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기고]디지털 탄소중립의 첫걸음

전성배 정보통신기획평가원(IITP) 원장.
전성배 정보통신기획평가원(IITP) 원장.

오래전에 있은 TED 강연회에서 인상 깊은 영상을 본 적이 있다. 강연자가 어릴 때 처음 세탁기가 들어오던 날 할머니가 온종일 세탁기 앞에 앉아서 구경하던 일화를 시작으로 전자제품이 인류를 얼마나 편리하게 해 줬는지를 설명한다. 이어 전 세계인 가운데 경제력에 따라 세탁기로 상징되는 전자제품 이용 가능 인구와 불가능 인구 비중을 보여 준다. 마지막으로 경제성장에 따라 에너지 소비가 급증할 것이기 때문에 선진국부터 친환경 에너지 활용에 앞장서야 함을 강조했다.

탄소중립과 정보통신 관계에서도 이 메시지가 유효하다고 생각한다. 유엔 산하 '기후변동에 관한 정부간 패널'(IPCC)은 최근 지구온난화가 인간 활동으로 인한 것임을 명확히 하고 위기 상황을 경고했다. 발표에 따르면 지구 평균 온도가 산업화 이전 대비 약 1도 상승했으며, 2100년까지 온도 상승 폭을 1.5도 미만으로 제한하기 위해서는 2030년까지 2010년 대비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최소 45% 감축하고 2050년까지는 순배출량 제로를 달성할 필요가 있다. 이에 따라 세계 각국은 에너지, 산업, 수송 등 분야별로 다양한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정보통신 분야는 상대적으로 탄소중립 실현을 위한 모범생 대접을 받아 왔다. 대면회의를 영상회의로 대체하고, 실시간 교통정보를 반영한 내비게이션이 최단 이동 경로를 제공해 차량 이동을 줄이고, 전력 수급 실시간 예측으로 전력 생산의 효율성을 높이고 신재생에너지 활용을 확대하는 등 정보통신기술(ICT)이 에너지 절감에 기여하는 바가 크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는 정보통신 분야의 에너지 효율화를 통한 탄소 저감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첫째 통신 데이터 급증에 따라 에너지 소비가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 세계 전력 소비 가운데 정보통신 비중이 2019년 11%에서 2030년 21%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 가운데 약 절반이 데이터센터에서 소모되는 전력이다. 통신망 역시 5세대(5G) 이동통신 도입으로 기지국이 더 많아지고 전력 소모가 크게 증가하고 있다.

두 번째 개인적으로 더 중요하게 생각되는 부분이다. 전자제품이 인류 삶을 바꾸었듯 정보통신 분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더 빠르게 인류 삶에 확산할 것이다. 서비스·디바이스·부품 가리지 않고 거의 모든 영역에 반도체 칩과 정보통신 부품이 내장되고, 인공지능(AI) 기술이 적용될 것이다. 최근 반도체 부족으로 자동차 출고가 지연되는 사례에서 보듯 과거 자동차가 기계장치였다면 현재 자동차는 수많은 전자부품이 추가된 정보통신 디바이스라 할 수 있을 정도다. 최초 컴퓨터인 에니악(ENIAC)이 건물 크기이던 것과 현재 대부분 사람이 주머니에 스마트폰을 넣고 다니는 상황을 비교하면 과장되게 말해서 언젠가는 집집마다 데이터센터를 가지게 될지도 모른다. 정보통신 기기, 부품과 기술 사용이 얼마나 기하급수적으로 확대될지 가늠할 수 없다.

정부는 부처 간 협력으로 디지털 기반 탄소중립도시 기술 개발과 실증 사업기획을 추진, 예비타당성 조사를 준비하고 있다. 도시·교통·에너지·환경뿐만 아니라 정보통신 분야 에너지 효율을 높이기 위한 기술을 개발하고, 모든 영역을 상호 연결해서 탄소 발생을 모니터링하고 저감하기 위한 모델 구축이 핵심 내용이다. 이제 시작에 불과하지만 디지털 대전환 과정에서 ICT 중심 탄소중립 노력에 매우 중요한 첫걸음이 될 것이다.

소개한 강연 말미에 강연자는 세탁기 안에서 어린이책이 나오는 퍼포먼스를 통해 세탁기가 어머니에게 아이와 함께 책을 읽는 시간을 준 것처럼 인류의 편리한 생활을 위해 선진국의 친환경 에너지 사용 노력이 중요함을 강조했다. 마찬가지로 디지털 대전환은 인류의 풍요롭고 편리한 생활을 위해 중요하지만 정보통신 분야 에너지 소비와 탄소 배출 저감을 위해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 준비되지 않은 디지털 대전환은 축복이 아니라 재앙일 수 있기 때문에 정보통신 분야 최고 강국인 우리가 앞장서야 한다.

전성배 정보통신기획평가원(IITP) 원장 esbjun@iitp.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