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금융시장에서 금융사들은 꾸준히 빅테크 플랫폼 종속 우려를 제기해왔다. 그동안 이는 디지털금융 혁신 발목을 잡는 기득권의 몽니로 여겨졌다. 하지만 빅테크 플랫폼에서 P2P 금융상품 판매를 연계했다가 문제가 발생하거나 과도한 수수료를 요구하는 사례가 발생하면서 빅테크 플랫폼에 대한 과도한 종속에 따른 문제와 금융소비자 보호 이슈가 중대한 화두로 떠올랐다.
금융권에서 빅테크 플랫폼 종속을 우려하는 가장 큰 이유는 금융상품 제조와 판매가 분리되는 '제판 분리' 현상이다. 은행·카드·보험 등이 금융상품을 기획·제조하면 빅테크 플랫폼에서 금리별, 혜택별 순위로 줄을 세우는 현상이 심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금융상품을 공급하는 금융사 판매마진이 줄어들고 더 나아가 모험상품 개발을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 될 수 있다.
지금까지는 은행 계좌개설 고객에게 추가 금융상품을 추천해 우대 금리를 제공하고 동일 금융그룹의 카드나 보험 등을 추천해 연계성을 강화하는 영업 전략을 써왔다. 우대금리와 편의성, 익숙함 때문에 여간해서 주거래 금융사를 바꾸지 않는 '집토끼'를 얼마나 많이 확보하느냐가 경쟁의 핵심이었다. 오프라인 지점 중심 영업도 안정적인 집토끼를 확보하는 중요한 수단이었다.
하지만 비대면 디지털채널 유입이 가속화하고 금융상품을 비교·분석하는 핀테크 플랫폼이 활성화하면서 나에게 유리한 상품과 거래처로 빠르게 갈아타는 현상이 심화하고 있다.
이승효 카카오페이 부사장은 “과거보다 금융서비스와 상품에 쉽게 접근할 수 있고 소비자간 정보를 빠르게 풍부하게 교류할 수 있게 된데다 금융상품 록인(Lock-in) 효과가 약해지고 있다”며 “오래 사용한 금융 플랫폼이라도 나에게 유리한 상품·서비스가 있는 곳으로 빠르게 갈아타는 '금융유목민' 현상이 빨라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한 금융권 고위 관계자는 “금융 제판분리 현상을 최대한 늦추기 위해 노력하겠지만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변화로 보인다”며 “기존 금융사를 포함해 빅테크·핀테크 플랫폼과 경쟁하기 위해 조직문화부터 시스템 구조, 상품 기획·출시 등 전 분야에 걸쳐 대대적인 DNA 혁신이 필요해졌고 금융사도 이에 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같은 변화에서 올해 가장 뜨거운 감자가 된 분야가 바로 대환대출 플랫폼이다.
빅테크·핀테크가 참여하는 대환대출 플랫폼은 플랫폼 종속 우려에 무게를 실으면 사용자 편의성이 줄어들 수 있다. 반면에 사용자 편의성을 최우선으로 하면 카카오·네이버에 이미 친숙한 사용자가 자연스럽게 빅테크 플랫폼에 모여들 가능성이 짙어 중소 핀테크가 살아남기 힘든 구조가 고착화되는 것이 문제다.
대출상품 공급과 판매가 분리되는 되는 과정에서 빅테크 기업이 금융상품의 위험인수(Risk-taking)를 고려하지 않고 단기 판매에 치우칠 가능성에 대한 우려도 크다. 빅테크가 수수료 수익에 치우치면 결국 전체 금융권의 대손비용이 증가하는 문제가 커질 수 있다.
금융당국은 지난 수년간 사실상 은산분리 원칙까지 깨고 빅테크 금융진출을 전폭적으로 지원했다. 그 덕분에 카카오는 카카오뱅크와 카카오페이를 앞세워 금융사를 위협하는 강자로 단숨에 부상했다.
네이버파이낸셜은 신용카드업 인가를 받지 않고도 후불결제를 할 수 있도록 규제 샌드박스를 적용받았다. 이는 거대 네이버 포털의 쇼핑검색 기능과 결합해 금융시장은 물론 온라인 유통시장에서 경쟁력을 한 단계 높이는 장치로 작용했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자본시장 건전성을 위해 수십년간 고수한 은산분리 원칙을 깬 만큼 금융소비자 보호에 대한 플랫폼의 책임 강화와 금융권과의 규제 형평성, 금융사도 더 혁신적인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규제 완화를 더 미뤄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핀테크 업계 일각에서는 네이버-네이버페이, 카카오톡-카카오페이 구도로 빅테크 플랫폼이 자회사 서비스만 연동해 제공하지 말고 API를 개방해 플랫폼 파워가 아닌 상품·서비스로 경쟁할 수 있는 시장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개방경제 관점에서 현행 일부 데이터 개방을 인프라 플랫폼 개방으로 확대해야 금융 전반 혁신을 이끌 수 있다는 시각이다.
중소 핀테크 업계 한 관계자는 “초대형 금융사도 빅테크에 영향을 받고 있는데 중소 핀테크는 브랜드 인지도나 플랫폼 파워가 약해 빅테크와 경쟁이 더 어려울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배옥진기자 withok@etnews.com
-
배옥진 기자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