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질이 녹으면 그 속에 규칙적으로 배열돼 있던 원자가 마구 흐트러지게 된다. 하지만 강한 레이저 빛을 쏘면 원자의 시간은 거꾸로 흘러 오히려 서로 규칙적으로 배열된다는 사실을 국내 연구진이 최초로 확인했다.
포스텍(POSTECH·총장 김무환)은 송창용 물리학과 교수·통합과정 정철호 학생, 임영옥 화학과 박사와 노도영 기초과학연구원(IBS)장 연구팀이 포항4세대 방사광가속기의 엑스선을 이용해 비평형상태에서 이례적으로 원자가 나란히 정돈되는 현상을 관측했다고 4일 밝혔다. 비평형상태란 물질에 레이저를 비췄을 때 그 안에 들어있는 전자만 뜨거워지고 원자는 여전히 차갑게 남아있는 상태를 말한다.
레이저로 강한 빛을 가하면 물질이 빠르게 녹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녹는 평형상태에서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상태를 볼 수 있다. 이에 따라 강한 레이저를 쬔 시료가 녹는 찰나의 순간을 4세대 방사광가속기의 엑스선 자유전자레이저(XFEL)로 포착했다. XFEL을 이용하면 나노미터(㎚) 단위의 공간과 펨토초(1000조 분의 1초) 단위의 시간까지도 쪼개서 볼 수 있다.
그 결과, 시료가 녹는 과정에서 온도가 높아짐에도 불구하고 표면의 원자들이 나란히 정렬됐다. 표면 원자가 정렬되며 각이 진 평면들이 만들어져 다면체 형태를 띠기도 했다. 온도가 높아짐에 따라 엔트로피, 즉, 원자의 무질서함이 늘어나는 열역학적 법칙과 반대되는 현상이다. 각진 얼음이 동그랗게 녹듯이 고체 상태의 결정이 녹으면 그 모서리와 각이 진 평면들은 둥글게 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특히 송창용 교수팀은 XFEL을 이용한 초고속 단일 노출 이미징 방법을 독자 개발했다. 이를 이용해 순간적인 비평형상태에서 시료가 녹는 과정에 유도되는 물질의 되돌릴 수 없는 변화 과정을 영상으로 담았다. 기존 방법은 반복적인 촬영을 필요로 해서 충격을 입어 변화된 시료가 다시 원상으로 되돌아갈 수 있는 경우에만 영상을 얻을 수 있게 되는 제약이 있다.
이 연구성과는 비평형상태에서 나타나는 물질 변화를 순간적으로 포착해 얻은 성과다. 앞으로 빛을 이용해 자연적으로 발생하지 않는 물질의 새로운 상태를 확인할 수 있으며,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물질의 상태를 이끌어 수 있음을 의미한다.
송창용 교수는 “물질이 빛에 의해 녹는 과정에서 기존의 이해와 상반되는 표면 원자의 정렬 현상이 나타남을 XFEL을 이용해 직접 관측했다”며 “온도가 높아지는 상황에서 물질이 더욱 정돈되는 이 반응은 평형상태의 열역학 반응 규칙을 거스르는 결과”라고 말했다.
한국연구재단 가속기핵심기술개발사업, 중견연구자지원사업, 선도연구지원사업(SRC), 국제공동연구사업의 지원을 받아 이뤄진 이번 연구성과는 최근 '사이언스 어드밴스'에 게재됐다.
포항=정재훈기자 jhoo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