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보장제도가 지원이 필요한 사람들을 기다리지 않고 먼저 찾아 지원하는 선제적 복지로 바뀌고 있습니다. 이를 가능케 하는 것이 원이 구축하고 있는 '차세대 사회보장정보시스템'인데요. 더 많은 데이터가 공유되고 개방될 수 있다면 더 큰 효과를 발휘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노대명 한국사회보장정보원장은 코로나19로 인한 급격한 사회구조의 변화와 초고령화 사회 진입으로 사회보장체계에 큰 변화를 예상하면서, 이에 대응할 사회보장정보시스템의 역할과 데이터 활용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2009년 설립된 한국사회보장정보원은 사회보장정보시스템을 비롯한 보건복지 분야 전산시스템 운영을 총괄하는 준정부기관이다. 사회보장급여(기초생활보장급여·기초연금 등)와 장애인 활동을 지원하는 사회서비스전자바우처, 노인 돌봄서비스 등이 이뤄질 수 있도록 하는 정보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사회보장 및 복지서비스의 핵심 기반을 담당하고 있는 곳이다.
한국사회보장정보원은 최근 큰 변화를 추진 중이다. 청사이전과 함께 차세대 사회보장정보시스템 구축하고 사회보장 빅데이터를 통해 맞춤형 복지 제공을 실현할 준비를 하고 있다. 노대명 원장은 복지제도 전문가로 데이터 분석을 통한 선제적 보건복지 전달체계 패러다임 개편을 추진 중이다.
대담=윤건일 벤처바이오부장
-지난 9월 2일 취임 직후 국정감사와 청사 이전 등으로 바쁜 일정을 보냈다. 그동안의 소회는.
▲정보원에 온 지 100일 정도가 지났다. 업무를 시작하자마자 곧바로 국정감사와 청사 이전 작업을 하다 보니 쉴 틈이 없었다. 단기간 속성 과외를 한 셈이다. 곧 조직개편이 마무리되면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할 수 있을 것 같다.
정보원은 지난 12년 동안 빠르게 성장한 기관이다보니 1300명 직원 중 주임·대리급 직원들이 절반 정도를 차지한다. 이들과 만나면서 많은 감흥을 받았다. MZ세대(1980년대 초~2000년대 초 출생한 밀레니얼 세대와 1990년대 중반~2000년대 초반 출생한 Z세대를 통칭하는 말)답게 '공정'이라는 화두에 민감하고 변화에도 목말라 있더라. 업무의 중심인 젊은 직원들의 이야기를 적극 반영하고 있다. 다면평가 도입이나 인사 평가 결과 공개, 자유로운 휴가 사용 등을 추진하고 있다.
-정보원이 코로나19 대응 과정에서도 QR코드 인증체계 마련 등 많은 역할을 한 것으로 안다.
▲다중이용시설을 방문할 때 카카오톡이나 네이버 앱에서 QR코드로 인증하고 접종 정보를 불러오는 시스템을 정보원에서 만들었다.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해 개인정보는 드러나지 않고 접종이력만 확인한다. QR코드 시스템이 없었다면 방문자 관리와 접종 이력 확인이 어려웠을 것이다. 단계적 일상 회복 시작 이후 환자 분류 시스템을 구축했고 지역보건의료본부 보건의료 관련 시스템도 구축하고 있다.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재난지원금 지급에도 기여를 했다. 세대 정보와 가구 유형, 소득 정보를 파악해 지급 기준을 판정했다.
정보원은 한 달이면 가구의 유형·소득 수준 등을 분석해 사회보장급여를 지급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고 있다. 국내에 어떤 기관도 이처럼 짧은 시간에 분류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곳이 없다. 관련 정보를 연계하고 분류하는 능력에서 독보적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사회보장정보원은 2009년 설립 이후 지속 성장하는 것 같다. 조직 규모도 8배 정도 늘고, 역할이 커지고 있다.
▲새해 복지 분야 예산이 100조에 이르는 등 복지 지출이 계속해서 늘고, 복지서비스의 중요성도 커지고 있어서다. 최근 사회보장제도의 혁신도 소득 파악 체계나 정보시스템이 바뀌면서 가능해졌다. 과거처럼 동사무소에 가서 신청하고 지원을 받기까지 몇 달이 걸리지 않는다. 국세청 소득 자료가 연계되면 평균 4일 이내에 개인이 가지고 있는 소득을 파악할 수 있다.
앞으로도 정보원의 역할은 더욱 커질 것으로 생각한다. 예를 들어 고령화가 더욱 진행되면 노인을 목욕시킬 가족도 없을 가능성이 크다. 새로운 복지 대책이 필요해지는 것이다. 외국인 인력 도입도 생각할 수 있지만 이는 사회적 비용과 갈등이 크다. 서비스 인력이 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려면 행정 부담을 정보시스템이 덜어줘야 한다. 정보원의 기능이 커지는 것은 조직의 이해관계라기보다는 사회 전체의 편익과 관련된 것이다.
-지금 한국사회보장정보원에서 가장 중점을 두고 추진하는 업무는 '차세대 사회보장정보시스템' 구축이다. 시스템이 가동되면 앞으로 어떻게 달라지는 것인가.
▲지금까지 모든 복지 서비스는 '신청주의'에 입각해서 이뤄졌다. 필요한 사람이 신청을 해야 지원을 받을 수 있었다. 새로운 시스템은 개인의 소득, 인적사항을 파악하고 필요할 때 알림을 주는 '찾아가는' 방식으로 전환된다.
본인이 지원받을 수 있는 복지서비스를 알려주는 '복지지갑'이 대표적이다. 처음 한 번만 동의하면 소득 감소 시 실직급여를 신청하라고 알려주거나 기초생활보장제도 수급 자격이 생겼으니 신청하라는 식으로 알려준다. '21세기판 요람에서 무덤까지' 필요한 복지 서비스를 구축하는 것이 차세대 시스템에 담긴 목표다.
지난 8월 차세대 사회보장정보시스템 1차 개통이 있었다. 새해 상반기 2차 개통과 내년 말 3차 개통을 앞두고 있다. 내년 말에는 전사데이터웨어하우스(EDW)도 구축해 국민에게 효율적으로 통계데이터를 제공할 예정이다.
-맞춤형 복지제도의 권위자로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 미래를 위한 변화의 시점에 준비사항에 대해 의견을 준다면.
▲보건사회연구원에 근무하며 주로 기초생활보장제도와 관련된 연구를 많이 해왔다. 2000년대 기초생활보장 제도를 시행할 때 자활사업 부분을 설계했고 근로빈곤층 연구를 하다보니 기초생활제도 구조적인 문제가 있다고 생각해 맞춤형 급여체계로 개편하자는 주장을 해왔다. 이후 2013년에 제도 개선 연구를 시작해 2015년 기초생활제도 개편에 기여했다. 코로나19 이후 전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고용보험제도나 보편적 기본소득과 같은 새로운 보장 제도 논의가 이뤄진다. 더 이상 선별이나 신청주의가 아니라 포괄적으로 보호하겠다는 변화다. 다만 복지제도의 틀을 바꾸려면 정보시스템이 필수다. 소득을 파악해 부족한 만큼만 채워주는 복지제도를 연구자가 설계해도 작동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이제 정보시스템을 통해 부족한 부분을 파악할 수 있는 구조가 만들어지고 있다.
-사회보장제도 인프라를 운영하는 정보원의 역할도 중요해질 것 같은데 어떤 지원이 필요한가.
▲역량을 제대로 발휘하기 위해 정보원에 그에 상응하는 지원과 권한이 필요하다. 정보원에서는 국내에서 가장 많은 사회보장 분야 행정 데이터가 있다. 또 이를 실제 다뤄본 전문가들이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는 이 정보를 연구 목적으로 활용하지 못했다. 시스템을 운영하지만 이를 업무 외 목적으로 쓸 수 있는 권한이 없었기 때문이다. 정부에 정보원이 보유한 행정 빅데이터를 활용할 수 있도록 해줄 것을 요청하고 있다. 빅데이터는 코로나19 같은 재난 시기에도 필요하지만 평상시 생활고를 겪거나 학대를 당하는 국민을 발견하는 데 필요하기도 하다. 예를 들어 사회보장 데이터에 경찰청에서 입수하는 사건·사고 데이터가 결합되면 아동 학대 징후를 예측할 수 있는 체계를 만들 수 있다. 지금까지는 특정 이슈 발생 후 개입이었다면 앞으로의 복지는 미리 가난과 사고에 개입할 수 있는 체계로 가야 한다. 과거에는 열악한 데이터를 가지고 추정하고 예측했어야 하지만 이제는 전수데이터가 있다. 이를 어떻게 구성하고 분석하는지가 중요하다. 정보원이 가진 데이터를 연구 목적으로 활용하고 외부기관 데이터와 결합해 쓸 수 있도록 자율성을 주어야 한다.
-데이터 개방을 위한 준비는 어떻게 하고 있나.
▲국내에서 다양한 사회 분야 데이터를 빅데이터로 형성할 수 있는 기관이 우리밖에 없다. 관련 조직을 만들고 안전한 개방을 추진하려고 한다. 준비를 거쳐서 새해 하반기쯤 데이터를 개방할 계획이다. 지금까지 개방된 적이 없던 데이터기 때문에 많은 수요가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 이미 많은 전문가들이 데이터 연계를 문의하기 위해 정보원을 찾는다. 데이터 개방을 위해서는 많은 예산이 필요해 재원을 확보하는 것이 문제다. 데이터는 결합이 될 때 가치를 지닌다. 그 체계를 안전하게 만드는 것이 우리의 역할이다. 이를 위해 데이터 결합기관 인증을 받으려고 한다. 공공기관이 결합전문기관 인증 관련 자본금 규정도 완화되면서 조건이 갖춰졌다. 신청해서 2개월 안에 받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내부에 개방형 통계부스를 만들고 전문가들이 오면 필요한 데이터를 분석한 후에 심의를 거쳐 연구 결과를 반출할 수 있도록 인프라를 구축할 계획이다. 추후에 온라인으로도 분석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을 계획하고 있다. 예전에는 데이터를 연구자만 썼는데 고령화가 되면 보건복지 분야에 여러 가지 상품이 필요할 수 있다. 개인정보 보호에 문제가 없다면 구축한 데이터를 기업에게 제공할 계획도 가지고 있다.
-데이터 유출이나 위험성을 우려하는 시각도 있을 것 같다.
▲부가가치가 큰 만큼 정보 독점이나 개인정보 유출이라는 위험성도 크다. 양날의 칼인 셈이다. 공공 데이터는 공공성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 데이터는 무료로 제공해야 하고 수익 사업이 되어서는 안 된다. 데이터는 선하게 쓰여질 수도 있고 악하게 쓰여질 수도 있다. 선한 얼굴을 가진 정보시스템이 필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노인들에게 스마트워치를 통해 혈당과 혈압 등 건강 상태를 체크하고 위험신호가 오면 전화를 해서 “할머니 당이 높아요, 식사를 줄이세요” 하는 식으로 관리하는 시범사업을 하고 있는데 실제로 개선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 이런 사례가 선한 시스템의 예라고 생각한다.
-새해 중점적으로 추진할 업무와 분야가 있다면.
▲조직 내부적으로 시스템 간의 결합이 중요하다. 여러 시스템이 함께 유기적으로 작용할 수 있어야 정보의 효율성과 비용의 효율성이 올라간다. 복지급여, 사회서비스, 지역보건 시스템이 유기적으로 연계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첫 번째 목표다. 두 번째로는 이를 통해 생성된 여러 데이터 연계해서 빅데이터 만드는 작업을 하는 것이다. 데이터 결합이라고 표현한다. 더 많은 사용자들이 활용할 수 있도록 가공하는 것이 두 번째 목표다. 나아가 개방까지 진행할 계획이다. 세 번째는 데이터를 선한 목적을 위해서 쓰는 것이다. 복지 사각지대를 찾는 것이 목표다. 실제 위험을 포착할 수 있는 모델을 만들고 이를 지역 사업과 연계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다.
축적된 데이터들이 적절하게 문제에 개입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면 정보시스템과 이를 통해 생산되는 데이터와 실제 시민들을 위한 사업이 선순환을 이루는 체계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새 정부가 들어서면 새로운 제도가 굉장히 많이 도입될 것이다. 이렇게 되면 정보시스템도 이에 맞춰서 변할 수밖에 없다. 코로나19가 장기화하는 상황에서 새로운 정보시스템 구축 요청도 있을 것이다. 새해도 바쁜 해가 될 것으로 보인다. 내부적으로는 직원들의 업무부담이 너무 크다는 문제가 있다. 정상적으로 작동되려면 조직이 분화되고 인력이 늘어야 한다. 이 부분은 지속 건의하고 있다.
○노대명 한국사회보장정보원 원장은…
노대명 원장은 1963년생으로 인하대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인하대 정치학 석사와 파리2대학교 정치사회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0년 11월부터 원장 취임 이전까지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서 부연구위원, 연구위원, 선임연구위원을 거친 사회보장 전문가다. 대통령자문 빈부격차차별시정위원회 전문위원, 대통령실 사회통합위원회 전문위원, 중앙생활보장위원회 위원,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사회안전망개선위원회 위원을 역임했다. 지난 9월 2일 제5대 한국사회보장정보원 원장으로 취임했다. 국내·외 복지정책에 대한 풍부한 연구 경험을 바탕으로 사회보장체계 변화에 대비해 한국사회보장정보원 미래 비전을 제시할 적임자로 꼽혔다.
정리=정현정기자 iam@etnews.com, 사진=김민수기자 mskim@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