팻 겔싱어 취임 1년 '인텔이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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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텔이 반도체 패권을 쥐기 위한 전방위 공세를 펼친다. 반도체 구조(아키텍처)부터 공정 기술, 제조까지 반도체 기업 핵심 역량을 모두 탈바꿈했다. 반도체 공급 부족으로 세계 공급망이 흔들리는 상황에서 기회를 찾은 인텔이 적극적 공세로 '기술의 인텔'이라는 이명을 되찾으려는 시도로 읽힌다. 모두 팻 겔싱어 인텔 CEO가 취임한지 1년 동안의 변화다.

인텔의 내외부적으로 변화가 글로벌 반도체 시장 판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이목이 집중된다. 반도체 아키텍처와 공정 신기술을 잇따라 공개하고 전례없는 공격 투자로 사업 영역을 넓혀가는 인텔 행보에 반도체 경쟁 구도가 뒤바뀔지 주목된다.

팻 겔싱어 인텔 CEO
팻 겔싱어 인텔 CEO

겔싱어 CEO는 이달 초 미국 오레곤에서 열린 '오레곤 비즈니스 플랜 연례 리더십 서밋'에서 반도체 제조와 공급망 중요성을 다시 한번 강조했다. 그는 “수만달러 새차가 2달러짜리 칩이 없어서 완성되지 못하는 상황”이라면서 “반도체는 현재 자동차 부품의 4~5%를 차지하지만 2030년에는 전기차 부품 20%를 차지하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반도체 공급 부족으로 시장 수요는 부쩍 늘었다. 겔싱어 CEO는 이런 현상이 장기화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모든 종류의 제품이 반도체에 의존하는 현상이 심화하기 때문이다. 이는 인텔에게는 기회다. 겔싱어 CEO가 반도체 아키텍처·공정·제조 로드맵에 새바람을 불어넣는 이유다.

◇10년만에 개발자 포럼 재개…차세대 아키텍처 공개

지난 10월 인텔은 '인텔 이노베이션' 행사를 열었다. 개발자 중심 혁신 모델 발굴과 커뮤니티 지원을 논의하는 자리로, 인텔이 개발자 포럼을 연 건 10년만이다. 겔싱어 CEO는 초기 인텔 개발자 포럼을 만든 사람 중 한명이다. 개발자 중심주의가 부활한 것도 겔싱어 CEO 역할이 컸다. 그는 이 자리에서 “개발자는 반도체를 토대로 하는 디지털 세계의 진정한 슈퍼 히어로”라면서 “인텔은 실리콘(반도체)의 무한한 가능성을 열기 위해 주기율표의 모든 원소를 활용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인텔 12세대 코어(코드명 앨더 레이크)
인텔 12세대 코어(코드명 앨더 레이크)

개발자는 인텔 기술 혁신의 주역이다. 겔싱어 CEO는 개발자 지원을 통해 인텔 기술력을 한층 도약시키고자 했다. 그의 취지는 인텔 아키텍처 데이에서 여실없이 나타났다. 9월 인텔은 저전력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을 운용할 '에피션트' 코어와 고성능 두뇌 역할을 맡은 '퍼포먼스' 코어를 탑재한 첫 하이브리드 아키텍처 인텔 '앨더 레이크'를 공개했다. 에피션트와 퍼포먼스 코어가 원활하게 연동하기 위한 인텔 독자 기술인 스레드 디렉트도 처음 선보였다. 이러한 혁신 기술은 11월 출시된 '인텔 12세대 코어(코드명 앨더레이크'로 구현되며 PC용 중앙처리장치) 강자의 귀환을 알렸다. 이전 세대와 견줘 대폭적인 성능 향상을 보였다. 각종 리뷰어들의 '인텔이 돌아왔다(Intel is Back)'라는 평가를 이끌어냈다.

인텔은 내년 상반기 서버용 CPU인 코드명 '사파이어 래피즈'도 출시 예정이다. 서버 신규 수요를 이끌어내고 메모리 시장 호황을 견인할 것이란 기대감이 크다.

◇나노 시대의 종언…인텔 '옹스트롬' 시대 열다.

올 한해 겔싱어 CEO의 '깜짝 발표' 중 단연 돋보이는 건 옹스트롬이다. 지금까지 반도체 공정 기술은 나노미터로 대표됐다. 그러나 공정 미세화가 가속화하면서 점차 나노미터로는 첨단 공정 기술을 대변하기 어려워졌다. 이에 인텔이 꺼내든 승부수가 0.1나노미터를 뜻하는 옹스트롬이다. 인텔이 올초 파운드리 시장 재진입을 선언하며 경쟁사와의 차별화 전략으로 내세운 카드이기도 하다.

인텔은 20A라는 새로운 명칭으로 2024년 업계 2나노 공정에 해당하는 첨단 공정 기술을 선보인다. 그전까지 인텔7, 인텔4, 인텔3이라는 초미세공정 로드맵을 제시했다. 인텔이 10나노 이후 첨단 공정 전환이 더디다는 업계 우려를 일축한 것이다.

장밋빛 미래라는 지적도 있었다. 그러나 인텔은 기술 신뢰를 바탕으로 고객사도 확보했다. 퀄컴이 인텔 파운드리의 초미세공정을 활용해 2024년부터 칩을 양산할 계획이다. 인텔은 2025년 18옹스트롬을 본격화하기로 했다.

인텔 차세대 반도체 트랜지스터 구조 리본펫 개념도
인텔 차세대 반도체 트랜지스터 구조 리본펫 개념도

이같은 공격적 로드맵은 10년만에 변화한 인텔 트랜지스터 구조에 기인한다. 지난 10년동안 반도체 업계를 주도했던 핀펫 공정도 인텔이 최초 적용했다. 인텔은 옹스트롬 공정 시대에 차세대 반도체 트랜지스터 구조인 게이트올어라운드(GAA) 방식의 '리본펫'을 적용한다. 업계 최초 반도체 후면 전력 공급 기술인 '파워비아'도 공개하며 반도체 공정 첨단 기술 주도권 확보를 예고했다.

인텔은 차세대 패캐징 기술인 EMIB와 함께 '포베로스→포베로스 옴니→포베로스 다이렉트'로 가는 패키징 로드맵도 설정했다. 아마존웹서비스(AWS)가 인텔 첨단 패키징 솔루션의 첫 고객이다.

◇파운드리·패키징 대규모 투자로 '기술의 인텔' 현실화

겔싱어 CEO가 제시한 종합반도체기업 비전(IDM 2.0) 청사진이 현실화하려면 대규모 투자가 선행돼야 한다. 그는 공식 취임 이후 200억달러를 미국 반도체 공장(팹) 설립에 쏟아붓기로 하며 투자 행보를 본격화했다. 미국뿐 아니라 유럽에도 파운드리 역량을 키우기 위해 투자를 진행 중이다.

인텔 반도체 부활의 또 다른 날개인 패키징 투자도 공격적이다. 인텔은 5월 미국 뉴멕시코주에 반도체 후공정 설비에 구축을 위해 35억달러 투자를 발표했다. 신규 투자 후보지를 물색하기 위해 다방면으로 접근 중이다. 겔싱어 CEO가 직접 해외 순방에 나서 각국 리더들과 반도체 제조 거점 논의와 투자 지원을 이끌어내고 있다.

인텔 미국 애리조나 오코틸로 팹
인텔 미국 애리조나 오코틸로 팹

반도체 시장 특성상 인텔의 투자는 2~3년 뒤 가시적 성과를 이뤄낼 것으로 보인다. 겔싱어 CEO의 IDM 2.0 결실을 맺는 순간까지 가야할 길은 멀지만 그만큼 시장 파급력도 만만치 않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기술 왕좌를 되찾으려는 인텔 행보에 업계 이목이 집중되는 배경이다.

<팻 겔싱어 인텔 CEO 주요 발언>

팻 겔싱어 취임 1년 '인텔이 돌아왔다'


권동준기자 djkwo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