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킨배달 해야 한다”...고소득자 거짓말에 음주면허취소 감경한 권익위

감사원, 권익위 정기감사서 적발...운전과 생계 관련 있어야 감경 청구 가능
공무원, 공공기관직원, 교사, 의사 등 200여명도 면허취소 감경 재결

감사원.[사진=연합뉴스]
감사원.[사진=연합뉴스]

운전과 생계가 밀접한 관련이 없는 공무원과 공공기관직원, 교사, 대학교수, 의사 200여명이 음주운전 취소처분에 감경을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국민권익위원회가 운전면허 취소처분을 받은 음주운전자가 제기한 행정심판 청구사건을 검토해 행정심판위원회에 안건으로 상정하면서, 청구인의 직업과 소득 등을 제대로 검토하지 않고 행정심판위에 상정했기 때문이다.

감사원은 28일 이 같은 감사결과를 포함한 국민권익위원회 정기감사 전문을 공개했다.

감사원에 따르면 권익위는 음주운전으로 운전면허 취소처분을 받은 운전자가 제기한 행정심판 청구사건을 검토해 행정심판위원회에 안건으로 상정한다. 도로교통법은 혈중알코올농도 0.08% 이상 음주운전 시 면허를 취소하되, 운전이 중요한 생계수단이거나 취소처분 개별기준을 적용하는 것이 현저하게 불합리하다고 인정되는 경우 등에는 면허정지로 감경이 가능하다.

그러나 권익위는 자체 감경 기준을 마련해 청구인 개별 사정을 따지지 않고 혈중알콜농도와 무사고 기간이 일정 요건을 충족하면 감경 대상으로 검토했다.

특히 개별·구체적 사정이 있는지 등과 관계없이 일괄해 감경 대상으로 검토하면서 행정심판위 위원들에게는 청구인이 제출한 청구서 및 관련 증빙자료도 사전에 제공하지 않았다. 이에 따라 2017년 1월 1일부터 2020년 12월 31일까지 3년간 권익위가 감경 대상으로 검토한 사건 6579건 중 재결된 사건이 6574건으로 99.9%에 달했다.

감사원은 “직업 수행에 운전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보기 어려운 공무원 및 공공기관직원, 교사, 대학교수, 의사 등 총 231명도 포함됐다”고 밝혔다. 혈중알콜농도 0.116%로 음주운전한 회사원 A씨는 월급여가 1509만원(세전)에 달했음에도, 감경 청구서에 배우자 명의로 치킨가게를 개업했다며 배달을 위해 운전이 필요하고 월 소득이 200만원이라고 제출, 감경이 재결되기도 했다.

감사원은 “(권익위가) 앞으로도 청구인의 주장에 대한 검증 절차를 거치지 않으면 청구인이 고의로 청구서에 직업·소득 등을 거짓으로 기재하여 같은 문제가 반복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감사원은 권익위원장에게 운전면허 취소·정지처분 기준을 유명무실하게 하는 일이 없도록 관련 업무를 철저히 하도록 주의 요구하고, 중앙행정심판위원회에는 청구인이 주장한 직업·소득 등을 확인·검증하는 방안을 마련하도록 통보했다.

안영국기자 a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