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가스냉난방기(GHP) 배출가스 관리 기준 개정 작업이 해를 넘겼다. 관리기준을 놓고 산업계와 시민단체, 국회 등 주장이 엇갈리면서 정부가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정부 결정이 미뤄지면서 당장 새해 사업을 준비해야 할 산업계는 타격을 우려하는 상황이다.
2일 정부와 업계에 따르면 환경부는 늦어도 지난해 말까지 대기환경보전법 시행규칙을 개정, GHP 배출가스 관리 기준을 확정키로 했지만 마무리 짓지 못했다. 올해에도 논의가 이어질 전망이다.
단계적 시행 등 규제 완화를 주장해 온 업계는 최소한 사업을 준비할 시간이라도 보장해달라는 입장이다.
GHP는 가스엔진 동력으로 구동되는 압축기를 활용해 액화와 기화를 반복함으로써 여름에는 냉방기, 겨울에는 난방기로 사용하는 기기다. 정부는 블랙아웃 등 국가 전력난을 방지하기 위해 전기가 아닌 가스를 사용하는 GHP를 장려해 왔다. 하지만 질소산화물(NOx), 일산화탄소(CO), 탄화수소(THC) 등 오염 가스를 배출함에도 관리 대상에서 빠져 문제가 됐다.
이에 정부는 지난해 9월 대기환경보전법 시행규칙 개정안을 입법예고하고, 연내 개정 작업을 완료키로 했다. 이에 따라 새해 7월부터는 GHP를 대기배출시설로 배출해 관리하며 신규 시설은 배출 허용기준을 준수해야 한다.
정부가 관리 기준을 담은 개정안을 입법예고했지만 3개월이 넘도록 완료 소식은 없다. 정부안 발표 이후 시민단체와 국회가 기준이 낮다면서 비판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시행규칙 개정안에 따르면 2022년 6월 30일 이전 시설은 관리 기준 NOx 100ppm, CO 400ppm, HC 400ppm으로, 2022년 7월 1일 이후 시설은 50ppm, 300ppm, 300ppm으로 규정했다. 대기오염물질 배출을 허용기준의 30% 미만으로 줄이거나 환경부 장관이 인정하는 저감장치를 부착하는 경우 대기배출시설 신고대상에서 제외키로 했다.
시민단체와 일부 학계는 저감장치를 부착한 GHP를 배출시설에서 제외한 것과 배출허용기준치가 납득하기 어려울 정도로 낮다는 점을 지적한다. 지난해 10월 국정감사에서 윤준병 더불어민주당 의원 역시 이 부분을 비판했다.
산업계는 배출가스 관리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정부가 제시한 관리기준이 지나치게 높은 수준이라고 반박한다. 정부 규제 수준은 2020년에만 22만대 이상 보급한 가정용친환경보일러 배출가스 관리기준(NOx 20ppm, CO 100ppm) 보다도 강력하다는 게 이유다. GHP 연간 보급규모는 7000대 수준으로 국내에서는 LG전자, 삼성전자, 삼천리 등이 주력으로 공급한다.
GHP 업계 관계자는 “연간 20만대 이상 공급하는 가정용 보일러보다 7000대 수준에 불과한 GHP 규제 강도가 더 높은 상황에서 시민단체와 일부 학계가 규제 강화를 주장하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정부도 전력난 해소를 위해 GHP 사용을 장려했는데 한순간에 환경오염 주범으로 낙인찍는 것은 아쉽다”고 덧붙였다.
한국냉동공조산업협회는 지난해 정부에 공식적으로 제도 시행 유예를 요청했다. 산업계도 배출가스 관리 필요성에는 공감하는 만큼 단계적 시행을 주장한다. 유예가 어렵다면 새로운 기준이라도 빨리 확정해 사업 준비에 시간을 줘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업계 관계자는 “당초 정부 관리기준도 강력한 규제라고 생각했지만 추가적인 규제강화 목소리가 나오면서 불안감이 더욱 커지고 있다”면서 “지난해까지 개정을 완료한다고 해서 그 기준에 따라 신제품 출시 등을 준비했지만, 차일피일 미뤄지면서 사업을 준비하지 못하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환경부 관계자는 “산업계, 시민단체 등 주장이 엇갈려 당초 계획보다 개정 작업이 늦어지고 있다”면서 “상반기 내 개정 작업을 완료하고 7월부터 시행하도록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정용철기자 jungyc@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