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주요국 중심으로 인공지능(AI) 기술 경쟁이 치열하다. 우리나라는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과거 한국은 빠른 추격자(fast follower) 전략을 통해 정보화에 성공했지만 선두주자(first mover)로 치고 나가지 못했다는 점에서 아쉽다. 정보통신기술(ICT) 패러다임이 정보화에서 지능화로 전환되면서 승자독식 경기인 AI 경쟁이 치열하다. 이에 따라 AI 기술을 바탕으로 하는 지능화는 처음부터 추격자가 아니라 선도자 전략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선도자와 추격자가 갖는 사고방식의 가장 큰 차이점은 무엇일까. 바로 스스로 미래를 설계하는 '상상력'(imagination)과 나만의 방법으로 이를 실현하는 '추상력'(abstraction)이다. 그런데 누구나 할 수 있는 일반적인 상상만으로 글로벌 선도자가 될 수는 없다. 내가 꿈꾸는 미래와 이를 실현하는 방법이 현재의 패러다임을 변화시키는 수준의 깊이를 가져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미래를 예측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미래를 창조하는 것”이라는 피터 드러커의 명언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미래를 창조하기 위해서는 통상적인 사고의 틀을 벗어난 상상이 필요하다. 다만 실현 가능성이 없는 공상을 하기보다는 상상을 현실로 만드는 지적 과정이 뒷받침돼야 한다. 상상은 마음에 떠오르는 심상을 나만의 새로운 형상으로 재구성하는 정신적 활동으로, 실현될 가망성이 없는 것을 자의적으로 그리는 공상과는 구별된다. 좋은 상상은 현재의 작은 실마리에서 시작해 미래 패러다임을 바꿀 정도로 영향력 있는 가상 형상을 만드는 사고실험이다.
필자는 패러다임 전환에 초점을 둔 상상력과 추상력을 '전환적 사고'라 말한다. 전환적 사고 체계 안에서 상상력과 추상력은 연결돼 있다. 패러다임이 바뀐 미래를 상상하는 사람은 현 추세대로 맞이할 미래를 예측하는 사람과 큰 차이가 있다. 두 사람의 차이는 자신이 원하는 미래를 적극적으로 만들어 가는지, 다가올 미래를 수동적으로 관망하는지에 있다. 상상력을 통해 미래를 어떤 방향으로 바꾸고 싶은지 정했다면 추상력을 발휘해 미래를 실현할 방법을 구체화해야 한다. 복잡한 문제의 핵심을 개념으로 표현하는 추상력을 통해 내가 상상한 것을 수학이나 공학적으로 설계하고 구현하는 것이다.
앞으로는 AI 기술과 AI 서비스 공진화가 계속되면서 개인, 사회, 산업, 공공 등 모든 분야에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패러다임이 변화하고 있는 시기에 전환적 사고는 위력이 강력하면서 선도자만이 사용할 수 있는 '토르의 망치'가 돼 줄 것이다. 여기서 토르의 망치는 상상력과 추상력을 통해 패러다임 전환을 가속하는 도구다. 추격하는 사고 습관을 버리고 토르의 망치를 활용해 정보화에서 지능화로 가는 패러다임 전환을 선도해야 한다.
이제 정부출연연구기관(출연연)도 더 늦기 전에 선도자다운 사고방식을 체득해야 할 때다. 이러한 흐름 가운데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은 인류애(humanity)를 핵심가치로 둔 '국가지능화' 미래상(Vision)을 수립하고 이를 구체화하기 위해 기술발전지도 2035를 만들었다. 기술발전지도는 ICT 분야에서 성공한 과거에 안주하지 않고 미래 사회를 만들어 가는 국가지능화 종합연구기관으로 완전히 탈바꿈한 ETRI가 AI 기반의 지능화 패러다임을 선도하기 위한 준비물이다. 기술발전지도는 ETRI가 상상하는 15년 후 미래 세상을 그리고 이를 구현하는 데 필요한 새로운 개념을 설계(creation of a concept)하는 전환적 사고실험을 통해 완성됐다. ETRI의 전환적 사고실험은 현재와 단절된 방식으로 미래를 생각하는 새로운 방식을 시도한 것이다.
이제는 우리가 스스로 선호하는(preferable) 미래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 출연연이 변화를 주도하고 글로벌 선도자로 앞장서기 위해서는 상상력과 추상력을 통해 당연시하는 생각의 틀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 과정에서 항상 완벽한 결과만 얻을 수는 없다. 그러나 패러다임 변화를 주도하기 위한 전환적 사고실험이 우리의 '지혜'를 키우고 우리가 원하는 미래를 만들 수 있다고 믿는다.
김명준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원장 joonkim@etri.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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