에 주력하지만 '지식 강국 대한민국'으로 도약하기 위해 극복해야 할 문제가 산적해 있다. 특허침해소송에서 변리사의 소송대리 문제는 20년 이상 논란이 지속되는 해묵은 과제다. 세계 추세에 따라 변리사가 특허소송을 대리할 수 있도록 허용하자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지만 변호사 진영의 반발이 거세다. 변리사가 특허침해소송을 대리할 수 있는 근거를 담은 법률개정안이 17대 국회에서부터 21대까지 네 번 연속 발의됐지만 번번이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현재 개정안은 소관 상임위인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에 상정, 이르면 이달 내 국회에서 공청회가 열릴 예정이다. 전자신문은 공청회에 앞서 각계 전문가 의견을 경청했다.

조천권 그래비티 법무부장
조천권 그래비티 법무부장

[참석자(가나다 순)]

△ 김두규 HP프린팅코리아 법무이사

△ 류태규 한국지식재산연구원 본부장

△ 조천권 그래비티 법무부장

△ 사회=김원배 전자신문 ICT융합부 부장

◇사회(김원배 전자신문 ICT융합부장)=본격 논의에 앞서 기술 패권 시대에 특허소송 선진화와 효율성 제고가 필요한 지부터 짚고 넘어가자.

◇조천권(그래비티 법무부장)=한국을 특허 빅5 국가라 한다. 위상에 맞게 특허소송 선진화가 시급한 상황이다. 기업은 소극적 권리보호를 넘어 마케팅과 경쟁제품 퇴출을 위해 특허와 실용실안을 활용한다. IP의 용도가 확장됨에 따라 소송도 빈번해졌다.

특허 괴물 공격이 빈발하고 과거 대비 소송 규모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커졌다. 제조 기업은 앞으로 사업을 제대로 하려면 특허소송에 대응할 역량을 갖춰야 한다.

양질의 법률 서비스를 기대하는 소비자 욕구도 점차 커졌다. 로스쿨제도 도입은 법률 서비스에 대한 소비자 선택권의 강화를 보여준다. 이런 흐름을 종합하면 특허침해소송의 변리사 대리에 대한 오랜 논의를 IP 대응에 대한 소비자 만족의 관점에서 논의할 때가 됐다. 소비자 이익 개선 관점에서 변리사의 특허침해소송 대리를 허용하기 위한 사법제도 개선이 대표적 숙제다. 4차산업혁명의 대응 관점에서도 마찬가지다.

◇류태규(한국지식재산연구원 본부장)=변리사의 소송 대리 문제는 변화할 수 있는 마지막 시기라고 생각한다. 특허 소송은 장기적으로 증가 추세가 뚜렷하다. 소송 규모, 즉 피해배상금도 대형화 추세다. 대기업 중심에서 중견·중소기업 중심으로 변화하고 있다.

현재 특허 소송은 소송 기간이 길다. 대기업은 견딜 만한 자금력이 있지만 중견·중소기업은 쉽지 않다. 중견·중소기업 소송 건수가 늘고 있는 상황에서 소송 대응 부담도 커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소송이 신속하게 진행되도록 제도 개선을 고민할 시점이 됐다.

미국과 중국 간 분쟁 핵심은 지재권이다. 그만큼 지재권이 중요하게 다뤄지고 있고 분쟁도 늘어날 것이 자명하다.

법률서비스 수요자 관점에서도 생각해야 한다. 소송 대형화, 중견·중소기업 부담 확대 등 상황을 보면 저비용 고품질 법률 서비스가 제공돼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지재권 소송 참여 기업 80%가 변리사가 소송에 참여하지 못해 대응하기 어려웠다고 답변했다는 데 주목해야 한다. 변리사가 소송에 참여하지 못하고 있어 소송 기간이 길어지고 비용이 늘어난다. 이제는 정책적으로 변리사의 소송대리 허용을 고민하지 않을 수 없는 시점이다.

◇김두규(HP코리아 법무이사)=특허소송에서 다루는 기술이 굉장히 고도화되고 있다. 대기업 뿐만 아니라 중견·중소기업 소송도 마찬가지다. 특허침해 소송에 적용되는 이론도 복잡해지고 세계화하고 있다. 미국에서 어떤 이론이 등장하면 세계적으로 차용하고 퍼지는 상황이다.

변리사가 이 같은 추세에 대응하기 유리한 게 사실이다. 변호사는 다양한 소송에 대응하지만 변리사는 오로지 특허소송을 준비한다.

우리나라는 과거엔 변리사가 특허침해소송에 참여했다. 그러다가 대법원 해석 이후 참여하지 못하고 있다. 해외 사례와 정확히 반대다. 이건 굉장히 심각한 문제다. 우리만 세계 추세에 역행한다. 일본처럼 사법 체계 개혁에 보수적인 나라도 변리사의 소송대리를 허용했다.

◇사회=그렇다면 현재 특허침해소송 문제점은 무엇인가. 또 특허침해소송 제도를 개선했을 때 얻을 수 있는 효과는 무엇인가.

◇류태규=이미 특허소송에서 변호사와 변리사는 협업하고 있다. 특허소송에서 판사가 질문하고 즉답이 어려운 경우 변호사가 변리사와 상의하거나 쪽지로 내용을 받아 답변한다. 그것도 안 되면 다음 공판으로 넘어가 답변을 한다. 이게 단적인 사례다. 만약 변리사가 공동대리를 할 수 있다면 즉답을 하고 소송 시간이 짧아진다. 바꿔 말하면 변호사 단독대리 구조에선 어쩔 수 없이 소송 기간이 길어지는 경우가 많다. 이는 결국 소송 비용의 상승을 초래한다.

이 같은 구조를 개선하려는 의지가 약하다. 지식재산 빅5 국가 가운데 우리나라만 변리사의 단독 대리가 안 되는 구조라고 보면 된다. 법률 서비스 소비자만 피해를 본다.

◇김두규=또 하나 짚고 가야 할 부분이 있다. 침해 소송에 전문성을 갖고 수임하는 변호사가 전체 대비 극소수라는 점이다. 대형 로펌의 지식재산팀에서 소수 인력이 그나마 전문성을 갖고 있다. 이렇다 보니 소송 준비 90%가량을 변리사가 한다. 변호사가 변리사로부터 지식재산 관련 정보를 얻고 소송에 참여하지만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는 경우가 실제 많다.

실제 특허침해소송에 참여해보면 문제를 체감한다. 특허법원 심결 소송과 일반 법원에서 특허침해소송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비교만 해도 상황 심각성을 알 수 있다. 특허법원의 소송 기간이 일반 특허침해소송 기간 대비 훨씬 짧다.

◇조천권=기술은 정말 다양하고 어렵다. 전공자도 조금만 다른 분야 문제를 얘기하면 모르는 게 기술이다. 특허침해소송에서 변리사 대리를 금지하는 우리나라는 비효율적인 방식을 택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과연 정확한 법률 서비스를 합리적 비용으로 받으려는 소비자가 만족할지 의문이다.

신뢰성 측면에서 변호사가 소송을 대리하는 경우와 변리사가 대리하는 경우를 비교나 할 수 있을까. 소비자 만족수준을 보면 아마 비교가 안될 것이다. 기술을 모르는 변로사가 배워가며 소송을 주도하는 특허침해소송 방식은 소비자 입장에서 시간적, 경제적 비용이 너무 크다. 결국 소바자는 더 많은 시간과 비용을 들이면서도 신뢰하기 어려운 법률서비스를 강요받는 셈이다. 이 문제는 변호사 단독대리를 교수하는 사법제도 때문에 발생한다.

변호사는 변호사를 통해 판사를 설득하는 게 소송이라고 생각한다. 변리사가 법을 제대로 모르는 데 소송이 가능하냐고 지적한다. 특허침해소송은 다른 기술이 자기 기술을 침해했는지를 밝힌다. 이 작업은 자기 기술과 침해 기술의 같은점과 다른점을 따지는 게 핵심이다.

◇사회=해외 사례는 어떤가.

◇조천권=해외에서도 변리사의 특허소송 대리 여부가 쟁점이었다. 국가마다 특허소송에서 변리사 참여 범위를 다르게 설정하고 있다. 그러나 본질적으로는 대다수가 변리사의 소송 대리를 허용하고 있다.

독일과 일본은 변호사가 소송을 주도하지만 변리사가 직접 보조 진술을 하는 방식이다. 영국은 변리사가 소송을 할 수 있는 요건을 정해두고 이를 갖추면 소송을 대리할 수 있게 한다.

중국은 변리사회에서 인준을 받은 경우 소송을 대리할 수 있다. 미국은 우리나라와 직접 비교가 불가하다. 미국 특허변호사가 별도 변리사 시험에 합격해 자격을 취득한 경우다. ◇류태규=일본은 2000년 이전까지 변호사가 특허소송 대리를 하다가 사법개혁을 통해 변리사의 공동대리를 허용했다. 이후 변화가 드라마틱하다. 특허소송 기간이 2000년 이전 24개월가량 걸리다가 변호사·변리사 공동 대리 허용 이후 14개월가량으로 줄었다. 무려 10개월이 줄어든 것인데 이는 결국 소송 비용의 감소로 이어졌다. 이건 명확한 데이터다. 만약 비효율이 커졌다면 일본이 왜 현재 체계를 유지하겠나.

미국은 제도와 시장이 우리나라와 크게 다르다. 자격을 떠나 시장 선택이 매우 중요하다. 결국 승률과 전문성이 모든 걸 결정하는 시스템이 갖춰졌다. 우리나라는 아직 그렇지 못하다.

이런 상황을 감안하면 결국 일본 체계가 정합성 측면에서 가장 유사하다.

◇김두규=현재 우리나라 개정안은 일본 개정안과 유사하다. 앞서 일본이 변화를 선택했고 문제가 없다는 게 입증됐다. 미국 사례는 당장 우리나라가 도입하기 어렵다. 미국은 소송과 변호사 자격 부여 주체가 다르다. 연방과 주정부가 각기 다르게 관장하기 때문에 체계가 완전히 다르다. 유럽은 통합특허법원에서는 변리사의 대리를 허용했다. 유럽과 일본이 우리가 지향하는 모습에 가깝다.

◇사회=개정안이 그동안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이유가 무엇이라고 보나.

◇조천권=그동안 사안을 직역 다툼 관점으로만 바라 봤다.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 장·단점을 비교·분석하고 약점을 보완해 시너지를 낼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생각을 개선해야 한다. 무엇보다 법률 소비자의 만족과 선택의 확장이라는 관점에서 공동소송대리로 얻는 효용을 분석하고 이를 근거로 제도를 개선해 나가야 한다.

◇류태규=공동 소송 대리 관련 개정안이 줄곧 폐기됐다는 건 주지의 사실이다. 다수의 국회 의원이 변호사 진영 논리에 손을 들어줬다고 볼 수 있다. 변호사와 변리사의 업역 갈등이 아니라 소비자 관점에서 바라보면 결과가 달라졌을 수 있다.

중견·중소기업과 과학기술계는 특허소송 전문성, 비용 등 다양한 측면에서 변리사의 소송 대리 자격 부여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이런 목소리를 중심으로 컨센서스를 만들었다면 국회도 목소리를 무시할 수 없었을 것이다.

◇김두규=다시 말하지만 소비자 관점에서 봐야 한다. 중소기업은 대체로 이 문제에 전혀 관심이 없다. 그러나 특허소송을 겪은 중소기업은 대다수가 변리사의 소송대리 필요성을 인지한다. 기업에서 특허소송을 담당하는 사람이라면 분명 공동 대리를 원할 것이다.

현재는 변호사의 독과점 상황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공동대리를 허용하면 오히려 소수의 변호사가 아닌 다수 변호사에게 기회가 돌아갈 수 있다. 변호사 단체가 반대할 이유가 없다.

국회도 거시적으로 봐야 한다. 소수 목소리만 듣고 개정안 처리에 소극적으로 나서는 것은 공익 관점에서 옳지 않다.

최호기자 snoop@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