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서는 국가와 사회를 깊이 있게 다뤄보는 비교문학 과목 개설이 안돼 공동교육과정을 들었는데, 학교다니면서 가장 잘한 일 같아요. 이과 친구들은 공동교육과정 실험을 선택해 살아있는 과학을 느낄 수 있었다고해요.”-전주 완산고 박현규 학생
“고교학점제 준비를 위해 공간 혁신 전 과정을 참여하다 공간에 대한 관심이 생겼죠. 학교 공간을 넘어 도시 공간에 대해 공부하고 싶어 도시공학과 지원했어요”-완산고 권우진 학생
2025년 고교학점제 전면 도입을 앞두고 전주 완산고는 2020년부터 고교학점제 준비를 시작했다. 선택과목을 만들고 인근 학교들과 공동교육과정을 개설했다. 올해 기준 2학년 18개 과목(24단위), 3학년 24개 과목(36단위)을 열었다. 인문·국제 분야로 진로를 희망하는 학생들을 위한 7개 교과목의 주문형 강좌도 운영 중이다. 2학년 '심화영어독해'나 '세계문제와 미래사회', 3학년 '인공지능 기초' 등이다.
고교학점제를 준비한 것은 짧은 기간이었지만 학생 만족도 향상은 두드러진다. 선택과목을 확대했지만, 모든 학생의 희망을 소화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전주에 있는 다른 학교들과 함께 선택과목을 운영하는 '공동교육과정'이 대안이 됐다. 일과시간 중에는 다른 학교로 이동이 쉽지 않기 때문에 저녁이나 주말에 공동교육과정 수업이 열린다. 학생들은 하고 싶은 과목을 듣기 때문에 주말에 멀리 있는 다른 학교까지 가서 수업을 듣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완산고에서는 10명의 학생들이 주말이면 다른 학교에 가서 공동교육과정 수업을 선택해 듣는다. 박현규 학생은 비교문학을, 또 다른 학생들은 실험과목을 선택했다. 완산고에서도 공동교육과정을 운영한다. 음악실기를 준비하는 학생들을 열었더니 인근 전주여자고, 전주솔내고, 호남제일고 등 5개 학교에서 완산고로 찾아와 총 15명이 함께 수업을 듣고 있다.
박현규 학생은 “공동교육과정에 대해 학생들이 잘 몰라서 처음에는 주저했는데 막상 듣고 보니 고등학교 생활 중 가장 잘한 일이라고 할 만큼 충분히 가치 있었다”면서 “홍보가 적극적으로 이뤄져서 긍정적 경험이 많아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완산고에 내년 입학할 학생들은 48개 과목 82단위를 선택과목으로 듣는다. 2023학년도 입학생들부터는 개방형 교육과정을 운영한다. 평가 등 제도 변화는 2025년부터 적용되지만, 학교 수업은 2023년도부터 본격적으로 고교학점제 형태로 운영되는 셈이다.
완산고 학생들의 고교학점제에 대한 기대는 공간혁신과 함께 더 높아졌다. 사용자인 학생, 학부모, 교사들의 의견을 들어 기획과 설계를 하는 것부터 완공까지 2년 넘게 걸렸다. 도서관, 라운지, 융합수업교실 등 다양한 공간을 새단장했다. 1학년때부터 공간혁신에 참여했던 권우진 학생은 이 사업에 참여하며 진로까지 바꿨다. 지리교육에 관심이 있었던 학생이 학교 공간 설계에 참여하면서 시야를 넓혀 지리와 공간을 합친 도시공학 분야로 진로를 결정했다.
고교학점제를 준비하면서 걱정도 크다. 현 대학수학능력시험에 대비하려면 선택과목을 늘려도 의미가 없다. 고3 학생 과목으로 고전읽기를 개설했는데, 셰익스피어 4대 비극을 읽고 연극하고 촬영해 보는 수업이다. 한 학년 180명 중 100명이 신청했는데, 수능 때문에 40명만 남았다.
임은주 교사는 “아이들이 스스로 어떤 수업이 나한테 도움이 되고 듣고 싶은지 알아도 당장 수능이 발목을 잡는 경우가 많다”면서 “이걸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고민이 된다”고 말했다.
학부모 정진선 씨도 “고교학점제가 되려면 수시가 확대되고 정시 축소되어야 하는데 고교학점제 홍보하기 전에 정부 시책으로 먼저 닦아야 하는 것 아닌가”라면서 “진학·취직할때 고교학점제가 제대로 될 수 있게, 다른 정책들도 고민을 했으면 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공강 시간을 보다 잘 활용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도 과제다. 신익수 완산고 교장은 “고교학점제가 본격적으로 시행되면 1~2시간 공강이 발생할 수 있는데 도서관을 가장 많이 찾을 것 같다”면서 “학생들의 자율학습을 돕는 사서 교사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전주=문보경기자 okmu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