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신을 맞으면 잠잠해질 줄 알았던 코로나19가 델타와 오미크론으로 진화를 거듭하며 우리 곁을 떠나지 않고 있다. 다행히 최근 개발된 경구용 항바이러스 약제 임상 성적이 매우 뛰어나 확실한 게임체인저로서 자리매김할 전망이다. 다만 백신에서 보았듯이, 임상 연구와 실제 사회에 적용했을 때 결과는 매우 다를 수 있다. 부디 새로 나오는 경구 치료제가 임상시험 결과와 일치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델타에 비해 상대적으로 경미하다고 알려진 오미크론이 우세종이 돼 환자가 가벼운 증상만 앓고, 현재 1.5% 정도인 치명률이 10분의1 수준으로 현저히 떨어진다면 우리는 올여름에는 일상으로 복귀가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코로나19는 그렇게 수월하게 우리에게 작별을 고하지는 않을 전망이다. 통용되는 코로나19 백신은 오미크론에는 효과가 별로 없는 듯하다. 알파, 베타, 감마, 델타에 이어 오미크론으로 변신하면서 코로나19 바이러스는 인류가 만든 백신을 피하며 우리를 농락하고 있다.
전파력이 역대 최강인 오미크론이 속절없이 퍼진다면 우리나라도 서구에서 보듯 하루 수만명 이상 감염될 수 있다. 그때 우리 의료체계가 견딜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아무리 경증이라도 일정 수준의 위중증 환자와 사망자를 낼 수밖에 없는데, 하루 10만명이 발생하면 치명률이 독감 수준인 0.05%라 하더라도 하루 사망자가 50명이다. 오미크론이 갑자기 독감 수준의 치명률을 갖기는 어려우므로 최소 하루 100명 이상의 사망자가 발생할 것이다. 앞으로 다가올 오미크론 유행에 대비하는 핵심은 중증 환자와 사망자 발생 여부에 달려 있다.
오미크론 유행을 가라앉히고 나면 본격적인 완화전략(mitigation strategy)을 구사해야 한다. 외국에서 발생한 감염병에 대응하는 초기에는 병을 알기 위한 시간을 벌기 위해 일단 봉쇄전략(containment strategy)을 펼치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나라는 원발지인 중국으로부터 입국자를 통제하지 않아 발생 초기에 잘못된 판단을 한 반면, 지정학적으로 유사한 조건을 가진 대만은 코로나19 팬데믹 초기에 입국을 철저히 통제한 덕에 방역에 가장 성공한 나라가 됐다.
백신과 치료제의 윤곽이 잡히고, 임상의사의 병에 대한 이해도 깊어졌으니 본격적 완화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지난해 11월 1일 시작한 위드코로나는 방향성은 옳았으나 무(無)준비, 무(無)전문성, 무(無)책임으로 일관한 아마추어 완화전략이 됐고, 수많은 무고한 희생자를 만든 실패한 정책이었다. 중환자병실 준비가 제대로 안 된 탓에 살릴 수 있었던 많은 생명을 잃었고, 다른 나라에 비해 치명률이 높은 주요 원인이 됐다.
완화전략을 제대로 하려면 질병 병태생리와 역학적 예측에 근거한 의료체계 정비가 우선돼야 한다. 어느 정도로 방역을 완화해야 우리 체계가 감당할 정도의 환자를 발생시킬 것인가. 발생 환자의 몇 %가 위중증으로 진행할 것인가. 위중증 환자 중 몇 %가 사망할 것인가 등을 주도면밀하게 예측하고 방역 완화 단계를 설정하여 집행해야 한다.
방역 완화도 지금까지는 모두에게 일괄 적용했지만, 앞으로는 위험한 계층은 철저하게 지침을 적용하고, 젊고 건강한 사람이 활동하는 영역에는 완화된 원칙을 적용해야 한다. 우리는 전 인구의 불과 1.2%만이 자연 면역을 가져 백신에 의한 면역에만 의존하는 불리한 상황이다. 가볍게 앓고 지나가도 문제가 없는 계층에 점진적 노출을 시키면 자연 면역을 획득하게 할 수 있다. 방역 정책 완급을 조절하는 것은 전국 전문가들이 모여 치열한 논의를 거쳐 시행해야 한다. 지금처럼 일부 전문가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정책은 지속 가능하지 않다. 일관성과 방향성이 매우 중요한데, 컨트롤타워가 여러 곳으로 분산된 우리나라 방역시스템이 개선돼야 할 이유이다.
앞으로 좀 더 포괄적으로 면역 형성이 가능한 백신이 나오고, 경구 항바이러스제가 효능을 발휘한다면 여름부터는 지금처럼 두려움을 가지지 않아도 될 것이라 조심스레 전망해 본다. 물론 새로운 강력한 변이의 출현과 경구약 효능 상실이라는 변수가 없어야 한다.
정기석 한림대성심병원 교수·전 질병관리본부장 pulmoks@hallym.ac.kr