찜통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1967년 7월 25일. 김기형 과학기술처 장관이 기자회견을 열고 “박정희 대통령을 설립자로 해서 과학기술자 후생복지 사업을 하는 재단법인 과학기술후원회(현 한국과학창의재단)를 설립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김기형 장관은 “초대 이사장으로는 윤일선 박사를 내정했다”고 밝혔다. 윤일선 박사는 한국 최초의 병리학자로, 서울대 총장과 원자력원 초대 원장을 역임했다. 윤일선 박사는 “후원회 설립 재원은 설립자의 출연금, 정부 보조금, 일반 기부금 등으로 마련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김기형 장관은 이보다 앞서 후원회 설립 방안을 박정희 대통령에게 보고, 재가받았다. 과학기술 진흥을 최우선 국정 과제로 추진하던 박정희 대통령은 연구회 설립에 찬성했다. 박정희 대통령은 나아가 개인 자격으로 후원회 설립자로 나섰고, 재단 출연금으로 100만원을 기부했다. 박정희 대통령이 재단 설립자로 나선 일은 한국과학기술연구소에 이어 두 번째였다.
박정희 대통령이 설립자로 나서자 후원회 설립은 속도를 냈다. 과학기술처는 우선 후원회 정관과 기본사업 계획 등 설립 작업에 착수했다. 문영철 과학기술처 진흥국장이 실무 책임을 맡았다. 그해 9월 6일 설립자인 박정희 대통령은 원고지 3장 분량의 과학기술후원회 설립 취지문을 작성해 김기형 장관에서 내려보냈다. 박정희 대통령은 취지문에서 “당면 과제는 하루속히 자립 경제 건설과 조국 근대화를 이룩하는 데 있으며, 과학기술 진흥은 바로 경제자립과 조국 근대화를 촉진하고 선도하는 발전 요체”라면서 “과학기술은 국가 산업과 경제 발전을 촉진하고 치열한 국제경쟁 속에서 민족의 역량을 과시할 수 있는 국력의 척도”라고 강조했다.
박정희 대통령은 “하루속히 과학기술을 진흥하려면 과학기술자를 우대하고 과학기술이 우리 생활의 구석구석까지 스며드는 사회 풍토를 조성해야 한다”면서 “과학기술 진흥에 생애를 바친 과학기술자의 후생 복지를 도모해 국가 발전과 과학기술 진흥에 기여할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목적”이라고 밝혔다.
후원회는 같은 해 11월 29일 오전 11시 과학기술처 장관실에서 발기인 총회를 개최했다. 당시는 후원회 출범 이전이어서 과학기술처가 실무를 담당했다. 이 자리에는 김기형 과학기술처 장관과 이재철 차관, 신동식 청와대 경제담당 비서관, 이사장 내정자인 윤일선 박사, 박두병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홍재선 한국경제인협회장, 김세련 대한금융단 대표, 이활 한국무역협회장, 여상원 중소기업중앙회장 등 10명이 참석했다.
“지금부터 재단법인 과학기술후원회 발기인 총회를 개최하겠습니다.” 문영철 진흥국장의 개회 선언에 이어 김기형 장관이 인사말을 했다. “설립 취지문을 통해 설립 목적 등에 관해 잘 아실 것으로 생각합니다. 곧바로 안건 심의를 시작하겠습니다.” 총회는 설립 추진 경과 보고와 후원회 정관, 사업 계획서 등에 대한 검토 순으로 진행됐다. 과학기술처는 12월 21일 후원회가 신청한 재단법인 설립을 허가(민법 제32조)했다. 후원회는 12월 30일 법원에 설립 등기를 끝냈다.
이듬해인 1968년 3월 8일 후원회는 과학기술처 장관실에서 제1회 이사회를 개최했다. 이사회에서는 이사장과 이사 선임, 후원회의 당면 과제, 사업 계획과 실천 방안 등을 논의했다. 이사회는 그동안 후원회 설립을 주도해 온 윤일선 박사를 이사장으로 정식 선임하고 이사에 이재철 과학기술처 차관, 신동식 청와대 경제담당 비서관, 이활 한국무역협회장, 여상원 중소기업중앙회장, 구자경 럭키화학 사장 등 10명을 선임했다. 청와대 비서관을 후원회 이사로 포함한 일은 박정희 대통령의 과학기술에 대한 높은 관심도를 반영한 일이었다. 실제 부처 간 이견이 발생하면 청와대가 중재자로 나서서 조정했다.
후원회는 △과학기술자 후생복지 증진 △과학기술 진흥 △국민 과학화 계몽 △국민 생활 향상 등에 설립 목적을 두기로 했다. 이를 위해 과학기술자의 연구 활동을 지원하고, 국민 생활 과학화와 과학기술 진흥을 위한 국민 활동을 전개키로 했다. 1968년도 주요 사업으로 △과학기술자 실태 파악과 이들에 대한 지원 △정년 퇴직 과학기술자의 과학기술 분야 활동과 후생복지 지원 △과학기술자와 산업계 협력 강화 △저술과 방송, 강연을 통해 국민 과학화 계몽 운동 전개 △과학기술 개발 활동 지원 △과학기술자 간 유대 강화와 과학기술회관의 조속한 건립 지원 등으로 정했다.
후원회 임원은 박정희 대통령의 서명이 들어간 설립 취지문을 들고 기부금 모금 활동을 했다. 취지문을 본 기업은 기부금 행렬에 동참했다. 과학기술처도 후원회 수익 창출 방안의 하나로 전국 이공계 대학과 연구소 등에서 사용하는 시약을 후원회가 독점 수입해서 공급할 수 있도록 조치했다. 후원회는 3월 10일 사무실을 서울 상업은행 본점 12층으로 이전하고 사업을 시작했다. 후원회는 1968년 7월부터 유공 과학기술자를 선정해 월 2만원씩의 지원금을 지급했다. 지원금을 받은 유공 과학자는 △정태현(식물분류학) △방신영(영양학) △윤일중(전기공학) △김명선(생물학) △이덕봉(식물학) △이희준(토목공학) △김두종(의사학) △박동길(지질학) △정문기(어류학) 등 9명이었다.
과학기술자 지원 사업과 생활 과학화 보급, 국제 협력교류 사업, 도서출판 사업 등도 추진했다. 또 과학자 순회 강연, 주부들을 위한 생활 속의 과학강좌 등을 열었다. 1973년 1월 29일 후원회는 정부와 협의해 조직과 명칭을 전면 개편하고 한국과학기술진흥재단으로 재탄생했다. 새 이사장으로는 김용완 전국경제인연합회장을 선출했다.
이사회는 당시 13명이던 이사를 34명으로 대폭 늘렸다. 부이사장은 김입삼 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과 성좌경 인하대 공대학장을 선임했다. 이사로는 이창석 과학기술처 차관과 오원철 청와대 경제2수석비서관을 비롯해 이병철 삼성전자 사장, 정주영 현대자동차 사장, 구자경 럭키화학 사장, 조중훈 대한항공 사장 등 당시 내로라하는 경제계 인사들을 선임했다. 이런 이사진 구성은 후원회 기금 확충을 염두에 둔 인사였다.
전열을 정비한 재단은 과학기술자의 복지 증진과 과학기술 진흥 풍토 조성, 시험 연구용 시약개발 등 사업을 추진했다. 과학 대중화 운동도 전개했다. 과학기술 전문가를 초청해 전국 기업체를 순회하며 기술개발 강좌와 발명기술 설명회 등을 개최하고, 신문·방송·영화 등 미디어를 통해 과학기술 지식 보급에 앞장섰다. 과학기술 풍토 조성을 위한 기초 조사와 청소년 과학 공작품 전시, 과학기술 문고 발간 확대 등 다양한 사업을 전개했다.
1996년 3월 5일 기술진흥재단은 임시 이사회를 열고 한국과학문화재단으로 기구를 확대 개편했다. 새 이사장에는 조규하 전국경제인엽합회 상근 부회장이 선출됐다. 재단은 전국 학생 과학책 읽기, 전국 청소년과학 경진대회를 개최했다. 1997년부터는 매년 대한민국 과학축제를 열었다. 또 연구 성과 전시와 과학교육 문화체험 프로그램 중심으로 운영했다.
2008년 9월 8일 한국과학문화재단은 과학문화 창달과 창의적인 인재 양성, 융합문화 사업까지 포괄하는 전문기관으로 확대 개편돼 한국과학창의재단으로 출범했다. 재단은 서울 강남구 대치동 재단 강당에서 과학기술계 인사 5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현판식을 갖고 업무를 시작했다. 현판식에는 정윤 한국과학창의재단 이사장과 김기형 전 과학기술처 장관, 김시중 전 과학기술처 장관, 전의진 전 한국과학문화재단 이사장, 나도선 전 한국과학문화재단 이사장, 금동화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원장, 이현구 한국과학기술한림원장 등이 참석했다.
한국과학창의재단 출범은 정부 조직 개편에 따른 후속 조치였다. 재단은 창의적 인재 양성과 과학기술 문화 창달을 위한 국제 청소년 과학창의대전과 과학창의 연례콘퍼런스, 창의체험페스티벌 개최, 과천과학관에서 무한상상실 등을 운영했다. 또 대한민국 과학기술창작대전과 메이커 페스티벌 등을 열었다. 2019년에는 서울 도심에서 국내 최초로 도심형 과학축제를 개최했다.
한국과학창의재단은 2021년으로 창립 54주년을 맞았다. 한국과학창의재단 현 이사장은 조율래 전 교육과학기술부 차관이다. 조율래 이사장은 2021년 1월 13일 취임했다. 역대 이사장 가운데 초대 이사장인 윤일선 박사가 1·2대와 8~11대까지 재임, 최장수 기록 보유자다. 국민 과학화 운동을 전개한 김용완 회장은 3대 연임했다. 이정림 전 전국경제인협회장과 정주영 전 현대그룹회장, 김기형 초대 과학기술처 장관, 이상희·김시중 전 과학기술처 장관, 최영환·정윤 전 과학기술처 차관, 전의진 전 과학기술부 정책실장 등이 이사장으로 일했다.
이현덕 대기자 hdlee@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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